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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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정계야화
창랑 장택상 편 - 제36회 사형직전의 조봉암
창랑 장택상 편
제36회 사형직전의 조봉암
1965.03.23 방송
‘정계야화’는 65년 1월 4일부터 방송한 15분짜리 대담프로그램으로 70년 10월 5일부터 나간 다큐멘터리 드라마 ‘정계야화’의 원조격이다. 이 프로그램은 광복 20년과 6·25전쟁 15년을 맞아 기획한 것으로, 정계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자서전적인 회고담과 함께 정계의 뒷얘기를 들려줘 청취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 오늘은 그 58번째 시간 조봉암의 사형 직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역시 전 국무총리였던 장택상 씨와 동아일보 정치부장 신동준 씨와의 대담으로 들으시겠습니다.

- 어제까지는 수 삼일에 걸쳐서 그 우리나라 20년 정치 사상에 큰 애포기라 할수 있는 그 부산 정치파동 시기에 있었던 여러가지 일에 대해서 재밌는 말씀을 들었습니다만 앞으로 또 계속해서 그 후에 일어났던 정계 이면에 대해서 창랑 선생님의 그 얘기를 계속 좀 들었으면 합니다.

- 그렇지요. 어제 그 우리가 얘기할 때 그 신탁정치를 우리는 할 수 없다 이런말을 그 조봉암 씨가 했다고 내 잠깐 비친일이 있지요.

- 아 저 그 발취 개헌안 통과되던 날 아침에 그 얘기.

- 네. 그 유엔 본부에서 파견된 사람 말 듣고 우린 이걸 통과시켜야 한다 이래서 수집하기 위해서 통과 시켜야 한다 신탁통치는 받을 수 없다 이런 얘기를 듣고서 내 짐작에 조봉암 씨는 공산당으로 우리가 믿을 수 없다 이런 얘기를 내 비친 일이 있는데.

- 네.

- 내가 그 조봉암 씨 하고 비록 그 정치 이념이라고 할까요 견해에 대해서 다소간 우리가 보는 점을 달리하고 있지만은 그 분이 그 공산당으로는 그럴수가 없다하는 이런 그 짐작은 지금도 내가 가지고 있습니다.

- 네.

- 그 중에 가장 내가 지금까지 기분에 언짢게 생각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요.

- 네.

- 그건 언젠고 하니 조봉암 씨가 그 1959년 7월 30일 인가 31일에 최후의 날을 맞이하지 않았어요?

- 네.

- 그날로부터 소급해서 약 한 2주일 전에 내가 하루는 집에 앉았다니까 죽산의 따님이 좇아 왔어요. 와서 대뜸 날 붙들고 아저씨 사람 살리오 하고 참 통곡을 한단 말이야. 그래 난 그 죽산이 감옥에서 혹 병이 났나 해서 그 위험 상태에 빠져 있는가 이렇게 짐작 하고 왜 아버지가 어디 편찮으시냐 왜그래 울지마라 그러니까 그게 아니고 오늘 인천에 우리 본적이 있는데 거기서 호적 처분을 해갔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 누가요.

- 그 저 법무부에서요.

- 네.

- 난 그거 또 절차를 전혀 모르니까 아니 호적처분 해갔는데 너 왜 우니? 그런게 아니라 사형 집행 하자면 호적 처분을 해 간답니다. 그 너 그 자세하냐. 아 자세합니다. 그럼 너 여기 있거라. 그래 내가 인제 법무부에 좇아 갔습니다. 가니까 법무장관이 그 때 모 씨 인데 법무장관이 자리에 없어요. 비서관을 보고 장관 어디 가셨는가? 이러니까 지금 대통령 관저에 갔는데 지금 곧 오신다고 전화가 왔는데 몇 분 안돼서 곧 오실 겁니다. 그래 날 장관 방 그냥 빈 방에 앉으라고 해서 인제 앉아 기다리니까 10분이 되락마락 해서 장관이 돌아 왔어요. 그래 내가 첫째 그 장관보고 묻기를 내가 이렇게 물었어요. 내년이 대통령 선거지? 아 그렇소. 그러면 너 경향신문을 정간하지 않았냐. 또 거기다 죽산 사형집행을 한다니 말이야. 겹쳐서 두가지 일을 하면 당신네들 선거에 유리할것 같소? 불리할것 같소? 그 장관 말이 아 글쎄 뭐 유리하다고 생각하긴 어렵지 않습니까. 그렇소. 그게 상식이오. 그렇다면은 왜 죽산 사형을 하필 선거 1년 앞두고 지금 집행할게 뭐 있느냐. 일년이라니 불과 6, 7개월이지.

- 그렇지요.

- 7월달 이니까.

- 그게 조봉암 씨가 구속된게 1958년 1월 13일 그 진보당 사건으로 아마 그게 60년 3·15선거 2년 전에 구속이 됐지요.

- 그렇지요.

- 그래가지고 그 이듬해 59년 7월 31일날 사형 됐으니까 일년 조금 남짓 했었던 때 아니겠어요?

- 일년 넘고 3·15 선거니까 그 이듬해 이 1960년 3월 15일이 정부 등용선거 아니에요?

- 그렇지요.

- 인제 그게 7월달이니까 불과 6, 7개월 이지요.

- 그렇지요.

- 그렇다면 당신네들 확실히 유리하지 않다고 생각을 한다면 당신네들 선거에 왜 죽산 사형을 좀 연기 못하겠느냐. 경향신문 정간한 것도 이게 지금 사회적으로 큰 지금 마이너스다. 당신네들에게. 거기다 죽산 사형까지 겹쳐서 하면 불리할건 틀림없는 사실인데 말이야 왜 지금 갑작스레 서두를 필요가 어디있냐. 이렇게 내가 참 추긍을 했단 말이야. 하니까 아 그래 아니라도 지금 대통령을 뵈옵고 나오는 것이 그겁니다. 그 어떻게 됐냐. 대통령께 이런 말 저런 말 말씀을 여쭙고 난 뒤에 조봉암 사형집행 문제에 관해서 각하께 좀 여쭤 보겠는데 이 법의 절차로 말하면 대통령 사형집행이 대통령 재가가 아니고 법무장관 재가로 이게 집행되는 겁니다. 근데 집행 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는데 각하께서 혹 거기에 대해서 의견이 어떠실런지 좀 알고싶어 합니다. 대뜸 대통령이 그건 법무장관의 일이지 내 일은 아닌거 아닌가. 법무장관의 재가로 된다면 법무장관이 하던지 아니 하던지 법무장관의 재량에 의해서 할 일이지 내 의견까지 필요가 없지 않는가. 이러고 일축을 안썼습니다. 그러면 제가 자유가 있습니다. 이랬거든요. 그건 똑 그 사람이 한 말입니다. 제가 사형을 집행하고 아니하고 하는 것이 내 맘대로 할 수 있다 이걸 내게 그대로 시사했단 말이야. 그래 내가 그 말 척 받아가지고 아 좋다 너 연장할 용의가 없느냐 이러니까 그럼 조건부로 하겠습니다.

- 네.

- 서로 교환조건으로 할 수 있습니까. 날 보고 이렇게 물어요. 그 장관이. 그 뭐냐. 3월 26일이 이 대통령의 생신날인데 그러니까 그때가 7월이니까 지나간 얘기 아닙니까 그 때 인제 감옥에 있는 죄수들에게 전부 과자를 한 봉다리씩 돌린데요. 이 대통령 생신날은. 근데 죽산은 그걸 거부했다 이말이야.

- 네.

- 난 간식 먹고 있으니 이것만 하면 족하지 내가 뭐 이 대통령 생신날이라고 해서 과자 받아먹을 필요가 없다고 거부를 했다. 그게 괴씸하다. 또 하나는 죽산이 잡혀 들어가가지고 오늘날까지 형의 형량이 확정될 때 까지 올라가가지고 성명서를 가지고 자기가 공산당이 아니라는 그 해명 한마디 한 일이 없소. 그 두가지가 괴씸해. 만일 창랑 근데 그 사람 말로 창랑 선생이 죽산이 오늘이라도 성명서 한장을 발표하고 내가 공산당 아니라는 그 자기의 견해를 밝히면 내년 까지는 내년 대통령 선거 끝날 때 까지는 이걸 연장 시키겠습니다.

- 네.

- 좋다. 그건 내가 책임지마. 그럼 당신 이거 약속이야. 약속이고 말고요. 그 사람 말로요. 선배시고 또 참 연령으로 보든지 어디로 보든지 내가 어떻게 창랑 선생한테 실언을 하겠습니다. 그럼 너 손 다오. 우리 악수하자. 이러고 나는 참 장관을 그 회당 장관에게 죽산이 성명서 낼거를 내가 약속을 하고 이렇게 집을 돌아서서 그 따님을 너 빨리 가서 윤길준 군을 데리고 오너라. 그 때 윤길준 군이 아현동 살았단 말이에요.

- 네.

- 그래 이 사람이 참 이 죽산 따님이 내 짚차를 타고서 빨리 가서 윤길준 군을 한 40분 좌우간에 윤길준 군을 데리고 왔단 말이야. 윤길준 군, 지금 일이 이렇게 됐다 됐으니 너 성명서 하나 만들으란 말이야. 죽산 지금 형무소에 있으니까 니가 대신 하나 만들어. 그래 이제 윤길준 군이 그 내가 거처하는 사랑 그 건너방으로 가더니만 한 2, 30분 만에 성명서를 하나 만들어가지고 왔는데 그 원고지로 한 6, 7 페이지가 돼요. 너무 장황하단 말이야. 내가 그랬지. 여보오 윤 의원, 이거 글은 좋아. 허나 이렇게 장황한걸 누가 다 읽소. 이걸 좀 간소화 합시다. 아 그럼 창랑 선생이 집필 하십시오. 그래도 좋겠소? 이러니까 아 좋고 말고요. 하십시오. 그래 내가 한 6, 7행의 그 성명서를 만들었다 이말이야. 자 이게 죽산의 참 정치적 입장을 밝히는 건데 좌우간 이게 죽산이 한번 봐야 한다. 자의로 이걸 참 단행할 수 없다. 너 빨리 가서 내 짚차를 타고 형무소 가서 죽산한테 이걸 한번 보이고 이게 좋다면 우리가 오늘이라도 이걸 발표를 하자. 좋습니다. 그래 갔단 말이야. 어떠 취지의 내용이었습니까 그 성명서가. 근데 내 성명서의 내용은 그렇습니다. 그게 신문에 전부 보도 됐고 지금도 찾으면 있을겁니다만은 좌우간 그 요지는 이거야. 내가 비록 공산당으로서 사형을 받았다. 하지만 이건 내가 애매하다 본의 아니다 나는 공산당 하고 개별한 사람이다. 하니 내가 만일 형을 참 받아서 내가 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적어도 과거의 나와 같이 일하던 내 동지들은 대한민국에 충성을 바칠것을 내게 나는 청구한다. 이런 그러니까 자기가 공산다잉 아니라는 그 입장을 밝힌거란 말이야. 그러니까 윤길준 군이 형무소에 좇아갔단 말이야. 한 40분 이내에 한시간 이내에 돌아와서 윤길준 군 하는 말이 아 괜히 저 창랑 선생 말 듣고 형무소에 갔다 난 죽산 선생한테 꾸중만 꾸지람만 듣고 왔어요. 그래 난 얼른 생각에 아 죽산이 아마 자기 입장을 안 밝힐라고 왜 이런짓을 하느냐고 하면 거기에 대해서 그 윤길준 씨가 그 아마 뭐라고 나무란것 같다고 그래서 난 기가 죽었지. 아 그럼 할수 없지 할수 있소? 그럼 그거 내시오. 아 그거 아닙니다. 그럼 뭐요? 아 죽산 면회를 요청해가지고 죽산이 나오기에 물었더니만 아 대뜸 누가 집필했소? 그 창랑 선생님이 했습니다. 그러면 고만이지 왜 내게 갖다 뵈어. 창랑이 했으면 그만이지 나한테 보일게 뭐야. 그대로 하지 왜 여기까지 좇아와서 난 그런 얘긴 듣기 싫어하고 아 간수보고 들어가자고 해서 아 그만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래 내 말이 그 점이 죽산이오. 그 날 믿는단 말이오. 그러니 내 책임이 더 중하오. 허나 자기가 발표 하시오. 이래서 그게 7월 17일날 그 성명서가 신탁신문에 전부 보도 됐다고 그게 인제 제헌절 입니다.

- 네.

- 그런지 2주일 좌우간에 그 법부장관이 죽산의 목에다가 밧줄을 걸었습니다. 괴씸 합니다. 예. 공적으로 배신했고 사적으로 배신했고 그건 용서 못할 죄인 입니다. 죽산이 사형을 받아야 옳은가 안 받아야 옳은가 그건 법의 재사니까 내가 거기에 대해서 왈가왈부는 안해요. 허나 좌우간 죽산 사형을 연기 하겠다고 정부통령 선거 끝날 때 까지 연기 하겠다고 내게 공적으로 약속을 하고 사적으로 그때 또 내가 당시에 국회의원이니까 공적이라해도 과하다 이 말이야. 해놓고서 2주일 안에 그 사형을 단행한 거는 일종의 죄악이야. 사적으로도 배신이요 공적으로도 배신 그 죄악에 대해서 내가 지금도 용서할 용의가 조금도 없다는걸 내가 밝혀 둡니다.

- 알겠습니다. 내일 또 계속해서 듣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하지요.

(입력일 : 2008.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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