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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랑 장택상 편 - 제28회 국회 본회의개회직전 빼돌린 개헌성명
창랑 장택상 편
제28회 국회 본회의개회직전 빼돌린 개헌성명
1965.03.13 방송
‘정계야화’는 65년 1월 4일부터 방송한 15분짜리 대담프로그램으로 70년 10월 5일부터 나간 다큐멘터리 드라마 ‘정계야화’의 원조격이다. 이 프로그램은 광복 20년과 6·25전쟁 15년을 맞아 기획한 것으로, 정계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자서전적인 회고담과 함께 정계의 뒷얘기를 들려줘 청취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 오늘은 50번째 시간으로 본 회의 개회 직전에 36명 개헌 서명을 빼돌린 얘기에 대해서 역시 전 국무총리 였던 장택상 씨와 신동준 동아일보 정치부장의 대담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 어젯밤은 그 부산에 신성 요정에 창랑 선생님이 인제 곽상훈 씨 라던가 오휘영 씨 여러분들이 개헌 서명을 받기 위해서 회합 하신듯 하셨다가 그 서명을 거부 하시고 뛰쳐 나오시는데 까지 얘기 들었습니다. 그니까 1952년 그 부산 시절에 말하자면 정치파동의 인제 이게 서곡이라 그럴까요.

- 서곡이지. 전초전이지요.

- 전초전인데 이제 지나놓고 보니 뭐 이렇게 아무렇게나 다 얘기 할 수 있는 겁니다만 그 때만 하더라도 이게 참 비화 중의 비화 였는데요.

- 그렇죠.

- 창랑 선생님이 그 때 서명을 거부 하시고 뛰쳐 나오신 뒤에 그 분들은 어떻게 되셨을까요? 거기서 무슨.

- 근데 이제 얘기가 이렇게 순서적으로 적어보면 이렇습니다. 내가 그 이튿날 집에 와 자고 그 내가 신성서 서명 거부를 하고 나온 것이 그게 9정 조금 넘었을 때니 집에 와 잤지요. 자고 아침에 일적 국회를 나갔지요. 내 방으로 갔단 말이야. 부의장실로. 가니까 오휘영 씨가 곧 들어와요. 내가 들어가서 막 앉자마자 오휘영 씨가 들어와서.

- 부의장실로요?

- 네. 오휘영 씨 말이 그 말이야. 어제 저녁은 우리가 그렇게 다 헤어지고 말았다. 말았는데 장 부의장의 그 합의를 꼭 봐야겠는데 개헌을 오늘이라도 상정 시킬테지만은 하루 더 멈추고 오늘 저녁에 다시 그 시간에 신성서 모여가지고 우리가 그 합의를 봅시다. 좋소.

- 그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감정이 격해 있었던 상태는 아닙니까?

- 그 때는 조금도 무슨 그런 감정은 없지요. 아무런 감정이 있을 까닭도 없고.

- 신성에서 그래도 뛰쳐 나오실 때는 서먹서먹 하지 않았겠어요?

- 그렇지만 그 사람들이 내가 미리 서명 공작에 다 자기네들이 도장을 받고 그 서류를 완비해가지고 있다는것 까진 모르고 있는 줄 알았지. 나는 조금 감정이 있지. 그러니까는. 아시겠어요? 왜 통틀어 놓고 그 때는 다 얘길 안하고 왜 초지장 같이 그렇게 갈아 놓고 내 합의만 보려고 하느냐 하는데 조금 그 참 뭐라고 할까 그 조금 섭섭하다고 할까 그 어떤 그 무엇이 있어. 하지만 그 분들은 이제 그걸 모르지. 아직 까지는. 나중은 다 알고 있었지만.

- 그럼 그 날 아침에 오휘영 씨는 개헌안을 그 제안할 준비가 다 돼있다는 말씀은 하신건가요?

- 그랬지요. 서명 공작을 필요해서 다 가지고 있다 이 얘기는 그 때 까지 안해. 왜그런고 하니 내 도장 받기가 목적이니까 서명 공작을 다 필요했다 이러면 아마 내가 도장 찍는데 조금 주저하지 않을까 하는 아마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 같아요. 그래서 내 말이 좋소 그럼 오늘 저녁에 내가 가겠소.

- 다시요?

- 네.

- 네.

- 그리고 오휘영 씨가 나갔는데 그 뒤에 의사 과장에 이호진 군이라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들어와요. 들어와서 장 부장 오늘 사회 맡으셔야 합니다. 여보오 신 의장 왜 어디갔소. 조 부의장 또 어디가고. 다 유보해서 오늘 장 부의장이 맡으시기로 어저께 그 의장 한테서 통지가 와서 의사과로 통지가 왔습니다.

- 아, 해군 신의장이 안 나오셨군요.

- 그렇지. 그래서 이제 아 좋다. 그리고선 뭐라고 하는고 하니 오늘 개헌안이 상정 됩니다. 이래요. 의사 과장이.

- 네.

- 자네 그거 무슨 소린가. 개헌안이 상정 되다니. 아 그 내각 책임제 개헌안 오늘 상정 됩니다. 누가 그러던가. 아 지금 오휘영 씨가. 오휘영 씨가 금방 내게 와서 지금 5분도 못 됐는데 오늘저녁 신성에서 모여 가지고 다 나하고 합의 보고 개헌한 얘기를 했는데 그 무슨 소리요. 아니올시다. 장 부의장실에 다녀온다고 하시면서 빨리 오늘 상정 시키라고 지시하고 나가셨습니다.

- 네.

- 그래 아차 싶더군요. 내 생각에. 아차 싶었단 말이야. 즉시 비서를 불러 가지고 김판석 의원 찾아 오너라.

- 김판석 의원이요?

- 네. 김판석.

- 네. 지금.

- 지금 동양 통신에 있나요?

- 전무로 계시죠. 아마.

- 네. 아마 그렇지요. 그래 김판석 군이 곧 왔어요. 그래 내가 미리 준비했던 곧 이제 신성에서 내가 뛰쳐 나와가지고 집에 와서 미리 이러이러한 일이 앞으로 생기지 않을까 하는 그런 그 뭐랄까 영어로 말하면 프레즌트멘트인데 그런 예감이 있어서 내가 인제 그 말하자면 선선거 후개헌 이런 일이 온다. 이런 의미로써 내가 성명서 하나 지은것이 있단 말이야. 그 놈을 내가 인제 호주머니에서 꺼내 가지고 김판석 의원 보고서 너 이 큰 일 하나 오늘 해야겠다. 아 무슨 일 입니까. 이거 봐라. 이걸 어쩌란 말입니까. 그러고서 내가 그 122명 개헌안에 도장 찍은 사람들 그 이름 적어 놓은걸 김판석 의원에게 보였지요. 이 사람 중에 30명 이상만 그 때가 9시 35분 쯤 됐는데 25분 동안 안에 말이야 10시 전에 10시에 내가 개헌 할텐데 10시 전에 이걸 니가 받아 다오. 그러면 니가 천고불후의 그 공로를 이룰 터이니 김 의원 어떻소? 이러니까 김판석 의원이 한참 이걸 들여다 보더니만 하지요.

- 네.

- 그 그 분이 청년 운동도 하고 해서 퍽 걸걸 합니다.

- 걸걸 하시군요.

- 네. 그걸 가지고 나가요.

- 아니 근데 그 때 저 122명 서명은 그러니까 어디서 입수 하셨습니까.

- 그건 뭐 아실 것 없습니다.

- 아 그리고 그 김판석 위원으로 말하자면 그 후에 신라회에서 인제 이 창랑 선생님 하고 같이 동지로 일을 하셨지만 그 때 까지도 인제 창랑 선생님 말하자면 직계라고 볼 수 있겠죠.

- 아니 그 분이 내가 그 저 이 대한민국 수립전에 그 대한 청년단에 관계한 일이 있거든요. 예? 그래서 그 분이 또 청년운동 하던 분이고 그래서 정부수립 전부터 친한 친구고 또 동행 친구고 그 뭐 지금이나 그 때나 참 뭐 허물 없는 친구지요.

- 네.

- 이제 그 나가는데 김판석 의원이 그걸 가지고 나가긴 나가서는 과연 122명 중에 30명 이상 사람을 그 짧은 25분 이라는 시간에 받아 낼까 말까 인제 여기에 초조 했습니다 내가. 초조했단 말이야. 그래 요전번에도 얘기 했지만 이 나라는 기적이 많은 나라야. 아 5분 전 10시에 김판석 의원이 삭 들어오는데 내 간이 똑 떨어 지는거야. 아이고 저 사람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나 했더니 됐습니다. 척 내 놓는데 36명 쭉 도장을 전부 다 받았단 말이야. 내 그 성명서 끄트머리에다가 말이야. 됐다. 고맙소. 하구선 악수를 하고 그대로 내 국회를 뛰어 내려 갔단 말이야. 가니까 오휘영 의원이 바로 들어가는 그 국회의 임시 의사당이라는게 그 때 무득전이라고 저 그...

- 도청 옆에.

- 예. 도청 옆에 유도 가르치고 뭐 하는.

- 경찰들 그...

- 네. 그렇지요. 바로 그 들어가는 문 옆에 이렇게 막 나와요. 여보오 오 위원 이라네. 예. 여보시오. 적빛 입니다. 척 보더니 얼굴빛이 금방 흑빛이 되더군요. 그 분도 아마 아차 했을 겁니다. 그렇게 이걸 미리 받아 놨던건가. 자기가 내 방에 다녀서 온 뒤에 이걸 받은 것인가 아마 거기에 대해서 그 자기가 의아심이 굉장했을 겁니다. 좌우간 그 분의 얼굴 빛이 흑빛이에요. 그리고 난 뭐 가타부타 그 분 한테 더 말 들을 여지도 없이 삭 들어가서 국회를 열었다 이 말이야. 언제 어떻게 됐는지 개헌안은 안 올라와요. 그 날 올라오게 됐다는 그 스케쥴이 그렇게 짜 있었다는 그 의사 과장이 분명히 내게다 시사를 했는데 그 내가 개헌 하니까 그걸 내가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그 참 저 이 보고 받고선 의사 일정 개헌안이 올라오게 되면 그것부터 먼저 내 놔야 하는데 안 온단 말이야. 음. 그렇구나. 그래 인제 국회 끝난 뒤에 의사 과장을 불러서 어떻게 됐냐고 하니까 오휘영 씨가 철회 했습니다.

- 네.

- 그러면 개헌안 내놨던거 철회해 갔다 이 말이야.

- 네.

- 인제 그 그 뒤의 이야기가 인제 그 참 기구 하고도 이로다 말할 수 없는 우리나라 아마 유사 이상의 처음 겪은 파란 곡절이 뭐 이루다 말할 수 없이 그 모두 발생하지 않았어요? 그것이 원인이 돼가지고 발취 개헌안도 들어와 가지고 딱벌떼니 백골단이니 뭐 나오고 하는 그런...

- 그 얘기는 이제 차차 나올 거구요. 그 3차 개헌안이 그 후에 4월 17일 인가 제출이 됐습니다만 그러니까 그 전에 일단 그와 같은 경로를 겪어서 좌절이 됐던것은 사실 이군요.

- 그렇지요.

- 그 오휘영 씨가 그 때 그 122명 서명을 받았다가 일단 그 창랑 선생님의 동조만 얻게 되면 상당한 수여를 더 얻어 가지고 그래가지고 그 때 만약 개헌안이 제출이 됐던들 우리나라 역사 또 상당히 달라졌을 텐데요.

- 달라지고... 그렇지요. 달라지죠. 그런데 인제 내가 앞으로 얘기를 계속 해서 하게끔 된다면 그 장면 씨가 역시 그 참 부산 소위 정치파동 여기에 대한 그 자기의 책임이 역시 있다고 보고.

- 네.

- 만일 그것이 다 순조롭게 되고 또 장면 씨가 그 앞으로 하던 그 참 처사가 좀 더 현명하게 했다면 우리나라 역사가 바뀌어 지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 네. 그 저 정치파동에 대한 그 참 두고두고 사적인 평가라 그럴까요? 이건 하나의 숙제가 돼있다시피 돼있는데요.

- 그렇지요.

- 지금 창랑 선생님 그 말씀을 들으면 인제 정치파동에 있어서의 그 장면 박사의 그 여러가지 처신이라 그럴까요? 이것이 중요한 요소가 돼있다 이런 말씀 이신데 그 점에 대해선 내일 밤 좀 자세히 말씀을 들어보기로 할까요?

- 그러시죠.

- 네.

(입력일 : 2007.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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