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그 61번째 시간 반공포로 석방 때 이 박사가 당황한 얘기에 대해서 역시 전 국무총리였던 장택상 씨와 동아일보 정치부장 신동준 씨 와의 대담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 네. 어젯밤 창랑 선생님 말씀이 그 역사학자 프레스코트가 세계의 영웅들 위인들에 대해서 그레이트 그레이트 맨과 리틀 그레이트 맨 둘로 분류를 하셔서 얘기를 인용 하시면서 이승만 대통령이 말하자면 소 위인이라고 할까요? 그 리틀 그레이트 맨에 속한다 이런 얘기를 하셨는데 뭐 거기에 보충해서 거기에 해당할만한 얘기를 또 좀 들려주실까요?
- 프레스코트의 그 큰 위인과 적은 위인이라는걸 분류해 놓은데 보면 그 이런 구절이 있어요. 적은 위인 이라는 거 리틀 그레이트 맨이지.
- 네.
- 리틀 그레이트 맨 이라는거는 뭐를 의미하는고 하니 뭐든지 자기 아니면 안된다는 이런 고집을 가지고 있다는거에요. 위인은 위인인데.
- 네.
- 뭐든지 만사를 다 자기가 해야지. 누굴 맡겨서 한다는건 도무지 안심이 안된다.
- 나 아니면 안된다.
- 그렇지. 나 아니면 안된다 이건 참 틀림없는 그 이 박사가 성격을 그대로 그려낸 겁니다.
- 항영 지도자가 빠지기 쉬운 결함이죠.
- 근데 그 아주 실례가 하나 있어요.
- 네.
- 그게 4·19 땐데 그 양반이 4월 29일에 나오셨나요? 경무대에서.
- 28일이지요.
- 28일인가.
- 걸어서 나오셨다고...
- 그렇지. 인제 걸어서 나온다고 해가지고 인제 그 소문이 퍼지니까 국회에서 우리가 모두 의논 했어요. 이 양반이 걸어서 나와서야 될 수 있나. 이 사람이 건국 원훈이요 또 참 과거 국부이름을 듣던 양반인데 걸어서 나와선 안되니 이거 빨리 가서 저지해라. 이래서 인제 국회에서 나하고 조재천 씨 하고 또 정준 씨 하고 이재학 씨 하고 넷을 뽑아서 인제 경무대를 갔습니다.
- 네.
- 들어갈 때 거기다가 모두 철조망을 쳐놔서 들어가는데 아주 여러시간이 걸렸어요 아주 간신히 들어갔습니다.
- 28일 날.
- 그렇지요.
- 몇시쯤이던가요?
- 그게 오전 11시쯤 됐지요.
- 네.
- 간신히 인제 경무대에 들어가니까 뭐 살풍경이더군요. 그 인제 그 면회를 안시켜줘요.
- 네.
- 그 비서가. 그 누구라고는 내가 말 안는데 당연히 우리를 면회 시켜야 하는데 면회를 거부해요. 가장 그 내가 얄밉다는것은 그 양반이 그 하야 하면서 나오는 그 날 까지 그 비서의 그 참 그 재례의 악습을 버리지 못하고 그 마지막날까지 그걸 참 실랑이를 하는걸 보면 참 괴씸한 생각이 들더군요.
- 네.
- 근데 그 비서 그 자가 인제 하는 말이 그 말이야. 이 박사 찬송을 하면서 하는 말이 아 이 양반이 오늘 나가시는 줄로 다 알고 나가게끔 다 모두 준비가 됐는데 오늘 아침까지 정원에 다니면서 가위를 가지고 꽃을 전부 전지를 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오늘 마지막 이 집을 떠나는데 나간뒤에 이 꽃 조차 누가 이 보살필 사람이 없지 않은가. 이것도 다 내가 하고 가야지. 이러면서 그 양반이 꽃 나무 그거 있는 정원에 있는 그 참 비싼나무 그 전지까지 자기 손으로 다 해놓고 가시더라 이런 얘기를 비서가 하는걸 볼 때 과연 내가 전에 프레스코트 책에서 본 그 리틀 그레이트 맨이 지금 이 양반이로구나. 이 양반이 정치도 이 식으로 했구나. 뭐든지 자기 아니면 안된다는거. 역시 그런 생각을 가지신 분이구나 하는 그런 그 참 인상을 내가 그 때 받았다는거.
- 네. 어저께 저 반공포로 석방때 얘길 좀.
- 네. 그 양반이 잘 아시지만은 침착하시고 말이야. 또 그 무슨 참 자기 신변에 관한 일이라든지 모든 일에 관해서 조금도 그 양반이 그 참 공포라는건 전혀 모르시는 분이에요.
- 아마 적어도 내색하지 않는 분이셨죠.
- 아 내색이라니 실지로 그 양반이 거기에 대해선 참 무관심한 양반이에요. 내가 실지로 하나 봤어요. 부산서 그 언젭니까. 그 저 권총저격을 당하지 않았어요? 다행히 발사는 안됐습니다만 마침 그 어느 연설회장인데 그때 내가 그때 국무총리고 그때 철기도 내무장관으로 그때 현직으로 있었고 할땐데 당장 그 연설 그 양반이 지금 연단에 올라가가지고 연설을 하는 중인데 누가 뒤에서 총을 발사를 했는데 그게 불발이 돼서 마침 다행이지. 그때 그 유 뭐라는 사람하고 또 그때 현직 국회의원으로 있던 김신연 씨 라고 그 양반들이 나중에 그 걸려들어가가지고 여러해 동안 고생하지 않았어요?
- 네.
- 근데 그 범인을 현장에서 포착하자니 그 뭐
- 떠들썩 했겠지요.
- 떠들썩하고 그 뭐 굉장한 소란이 일어나니까 아 이 양반이 연설을 그냥 계속 그러니까 한 사람이 불발해서 다행히 그 양반이 맞질 않으니까 또 어떤 사람이 제 2차로 나올지 안나올지 그걸 누가 보증할 수 있나.
- 그렇지요.
- 그러니까 우린 쫓아 올라가서 아 어서 내려오시라고. 철기가 올라갔지 그때 뭐 여럿이 인제 올라가 내가 연설 도중에 올라가서 그만 두시고 내려가십시다 하니까 아니야 이거 다 마쳐야 그 양반이 끝날까지 그 연설 다 마쳤습니다.
- 네.
- 네. 그렇게 그 양반이 고집이 센 양반이에요. 또 평생 무슨 겁이라는건 모른다고 자기가 늘 하시는 말씀인데. 한번은 언젠가 1953년 그게 6월이던가요? 반공포로 석방이.
- 6월 18일인가 그렇죠.
- 그 6월인가 그렇게 기억이 납니다. 그 반공포로 석방한지 그 2,3주일이 못 지났어요. 그때 그 영국 국회에서 이승만이를 체포하라고 영국 정부에다 건의 하고 유엔군 사령관실에서 즉시 체포해서 형무소 수감하라고 그때 야단 법석이 나지 않았습니까. 또 그거에 트루먼 대통령의 친서가 오고 뭐 굉장한.
- 네. 이 박사 독단으로 한거니까.
- 그렇죠. 인제 그 야단이 났는데 하루는 제가 내가 그 딴 무슨 부 사사부일로 내가 그때 그 임시관저를 들어갔어요. 가니까 이 양반이 그 서재에 앉아서 뭐 쓰시고 앉아 계시더구만요. 그래 가서 인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다가 이 양반이 갑작스럽게 날 보더니 이봐. 네. 나 겁이 없는 사람이지? 그 저희들이 뭐 잘 알고있지 않습니까. 그래. 내 겁을 모르는 사람인데 내 이번엔 혼났어. 아니 무슨일로 혼이 나셨어요. 아니 반공포로를 하긴 해놓고 내 혼났어. 내가 일생을 통해서 이 참 독립운동에 말이야 잠 못 자본 적은 없다. 언제든지 누우면 내가 즉시 잔다. 그래서 내가 건강이 유지된 사람이야. 한데 이 반공포로를 해놓고 내가 이틀밤을 고대로 세웠어.
- 아.
- 그래 내가 아니 영국 국회에서 각하를 잡아 가두라고 이런 건의까지 나오니 그게 겁이 나셨습니까. 내가 웃으면서 그러니까 천만에 그걸 내가 겁을 낼리 있나 우리 국가에 혹 어떠한 그 헤나 돌아오지 않을까.
- 음.
- 내 그 말씀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 네.
- 난 이틀밤을 못 주무시고 당황하고 참 겁을 지금 잡수셨다고 하길래 자기 지금 신변 혹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가진 않을까 혹은 또 신변에 무슨 이런 염려인줄 그 누구든지 그렇게 짐작할 것 아니에요. 천만의 말이다 이거야. 그걸 내가 겁낼 사람이야? 우리나라 혹 무슨 헤나 돌아오면 어떡하지 아 내가 일은 저질러 놓고 말이야. 응? 이틀밤을 내가 고스란히 세웠어.
- 영도자로서의 그 책임감 때문에 그랬다 이말이야.
- 네. 애국심이지요. 참 그런 점에야 밉다가도 고운 생각이 문득 문득 납니다. 미운짓도 많잖아요? 근데 내 개인이 당한 일도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너무 섭섭한 일이 하지만은 그런걸 한번 우리가 상기해 볼 때 말이야. 우리 사천년 역사가 둘도 없는 애국자라는건 우리가 잊어서는 안됩니다.
- 그 양반의그 독특한 그 성격 이것이 언제나 말썽이었지 근본 그 사리판단 어떠한 국제정세에 대한 그 자신의 그 어떠한 그 시책강구 이런건 뭐.
- 아니 나는 미스터 신, 이승만 박사가 4·19혁명에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고 동시에 조국을 등지고 외국에 망명까지 했지만은 그 분이 과오가 있다면은 모든 과오를 전부 한 산통에다 집어 넣어가지고 우리가 흔들어 볼 때에 아무런 일을 그 양반이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말이야 그 평화선을 설정해가지고 생명선이라고 할 수도 있고 국방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거를 무리하게 설정을 해가지고 그걸 그대로 당신이 12년 동안 이 나라를 통채해 가면서 추호의 참 양보도 없이 일본 사람하고 대항했고 동시에 미국하고도 기타 그 한국을 지지하는 그 우방국가와도 그 문제에 대해서 조금도 굽히는 일이 없이 그대로 그 양반이 끌어 나갔던 그 공로야 불후의 업적이지요.
- 최근에 저 이 한일교섭의 실무을 종사하고 있는 외무부 직원들 당사자들도 말이지요 그런 얘기를 하더군요 자기네들로서는 그때 상상도 못했다구요.
- 나는 내 단이라는 것이 무슨 비경이 있나요마는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누구든지 자기의 의견은 자유롭게 가질 수 있는건데 내가 단을 내리기는 이 평화선 소위 세칭 리 라인이라는데 대해서 어떠한 양보가 있다든지 이거를 우리가 참 고수하지 못했다는 점이 이런 일이 앞으로 있다고 하면 이건 단호히 매북적으로 우리가 판단해야 하지 그 외엔 아무 방법이 없습니다.
- 이 저 남산에서 연설하신 그런 대목을 들은것 같습니다.
- 연설문이 아니라요 이건 우리가 단호히 사수해야 합니다. 이걸 잃고는 이걸 잃고는 우리가 국방상으로 보나 참 우리의 앞으로 생활선으로 보나 이건 다시 우린 뭐 우리의 이건 참 국시로 이건 하나하나 우리 삼천만이 이걸 다 사수해야지 이걸 일본에다 양보한다는거는 이건 국가에 대한 반역행위 입니다.
- 알겠습니다. 얘기가 현재로 돌아왔습니다만 다시 또 옛날로 돌아가서 내일서 부터 계속해 주십시오.
(입력일 : 2008.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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