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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정계야화
이철승 편 - 제1회 동경에서 겪은 5·16
이철승 편
제1회 동경에서 겪은 5·16
1965.04.02 방송
‘정계야화’는 65년 1월 4일부터 방송한 15분짜리 대담프로그램으로 70년 10월 5일부터 나간 다큐멘터리 드라마 ‘정계야화’의 원조격이다. 이 프로그램은 광복 20년과 6·25전쟁 15년을 맞아 기획한 것으로, 정계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자서전적인 회고담과 함께 정계의 뒷얘기를 들려줘 청취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 오늘은 그 67번째 시간 도쿄에서 겪은 5·16에 대한 얘기를 전 민위의원이었던 이철승 씨와 신동준 동아일보 정치부장과의 대담으로 들으시겠습니다.

- 오래간만에 뵈오니 참 반갑습니다.

- 글쎄올시다.

- 이철승 의원 하면 그 관록있는 야당 투사로서도 물론 널리 알려졌습니다만 그 외모가 우선 그 체구로 부터 몸집이 그 커다란 모습 하며 여러모로 참 인상적인데요 이렇게 오래간만에 뵈오니까 예전하곤 아주 딴판이신데 아주 보기에 수척해 보이시는데 전에 그 미국 가시기 전만 하더라도 체중이 상당히 나가셨댔지요?

- 한 많이 나갈 땐 22관도 나갔지요.

- 지금은 몇 관이나 되십니까.

- 한 18관 500을 좀 넘습니다.

- 아이고 그럼 뭐 거의 3관 4관 가까이 줄은 셈이네요.

- 네.

- 굉장히 줄이셨습니다. 하여튼 뭐 처음 만나뵈는 분은 다른 사람으로 오해하기도 쉽겠는데요.

- 많이 그런 인사를 받고 있습니다. 저는 건강은 무척 좋은데요.

- 네.

- 우리 한국 사람들은 으레히 육중한걸 퍽 그 관록있는 것으로 보는 그 기준이 좀 이상해지는 것으로 봐서요.

- 네.

- 뭐 이런 세태에 살만 찌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 저 이 의원이 그러니까 미국 가시기 전에 그 5·16을 아마 동경에서 당하신것 같던데.

- 그렇습니다. 사람 팔자 시간문제라는 말 있지 않습니까. 제가 이 5·16 이틀전에 여기서 같이 여러 친구들과 봉변을 같이 당했어야 할 사람 입니다.

- 아, 그 5월 그러니까 14일 쯤 돌아오실 예정이었었댔어요?

- 네. 그런데 별안간 일본의 아즈마란 동경 기사가 올림픽 위원인데 IOC 위원인데 그 사람이 작년에 열렸던 올림픽 문제로 타협하자 그래서 그것때문에 이틀을 지체해서 17일날로 오기로 연기했던 것입니다.

- 아 그럼 예정을 바꿨군요.

- 네.

- 그 동경에서 그 5·16을 어떻게 들으셨어요. 맨 첫번 소식을.

- 뭐 청천벽력이지요. 곤히 잠들은 뒤 아침 7시쯤 뉴재팬 호텔에 있었는데요.

- 네.

- 전화가 오더군요.

- 아 그럼 침대 안에서 전화 받으셨겠네요.

- 그렇습니다. 그래서 몸이 섬뜩 하더니 무슨 불길한 예감이 느껴졌어요.

- 몇 시쯤 인데요.

- 7시쯤 이지요.

- 아. 누구 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 그 일본에 뭐 교도쓰싱(?)이라던가요?

- 네. 있지요.

- 그것하고 또 김신부 김철기 신부가 거기 있었습니다.

- 네.

- 전화가 와서 너 아느냐. 나도 초면이라고 이렇게 얘길 했습니다.

- 아 한국에서 군사 구데타 일어났다는거?

- 네.

- 그거 뭐 아주 큰 벼락을 맞으신 셈이 됐겠어요?

- 신 부장도 아신바와 같이 뭐 참 허탈 상태에 빠져 버렸지요. 아침에 뭐 들 각처에서들 연락이 오더군요.

- 아 그때만 하더라도 동경에 여러분 아마 국회의원들도 많이 계셨지요?

- 네. 한 20분 있었습니다. 우연하게도 원내에 총무라는 사람들은 거의 다 거기 있었던것 같아요.

- 그렇지요. 뭐 양일동 의원.

- 이석기 씨 또 이제향 씨도 나오시고 유진산 씨도 동남아시아 도느라고 나오셨고.

- 그렇지요.

- 많은 분이 나와서 한 20여분 계셨습니다.

- 아마 유진호 씨도 어디 인도인가 갔다 오시다 거기 있었고.

- 네. 모인숙 씨도 계셨고.

- 참 많이 계셨지요.

- 박상원 선생도 미국 갔었고.

- 네. 그때만 하더라도 그 저 이 의원이 그때 국회 국방위원장 아니었겠어요?

- 네.

- 그러니까 또 직접 관련된 해당 분가 담당이셨고 그러니까 아마 여러 사람들이 이 의원 한테도 많이 물으러 왔겠군요.

- 네. 아침에 그러니까 저는 거의 다 동경에 있는 사람들은 다 왔습니다.

- 네.

- 와서.

- 의원 한테로요.

- 네. 그분들이 당시 국방위원장인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뭐 창백해가지고 황급하게 오는데 도데체 장 장군이 누구요?

- 음. 장도영 중장.

- 네. 도데체 박 장군이 뭐하던 분이오?

- 박정희 소장.

- 네. 그래 나보고 브리핑을 합니다 요새말로.

- 네. 잘 아셨댔어요, 두 분들?

- 네. 뭐 장 장군도 잘 알고, 박 장군도 잘 알았지요.

- 네.

- 그게 뭐 국방위원회에 한 10년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잘 알터이니까. 장 장군은 우리가 미국 갈때부터 참모총장 시키는걸 반대했고, 제가 미국 안갈라고 퍽 무척 애를 썼었구요.

- 네.

- 박 장군도 그 당시에는 군인 중에서 퍽 그 우리 하고 친교가 있던 친굽니다.

- 언제부터 박정희 장군 아셨댔어요.

- 그 사람이 그 포병 반장 할 때 부터요. 뭐 참 무상 출입을 하고 비교적 그 실력이 있고 신망이 있다고 해서 청렴의 문제로 우리가 퍽 가까이 지냈는데 그때 그랬습니다. 장도영이는 그건 애지부터 그 혁명가 같이 이건 허수아비다.

- 나키부 장군에 해당한다.

- 네.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 네.

- 그 당시 뭐 거기에 여러가지 이론이 있었지요. 여러파가 갈려 있었어요 그 당시에.

- 우선 구데타를 어떻게 보느냐 얼마 동안이나 갈거냐 뭐 여러가지 얘기가 나왔죠.

- 그렇습니다. 그 뭐 한정 부류는 구데타가 그건 뭐 얼마 가겠는냐 여기서 우리가 과격하게 망명정부라도 만들만한 적잖은 인재가 모여 있으니 정부를 수립하자.

- 하하. 동경에?

- 네. 또 한분은 군인이 뭐 아냐 우리가 가서 살살 달개면 그 공약대로 해서 자기들이 우리 경종이나 울릴 것이지 오래 가지고 갈리가 없다 그런 부류의 대표는 인제 곽상훈 씨 같은 분이 계셨고, 또 한 부류는 인제 우리같이 좀 군을 좀 알려고 하는 사람들은 좀 두고봐야 할 것이다. 그런 세가지 부류가 있었습니다.

- 그래 이 의원은 그 정예 신중파에 속해있었던 거군요.

- 네. 그렇습니다. 근데 그때의 사람이란 그렇더군요. 그런 그 어마두지 하고 청천벽력 같을 때에 지도자라고 할까 소위 우리가 알고있는 정치가의 굳은 용기, 신념, 그 사람의 지조 이런걸 우리가 알 수 있어요.

- 나타나지요.

- 네. 그런데 그건 왜 그러냐. 거기서 뭐 같이 한달이고 두달이고 있자고 하던 분들이 뭐 일주일 앞서도 이건 하루 앞 일도 모르고 일주일도 모르고 그냥 전부 돌아가더군요.

- 그렇지만 거기 또 무작정 있을수도 없는것 아니겠어요? 여권 문제라든지 여러가지가 있을거교.

- 그렇습니다. 저는 비교적 그 외교관 여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 아 그때 유엔총회 대표로 갔다 오셨댔으니까.

- 네. 편할 줄 알았어요. 그랬더니 군정에서 제가 안돌아오니까 또 먼저 들어간 사람들이 전부 책임을 똘똘 저한테 몰아 세워가지구요 그래서 여권을 취소 하라는 통고를 냈어요. 각 미국과 일본 정부에.

- 아. 그리고 저 이 의원 한테도 그런 통고가 왔겠군요.

- 네. 저한테는 그 대표부에 무척 우리를 따라 다니던 그 외교관이 정세가 바뀌니까 여보오 우리 곤란해요 여권을 자꾸 회수하라고 본부의 지령이니 이거 갖다 내야겠소.

- 아 압수하러 왔군요.

- 네. 그래서 내가 얘길 했습니다. 여권이라는 것은 이게 국민의 국적의 하나의 신분 증명서가 아니냐. 해외 나온 사람을 여권을 뺏어가 버리면 이거 불법체류 되어서 어디로 간단 말이냐.

- 네.

- 그러면 이게 유엔 헌장에 의해서 여행을 자주 해야 한다는 이게 오늘날 정신에 의해서 오도가도 못하게 만든다면 내가 그럼 일본 사람이 된단 말이냐 미국 사람이 된단 말이냐. 이건 내 기념품이니까 절대로 줄 수 없으니까 내가 영원한 기념품으로 보관 한다고 정부에 보고를 그대로 하면 되지않소. 책임은 나한테 돌리시오.

- 아 그리고 안주셨고만.

- 네. 안줬습니다.

- 그럼 그 여권은 기념품으로 집에 남아 있겠군요.

- 아니요 그게 또 재밌지요.

- 네.

- 그 여권을 올 때 또 써먹었습니다 그래.

- 아이 써먹다니요.

- 그 여권이 몇 정부에 통고를 냈는데 그 요새 그 흔히 그런 수가 많이 있습니다. 구라파나 각국 나라 돌을 때는 그 여권이 통고를 안받은 나라도 많이 있고 또 잊어버린 나라도 많이 있어요.

- 아 그대로 통용이 돼요?

- 네. 그래서 공항에서 그 디프로메틱 패스포트로요 아주 이번 구라파 돌아 오는데 편하게 왔습니다.

- 아 그럼 이번 귀국할 때도 그걸로 그냥 쭉 인해 갖고 오셨고만.

-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때에 그 갔다 줬더라면 좀 곤란할 뻔 했어요.

- 아 그러면 그 상당히 허술한게 또 그 국제여권 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 그렇습니다.

- 그 그래 그 여권을 우선은 동경에서 무효가 됐으니까 못쓰게 됐을것 아닙니까.

- 네.

- 그래서 그 어떻게 하셨어요 그럼.

- 그 불법 체류자가 되어서 법무성 일본 사람들이 좇아 다니고 그랬습니다. 불법 체류자가 되어서.

- 아.

- 아주 곤란 받지요.

- 아마 동경에 상당히 오랫동안 가셨댔지요?

- 한 7개월 있는데요. 돈은 없고 불법 체류자가 되었고 오도가도 못하고 또 제가 생각 하기에는 하늘이 나한테 내리는 시련이구나 이거 달게 받아야 되겠다 그러니 차라리 군정이 이게 오래 갈거고 또 군정의 장난은 내가 알기 때문에 그 전도가 그렇게 희망적이 못된다. 그러니 이왕에 군정이 내걸은 공약을 그 물은 엎질러졌으니 주워 담을 수 없으니 이걸 지켜주기나 바란다 하는 그 뜻으로 미국을 갈려고 작정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뭐 패스포드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뭐 밤낮을 거의 노심초사 하고 궁리를 해봤더니 어떻게 어떻게 해서 국제 적십자사에 가면은 난민들이 쓰는 소위 그 팔레스타인의 난민이라든지 전쟁 고아들이라든지 그러한 그 트러블 도큐멘트 같은걸 준다고 그래요. 그걸 강력히 해서 교섭을 했어요.

- 난민 여권.

- 네. 그랬더니 그것이 나왔어요. 그래 지금 저는 그렇습니다. 젊은 사람들 보고도 꿈을 꾸던지 공상을 하던지 노심초사 한가지에 집중을 하면 반드시 도는 길도 있더라. 이런 얘기를 해서 그 여권을 가지고 제가 미국으로 떠나게 됐던 것입니다.

- 그렇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그 한국 고국의 군사정부에서 또 돌아오라 이런 그 이 의원한테 통고도 했을거고.

- 네.

- 그 돌아올만도 하지 않았었겠어요?

- 그 당시 사실 신 부장 아신바 같이 저한테도 많은 유혹이 있었어요. 들어와서 너는 정치 그만둔다 그러고 그냥 군정을 지지해 주면은 앞으로 우리가 협조할 것 아니냐. 젊은 사람이 우리 군과 호흡이 통하지 않느냐 그래서 그런 유혹도 있었고 또 자꾸 가정들을 괴롭히고 특히 가정을 들여다가 괴롭히는 통에 그 퍽 곤란을 봤습니다만은 저는 뭐 이왕에 사람이 흥청흥청 휘어서 살고싶지 않고 사람이 나무가 부러질라면 아주 부러지는게 좋지 않냐 이 국제적인 감각을 모르고는 앞으로 이 나라를 건질 수 없다 이 기회에 내가 국제공부를 해야겠다 하는 결심으로 떠나기를 작정했던 것입니다.

- 떠난게 12월인가 연말이지요 아마.

- 네. 크리스 마스 날 입니다.

- 아 그럼 그 난민 여권을 갖고 인제 미국으로 떠나셨군요.

- 네. 참 서글프더군요.

- 그 미국 간 얘기는 그럼 내일 밤에 또 계속해 주세요.

- 네.

(입력일 : 2008.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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