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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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정계야화
창랑 장택상 편 - 제32회 부산 정치파동
창랑 장택상 편
제32회 부산 정치파동
1965.03.18 방송
‘정계야화’는 65년 1월 4일부터 방송한 15분짜리 대담프로그램으로 70년 10월 5일부터 나간 다큐멘터리 드라마 ‘정계야화’의 원조격이다. 이 프로그램은 광복 20년과 6·25전쟁 15년을 맞아 기획한 것으로, 정계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자서전적인 회고담과 함께 정계의 뒷얘기를 들려줘 청취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 오늘은 그 54번째 시간, 의원 연행에 대한 의견 대립에 대해서 역시 전 국무총리였던 장택상 씨와 동아일보 정치부장 신동준 씨 와의 대담으로 들으시겠습니다.


- 네. 그리고 어젯밤까지 얘기들으면 국무총리 창랑 선생님 자신도 모르게 내무부 장관에 이범석 장군이 입각하게 됐고, 그래서 결국 그 때 부산에 그 딱벌떼 뭐 백골단 민족자결단 수 없는 그 폭력배들이 난무하는 사태에 대해서 인제 이범석 내무부 장관이 몰랐을리는 없는데 그 주모자와 난동의 계통과 어떠한 그 은밀한 그 내맥이 있었는지 없없는지는 모르는데 어쨌든 그 사태에 대해서 내무부 장관이 대체하는 문제 이런것이 얘기 나오다 말았어요. 오늘 계속해서 좀.

- 그 지금 말씀하신 바와 같이 내무장관 임명이 국무총리와 아무런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건 그건 오히려 약과 입니다. 그건 대통령에게 오히려 임명권이 있으니까 또 국무총리야 뭐 상의 안한다는 것도 과히 그렇게 뭐 나무랄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은 제일 참 기괴망칙한 이런 무엇보다도 그 5월 25일에 개엄령 선포가 되지 않았어요?

- 네.

- 개엄령 선포라는거는 당연히 국무회의를 거쳐야 되는 겁니다.

- 그렇지요.

- 네. 더구나 또 내가 대통령의 헌법에 대통령의 국무부 의장이고 소위 국무총리가 국무원 부의장이면 당연히 내가 그 국무회의에 참석해야만 될것 아닙니까. 개엄령이란 국가 중대한 사태의 하나인데. 이 개엄령을 국무총리는 아랑곳 없이 딱 이 5월 25일날 선포를 했단 말이야.

- 전혀 뭐.

- 전혀 모르지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전화걸고 물으니까 누구누구가 참석했냐고 물으니까 뭐 참석이고 정식 국무회의 열린적도 없고 내무장관만 거기에 참석했던 것만 압니다. 다른건 내용은 전혀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나한테 그 답변한 거에요.

- 청와대에서 아니 그때 그 임시관저에서요?

- 아 예. 내무부에다 내가 저 치안국에다 대고 전화를 걸었지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그 때 치안국장이 윤우경 군이라고 과거 내 수도청장 때 내가 데리고 있던 사람 이에요.

- 네.

- 하도 어이가 없어서 개엄령을 선포 하면서 소위 국무총리라는 것이 아는것 없다는 것이 이거 도대체 이 양반 포석을 하고 있는 일인가 이래서 의아해졌죠. 그러던 차에 개처 임시정부로 쓰고있던 그 부산 그 도청에 그 청사 안으로 대모대가 밀려들어오는데 수천명씩 뭐 각 공장 직공 남녀직공 뭐 할것 없이 그저 도라커에다가 수십대씩 실어가지고 길에다 퍼뜨려 놓고 이것이 그저 도청 안으로 꾸역꾸역 기들어 옵니다 그려. 무슨 소리를 하는지 그저 아우성을 치고 뭔지 밥을 달라는 얘긴지 뭐 누굴 죽이자는 얘긴지 당초 뭐 분별조차 할수 없는 그 아우성을 지르고 들어오니 뭐 기절 초절할 일이지요. 하도 어이가 없어 그 때 국방차관이 김일환 군, 김일환 군이 그 때 국방차관인데 내 김일환 군을 불렀지요. 이 헌병을 좀 풀어서 경찰력 가지고 도저히 막을 수 없다. 그러니 헌병을 좀 풀어서 이걸 막아다오. 이러니까 김 군이 헌병 오십명을 데리고 왔어요. 와서 인제 그걸 막아내니 뭐 헌병인들 도리가 있나요? 그게 오전 11시쯤 됐는데 오후 3시쯤 되니까 김일환 군의 얼굴이 아주 새카맣게 돼서 아이고 저 헌병 데리고 가야 겠습니다. 왜그래? 아 이걸 누가 또 그 때 대통령이 서울에 있었어요. 이 양반에 부산에 안 내려갔어. 꼭 서울만 앉아서. 대통령께 누가 보고를 했는지 대통령이 전화로 국방차관 대라고 하더니 호령을 하시고 당장 파면이라고 벼락천벌이 났습니다. 이 헌병을 거둬야 겠습니다. 그 마음대로 거둬가지고 가구려. 그러니 이제 헌병이 도청 현관을 막고 하다가 인제 일시에 그 헌병을 전부다 철회를 하니까 인제 이 대모대들은 기고만장해서 말이야 더 아우성을 치고 도청 정문앞까지 쫓아 들어왔다 이 말이야. 현관 앞까지 쫓아 들어왔단 말이야. 인제 이러고들 지내는데 바로 그 이튿날인가 헌병대에서 개엄사령부지요. 헌병대가 아니라 개엄사령부에서 헌병 한 일소대를 풀어가지고 와서 박스를 가지고 국회의사당이 있는 한 50명을 연행해 가더군요.
어디로 가느냐 하니까 형무소로 간다고 해요. 처음엔 뭐 개엄사령부 들어가서 일단 몇 마디 묻고서 형무소로 수감했다. 이런데 이제 여기에 한가지 내가 얘기해둬야 할 것은 철기가 과거에 나하고 참 막역간 입니다. 해방 후 얘긴데 해방전엔 내가 철기 전혀 나도 철기 존재를 모르고 철기도 내 존재를 몰랐는데 해방 후에 민족청년단 할 때 내가 그때 수도청장을 했었고 서로 협조하고 지냈는데 이제 철기하고 나하고 조금 틈이 나기를 이 국회의원 이 구금한 이 문제에 대해서 인데. 하루는 내가 내 숙소를 가니까 지금 민정당 간부 아닙니까? 권중돈 씨의 그 아우되는 사람이 왔어요. 내 숙소로 와서 왔기에 내가 물었지요. 백씨 지금 형무소에 계시지? 그렇습니다. 그래 지금 어떠신지 가봤소? 지금 막 다녀오는 길 입니다.

- 그 때 그저 곽상훈 씨, 이석기 씨, 서범석 씨, 권중돈 씨 이렇게 구성이 돼 있었어요.

- 그 중 한 50명 다 들어갔어요.

- 아 전 지금 형무소 갔다가 혼이 나고 왔습니다. 다신 이제 못 가겠습니다. 왜그러냐? 아 가니까 형님이 왜 장 총리 한테 안가고 왜 여길 오느냐 이 말이야. 너 여기와서 무슨소용 있냔 밀이야. 장 총리한테 가서 하루바삐 날 좀 석방 해주라고 말씀 여쭙지 여길 와서 뭐하냐고 형님이 아주 노발대발 하시고 뭐 다시 갈 도리 있습니까. 그 말을 들으니까 내 가슴이 찢어지는것 같아요. 권중돈 군은 이 바로 나하고 인접한 영천군 출신이요 또 옛날 세외가 있는 집안이요 참 누구보다도 참 가까운 이런 친군데 아 그 사람이 오직 그 다급하고야 자기 아우가 형무소 위문 오는거를 너 장 총리한테 가지 왜 여기와서 시간을 허비하느냐고 야단 치겠어요? 얼마나 속이 가슴이 타고 그렇겠습니까. 그래서 차마 기분이 아주 상해요. 그래서 그날 밤에 잠을 못 잤습니다. 그 이튿날 임시정부로 쓰던 그 도청에 내 쫓아 나갔단 말이야. 나가서 내무장관 방으로 직행을 했다 이 말이야. 가니까 벌써 철기 나와 앉았단 말이야.

- 네.

- 그래 내가 철기보고 여보오 다른 사람은 내가 모르겠소. 이 권중돈 군은 내가 신원보증을 할테니까 놔 주시오. 그러니까 철기가 대뜸 아 그 총리가 신원보증 할라고? 아 하고말고. 내가 신원보증 하겠다. 그러니까 권중돈 군만 석방을 해주시오. 아 그럼 내 개엄 사령관 하고 그때 개엄 사령관이 원형덕 중장 의논해 보지요. 그 난 내 방으로 왔단 말이야. 오니까 철기가 불과 한 2,3분이 못돼 전화를 하고서 그 된다고 합니다 하니 곧 신원보증을 써 오시오. 그래 내 신원보증을 써가지고 도장을 찍어가지고 내가 내무장관 방으로 직접 갔단 말이야. 가서 내가 내무장관 앞에 내 놓고 곧 석방해 주시오. 좋소. 그래 내 방으로 왔단 말이야. 그게 인제 10점 반 정도 됐는데 아 그 날 12시가 돼도 소식이 없고 오후가 돼도 소식이 없단 말이야. 그 좀 궁금 하더군요. 4시쯤 돼서 내가 다시 철기 방으로 갔단 말이야. 여보오 종일 기다려도 소식이 없으니 어떻게 된 일이오? 거 안됩니다. 이런단 말이야. 왜 안되오? 장택상 씨 개인도장 가지고는 안된답니다. 여기 관인을 찍으랍니다. 국무총리 관인을 찍으랍니다. 아 그러면 여보오 왜 어서 내게 전화를 하든 말씀을 해주든지 비서를 보내든지 내 방으로 보내면 내가 벌써 관인 찍어 드릴것 아니오. 그럼 날 주시오. 내가 관인 찍어 주리다. 근데 철기가 그걸 내 놓는다 말이야. 그 내 방으로 가지고 와서 그 때 정운갑 씨 자유당 정운갑 씨가 그 때 인사과장이야. 인사과장 불러서 도장 국무총리 가져오라해서 관인 찍었단 말이야. 관인 찍어달라니 즉시 곧 내무장관 방으로 내가 가지고 가서 철기한테 줬단 말이야. 내가 관인 찍었소. 아 그럼 좋소. 근데 그 이튿날 밤에 그날 밤에 자고나서 그날 밤에 당연히 석방 될줄 알았단 말이야.

- 네.

- 그 이튿날 아침에 물어봐야 석방되지 않았다 이거야. 그래 그 이튿날 내가 쫓아가서 이 도청에 출근해 즉시 또 내무장관 방으로 직행을 했어. 그 내가 철기보고 그랬지. 여보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내가 관인까지 찍어서 다 줬는데 다 된다더니 왠일이오. 그래도 석방 안된답니다. 그래 내가 그랬다. 철기 여보오 너무 과하오. 철기하고 나하고 효분이 남과 다른데 그럼 안되면 처음부터 안된다지 처음엔 신원보증 하면 된다더니 나중엔 내 사인 가지고는 안되니 관인 찍어달라해 내 관인까지 찍었으면 그동안 내게 기별이라도 해줘야 전화라도 한마디 있어야 할 것 아니오. 지금와서 철기가 안된다고 하니 난 철기 명령이면 될 줄 아오. 또 철기하고 지금 개엄사령관하곤 같은 군인이고 아마 서로 의사소통이 될 것 같은데 된다는건 자신이 있어서 됐다는거 아니오. 지금 안된다는게 내 맘이 섭섭해갖고 바로 걸어 나왔어요. 그게 나하고 철기하고 틀리기 시작 입니다. 내가 마음이 섭섭 했어요.

- 결국은 그 때도 역시 그 대모대 라던지 백골단이라던지 그 난동자 하고 말이죠. 총리는 말할 거 없고 내무부 장관도 중간에서 개입 못하고 결국은 어느 최고 위층 하고 그 난동자 하고 이렇게 직결 됐던거 아니겠어요? 거기에 인제 군대가 관계가 돼있고.

- 그 때 부산 정치파동을 겪은 친구들도 지금 많고 또 지금 식자들도 많으니까 그 분의 판단에 맡겨서 규정 짓는게 낫죠. 지금 우리가 뭐 왈가왈부 한다는거 보다도.

- 근데 그 그때 보면 인제 내무부 장관 또 정부 여기다 뒤집어 씌우기도 하고 정당에다가 또 말하는 사람도 있고 있는데 하여튼 이 정치파동에 관한 얘기를 좀 더 내일 밤 계속해 주셔야 겠습니다.

- 하지요.

(입력일 : 2008.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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