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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야화
창랑 장택상 편 - 제29회 부산 정치파동 이후의 장면국무총리
창랑 장택상 편
제29회 부산 정치파동 이후의 장면국무총리
1965.03.15 방송
‘정계야화’는 65년 1월 4일부터 방송한 15분짜리 대담프로그램으로 70년 10월 5일부터 나간 다큐멘터리 드라마 ‘정계야화’의 원조격이다. 이 프로그램은 광복 20년과 6·25전쟁 15년을 맞아 기획한 것으로, 정계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자서전적인 회고담과 함께 정계의 뒷얘기를 들려줘 청취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 오늘은 51번째 시간으로 부산 정치파동 직전에 장면 총리의 동태에 관한 얘기를 들으시겠습니다. 대담에는 역시 전 국무총리였던 장택상 씨와 동아일보 정치부장 신동준 씨 입니다.

- 수 삼일에 걸쳐서 부산 정치파동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만 이 우리나라 이제까지 20년 정치 사상에 부산 정치파동으로 말하자면 하나의 가장 그나마 애폭이 될 것 입니다. 6·25 사변 그 한복판에서의 그 혼란과 참 불안과 이런 속에 그러한 그 사회상을 배경으로 해서 우리가 겪었던 그 정치적인 소용돌이 이런것은 아마 두고 두고 우리의 그 하나의 큰 교훈도 될 수 있고 참 씻을 수 없는 여러가지 문제점을 남겼는데요. 어저께 지난 밤 까지는그 창랑 선생님이 제 3차 개헌안 이것을 오휘영 씨 라던가 곽상훈 씨 라던가 이런 분들이 주동을 해서 서명 날인에 쓴 것을 국회에 제출 하려던 찰나에 창랑 선생님의 기발한 작전으로 이것을 저지시킨 말씀까지 들었는데요. 오늘 계속해서 그 때 말씀 해주시길 그 그 당시에 장면 총리의 여러가지 역할이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런 말씀에 대해서 좀 계속해서 얘기를 해 주십시오.

- 글쎄요. 그 기발하다는 건 조금 내 구미에 맞지 않는 표현이라고 생각 합니다. 나는 그 이성적으로 한건데. 우리 다 알다시피 역사라는건 언제든지 되풀이 하는 겁니다. 그런 까닭에 그 부산 정치파동 이라는게 장래에 과거는 뭐 말 할 것도 없고 장래로 봐서 그 중대한 그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또 그게 우리들에게 중대한 교훈을 줄 것은 틀림없는 사실 입니다. 근데 그 내가 보기엔 그렇습니다. 내가 보기에 장면 씨가 그 때 그 들어오셔가지고 그 분의 그 동태가 결국은 그 부산 정치파동의 그 요인이 됐다는 그 점에 대해서 내가 조금 이야기 하고 싶은건 다른것이 아니고 장면 씨는 요전번도 내가 몇 번 방송을 통해서 말씀 했지만 나하고 그 가까운 동지고 또 그분이 참 점잖고 그 외교에서도 그 분이 한국에 참 큰 공로를 세운 이 입니다. 첫 대 그 6·25 때 그 미국 파병문제 같은건 그 장면 박사가 그 불후의 그 참 공적을 남기니까.

- 지난번에 얘기 들었죠?

- 네. 그런 분에 대해서 한 마디 라도 좀 참 그 심상하게 얘기 하다간 그 역사에 참 그 오점을 남기는 것 만큼은 그 삼가해서 얘기해야 될 것 입니다. 근데 내가 보기엔 그 분이요. 그 부산 정치파동에 도의적 책임이 있다고 난 이렇게 봐요. 뭐 그 분이 무슨 의식적으로 했다는건 아니고 좌우간 그 분의 그 성격의 결함 이라고 난 그렇게 보는데 그게 결함 이라고 해야 그게 옳은 표현일까 어떨까 나는 그건 확실히 잘 모르겠습니다만은 좌우간 그 분이 너무 다급한게 탈이야. 그 부산 정치파동 때 아니 정치파동이란다 자기가 그 하와이서 본국을 돌아 와가지고 국무총리로서 제6차 유엔총회에 파견된 분인 것 만큼 귀국 즉시 그 날 대통령에게 그 봉명을 해야 그게 당연한 일 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 창랑 선생님이 요전에 귀국 하셔서 이 대통령 만났을 때 그 장 총리를 어떻게 했느냐고 막 호통을 쳤던 그 직후 아니겠습니까?

- 그렇죠. 네. 근데 그 분이 얼마 후에 들어 왔는지 그 내 날짜는 잘 기억 안 납니다만 좌우간 3주일 안에 들어 왔어요 그 분이.

- 네.

- 그 때 이야긴 뭔가 장면 총리가 귀국 해가지고 이 박사에게 즉시 그 귀환 보고를 안했다는 겁니다.

- 네.

-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나는 확인 못해요. 지금 장면 총리도 이 방송을 들으시면 어떻게 생각 하실런지 모르지만 좌우간 그 때 그 떠돌아 다닌 얘기로는 장면 총리가 즉시 그 귀환 보고를 이 박사 한테 안했다. 그 안한 이유는 자기가 지금까지 해 내려온 그 깐이 있으니까 차마 이 박사를 정면으로 대하기가 어려워서 유엔에 다녀 온 그 즉시 봉명을 안했다 하는 이런 얘기가 떠돌아 다녔습니다. 그걸 내가 그 때도 그렇게 반신반의 했지 믿은적이 없고 지금도 내가 그 자세히 모르니까 그건 모르겠습니다만 장면 씨 한테 내가 확인해 본 적도 없고 해서 모릅니다만 좌우간 그 때 얘기는 장면 씨가 봉명 안했다.

- 네.

- 이제 그런데 인제 이 박사는 어쩐지 장면 총리에게 참 총공격을 가했다는건 내가 압니다. 그 때 내무 장관이 그 누구 참 장 누굽니까 이 분을 인제 장면 총리에게 보내서 그 때 장면 총리가 부산에 와가지고 미군 병원에 입원 했댔어요.

- 네.

- 미8군 그 우수 병원에 입원 했댔어요. 근데 그 우수 병원에 들어가기가 어렵답니다. 그 엠피들이 그 사람을 잘 안들여서 장면 박사 그 입원실에 잘 접근 안 시켜주고 이랬데요. 소문만 내가 들었지요. 근데 그 장 내무 장관이 이 박사의 그 참 명령을 받고 가서 장면 총리에게 권고 사직을 갔다 이 말이야. 두 차롄가 세 차롄가 갔데요.

- 그러니까 저 장 총리는 그 때 인제 황달병 요양이 끝나지 않았다 해서 이제 입원을 했겠군요.

- 대개 아마 그런 이유 겠지. 근데 이 분이 결국 이제 총리를 사표를 내고 처음 그 때 소동이 일어나기 시작 했습니다. 말하자면 그 무뢰한들이 인제 그 권력층의 그 지시를 받아 가지고 인제 그 대모도 하고 그 임시정부였던 그 도청으로 밀려오고 뭐 그 때 좌우간 소연 했으니까.

- 네.

- 근데 이 양반 이 수녀원으로 어디로 가 버렸다 이 말이야. 병원에서 튀어 나와 가지고 어ㄴ디 수도원으로 가 계셨데요.

- 사표를 내신 후에.

- 그렇지. 그 수녀원으로 가고 이래 됐는데 밖에 소문은 이 양반이 거기서 인제 뭐 또 공작을 하고 있다. 이제 그건 물론 이 대통령 지지하는 족속들의 선전 이겠지. 하지만 그러면서 인제 모든것을 다 공작을 하고 인제 모두 한다 하니 이런 소문이 떠도니까 인제 정부측에서는 점점 장 박사한테 대한 의아심이 더 강해질 것 아니에요? 이래가지고 인제 대모도 일어나고 인제 뭐 삐라도 붓고 별별 인제 그 일이 많았는데 장면 박사가 그 수녀원 까지 가가지고 도데체 얼굴을 나타내질 않고 그 그렇게 그 분이 일을 처사한 그 자체가 그 분이 그 정치파동을 빚어 낸 책임이 그 분에게 있다고 해도 과하다 하는 그런 그 판단을 내가 지금도 가지고 있어요. 그 분이 좀 더 강하게 나가서 말이야. 딱 나서서 국무총리 사표 낸 뒤라도 말이야 국회의원 자기기 포섭하고 또 자기가 쥐고있는 국회의원이 많이 있는 것 만큼 자기가 그 대통령 운동을 정정당당하게 내걸고 했다면 말이야 오늘날 역사가 바뀌어졌을 겁니다. 근데 그 장면 박사가 그렇게 그 우유부단하고 좀 내성적인 그 무엇입니까 실례를 내 하나 봤어요. 그 4대 국회 땐가? 그 때 내 무슨 일인지 자세한 기억 놀랍지 않은 일이 오전 11신가 국회 개회 중인데 내가 그 부통령 관저에 갔단 말이에요. 순화동. 그 11시 쯤 됐는데 내가 가니까 그 비서가 방까지 참 나를 안내를 하는데 이렇게 해서 따라 들어 갔지요. 복도로 해서 따라 들어가니까 그 비서가 호주머니에서 열쇄를 꺼낸단 말이야. 뭔가 했더니 문을 이렇게 열어요. 보통 늘 그 방에 있었는데 아마 그 양반이 안에 계신가 보다. 문을 잠궈 놨다가 손님이 오니까 열고 손님을 안내 하려고 여는 가보다 하고서 이제 난 기다리고 있으니까 문을 덜컥 열고 들어가시지요 이러는데 들어가니까 그 장면 부통령이 거기 앉았단 말이야. 그래 내가 여보오 운석 그 분이 호가 운석 입니다. 여보오 운석이 왜 백주에 문을 왜 걸고 앉았소? 아 그거 내가 그런거요? 비서들이 꼭 나를 여기다 이러고 문을 잠그고 있다 그 말이야. 그래 내가 그러지 마시오. 그 무슨 비겁한 일이요. 백주에 말이요 또 경찰관이 30여명이나 여기 있는데 말이야. 백주에 그 자기 집에서 문을 걸고 앉았대서야 그 누가 보든지 아마 그 안됐소. 그 장 부통령 그러지 마시오. 그래 내 국회에 와가지고 대뜸 김영선 의원을 보고 그랬습니다. 김영선 의원이 장 부통령 하고 친하잖아요.

- 재무장관 했던...

- 그렇지요. 저 그 민주당 정권 때 재무장관. 여보오. 당신 그 보스 한테 분부 좀 하오 말이야. 그 뭐요. 오늘 내가 지금 갔다 오는데 말이야. 아 백주에 자기 방에 앉아서 밖으로 문을 걸고 앉아서 손님 오면 비서가 문을 열고 그 안내를 하고 이러니 그 누가 내야 관계 없소. 내가 그 한 집안 같은 사람이 누가 보든 좌우간 그런 꼴이 있소 말이야 그. 내 이런 그 실례가 있어.

- 네.

- 그런거 본다면 그 양반이 좀 다급한건 또 사실이야.

- 네.

- 예전에 그 뭡니까. 그 부민 시민관인가 어디에서 저격도 당하고 그랬지요?

- 네.

- 그 분이 그런 일을 모두 당하고 나니까 아마 그 전부 쇼크를 받았는지 좌우간 그 양반이 겁이 많은 양반인건 그 틀림없는 사실 이에요.

- 그 때 그러니까 장 박사가 그 정면에 나오시질 않았다는게 이제 큰 요인 이었다 이거죠.

- 그 분이 그 때 인제 이 박사에게 사표를 내고 정정당당히 딱 나가 앉아서 말하자면 대통령 운동을 했다면 말이에요. 그 분이 그 때 대통령 됐을런지 모르지요. 단, 내가 보기에 그 내 잘못된 판단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왜 그 양반이 그 내성적으로 뒷 줄에 숨어 앉아서 있기 까닭에 말이야. 그 무슨 딱벌떼니 백골떼니 그 모두 일어나 그 원인이 장면 박사가 너무 다급해서 말이야. 정면으로 좀 적극성을 띄지 않았느냐 하는 거기에 원인이 있다고 나는 지금까지 그 판단 그냥 가지고 있다 이거에요. 그리고 5·16 혁명으로 말해도 미스터 신, 그 때 장면 총리가 그렇게 도피를 하지 않고 정면에 나서서 말이야 대통령 관저로 그 대 갔던지 또는 자기 관저에 앉아서도 말이지. 좀 적극적으로 나서서 말이야 이걸 진압 했다면 말이야. 이 나라 역사에 폭력이 합법 정부를 밀어낸 그런 불량한 사태를 안 빚었을런지도 그걸 누가 보증 하겠느냔 말이야. 그 양반이 적극성을 띠지 못한 까닭에 그 참 우리나라 역사에 4천년 역사에 한 번도 없었던 군사혁명 이라는게 일어난 것이 말이야. 이거 앞으로 우리에게 좋지 못한 전래를 남겨논 것이 그거 아니냐 이런 내가 판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 알겠습니다. 정치파동의 핵심 얘기로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만 내일 밤 또 계속해서 들려 주십시오.

(입력일 : 2007.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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