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46번째 시간으로 춘향이 수와 국제적십자회비에 대한 얘기를 전 국무총리 였던 장택상 씨와 동아일보 정치부장 신동준 씨와의 대담으로 들으시겠습니다.
- 어젯밤엔 1959년 3월 제일교포 북성반대를 위해서 우리가 그 제네바에 창랑 선생님을 비롯해서 최규남 박사, 유진호 선생 이렇게 여러분들이 가셔서 그 국제무대에서 여러가지 고충을 느끼시면서 외교 활동을 벌이시던 얘기를 들었습니다. 근데 그 때만 하더라도 일본측에서도 대표단이 갔었구요 북쪽 이북쪽에서도 또 대표단이 같이 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 삼각외교 비슷한 외교전이 벌어지고 있었는데요. 어땠어요? 일본 얘기는 어저께 그 사진을 가지고 가셔서 그 3·1 운동 때 사진이라던가 이런걸 가지고 가서 그 일본측의 그 맹랑한 시장을 코를 꺾으신 얘길 들었는데 북쪽 이북쪽에서는 어떻댔습니까.
- 그 자들이 그 외교 활동을 하는걸 볼 때는 전혀 우리와 수법도 다르고 또 동시에 그 자들이 그 활동하는 그 방식이 전혀 다릅니다.
- 네.
- 예를들어 말한다면 우린 그 각 신문사 잡지사 이런 그 언론계를 주로 참 목표를 삼고 활약을 하잖아요?
- 네.
- 어딜 가든지. 이 자들은 오기만 오면 호텔방에서 문 딱 걸어 잠그고 외교와는 전혀 접촉을 안하는 것이 그 자들은 그 상습적이야.
- 네.
- 뭐 신문사 기자회견 같은건 전혀 안하는 것이 그 원칙으로 정해가지고. 그러나 실제로 볼 땐 우리보다 나은 면이 많은 것을 내가 느낀것은 첫째 그 하루는 그 적십자 본부를 갔어요.
- 네.
- 갔는데 마침 그 현관에서 총재 또 그 부총재니 한 수 삼명의 간부들을 만나서 같이 회의실로 올라가는 길인데 이렇게 그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데 바로 계단 그 오른편에 벽화가 하나 붙었는데 고가 약 3미터나 되고 폭이 한 2미터 남짓하게 되는데.
- 상당히 큰 거로군요.
- 상당히 커요. 수로 놨어요.
- 네. 수를 놨다면 그 동양건가요?
- 아니지. 그건 동양식으로 놓은 수 지요.
- 네.
- 근데 그 광한루 앞에 인제 버드낭퀴 이렇게 입고 그 춘향이가 그 저 오월단오에 그네 타는 그게 있어요.
- 아, 그러면 바로 춘향수로군요.
- 그렇지요. 네. 그렇지요. 나는 물론이고 우리 정부에서 또 혹은 우리 적십자 본부에서 기증 한걸로 이렇게 짐작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런게 와 있으니까 대단히 마음이 기쁘다고 인제 이렇게 총재하고 내가 그랬지요. 미슈겔런 이라고 그 제네바 대학 총장도 지내고 또 거기 간부회에. 그러니까 이 분이 날 보더니 싱글싱글 웃더니 내 어깨를 툭 치더니 손가락으로 가지고 이렇게 가르킨데를 그 손가락 가는 곳을 내가 척 보니까 아 영어로 썼는데요.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정부 기증이라 이래요. 하하하. 어이가 없어서 무안했죠.
- 아주 아주...
- 그래서 그 새 아무말도 안한단 말이야. 말하자면 한국 정부나 또는 한국 적십자에서 온 거 아니다 이거지.
- 그거 아주 민망해 하셨겠는데요?
- 아이 뭐 그런 일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 그 때만 하더라도 그 우리 정부가 여러가지로 궁색했을 때고, 지난번에도 얘기가 나왔습니다만 그 해외에 그 외교활동 하는데 달러가 상당히 부족했고 그런데 그런 수 같은 뭐 우리나라 미술품 같은건 사실 마음만 들면 할수는 있었던건데 우리가 역시 그 그만큼 정신이 못 갔던 거겠지요?
- 글쎄 그것 뿐 아니라 여러가지 창피한 일이 있습니다. 그 저 우리가 일당 8불을 탑니다.
- 아 그 때 가셨을때?
- 그 때 뿐이 아니라 유엔에 갈때도 8불 이에요. 그래서 그 언젠가 한번 유엔에 갈 땐 그 이 대통령과 ...해서 그 13불을 탔지.
- 네. 요즘...
- 파리에 갈 때.
- 네.
- 그렇지만 그 저 이 뭡니까. 제네바 갈때도 우리가 그때 그 8불 밖에 못 탔으니까. 그 뭐 여관비...
- 말도 안되지요 그건.
- 얘기가 안되지요.
- 저희 신문 기자가 해외에 나가면 일당 15불을 받는데요.
- 그래 이런 창피를 당한 일이 있어요. 인제 우리가 일을 다 마치고서 좌우간 저 사람들 대접도 훌륭한 대접을 받았으니까 또 이어서 얘기가 나올 것 같습니다만.
- 네.
- 우리가 역시 또 그 사람들 대접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 네.
- 그때 그 주불공사 김용식 군이 그 와있었고 또 일본 우리 대표부에 그 참사관을 둔 최규하고 나중에 그 외무차관까지 했지요? 지금은 대사로 있다던가요? 인제 그 사람도 있고 인제 우리가 한 6,7명 되지 않았어요? 그 적십자 그 이범석 군이 그 청년 그 사람들과 해가지고. 그랬더니 이걸 어느 호텔에다 초대를 할라고 예산을 세어 보니까 엄청나서 뭐 얘기도 안돼요. 아 그 참 그야말로 딜레마에 빠졌지요. 그대로 있을 수는 없으니까.
- 그렇죠.
- 먹은건 갚아야 하니까.
- 네.
- 그래 이리 대단하고 그 저 런던에 유명한 선데이타임스라고 있잖아요.
- 네.
- 그 선데이타임스 특파원이 누군고 하니 서서 부인인데 미세스 릭시라고 영국 남자하고 결혼했는데 그 분이 나하고 사이가 대단히 가까웠어요. 그 적십자 내부의 얘기라든지 뭐 이런거 연락도 해주고 그 상당히 우리한테 그 동정을 하고 내가 또 그 분에게 참 퍽 좀 가까이 했지요.
- 서비스를 하셨군요.
- 네. 해야 무자원 협력을 받으니까. 이 분의 그 말하면 남편의 동생 시동생이지.
- 네.
- 그 서서 사람인 까닭에 이제 그 영국 남자지만은 그 서서 입적 아니에요?
- 네. 귀화 했군요.
- 예. 미스터 릭스라는 사람이. 그 사람 동생이 그니까 부인 미세스 릭시의 시동생이 그 요리 학원을 한단 말이야.
- 네. 제네바에서?
- 네. 그래 그 부인에게 하루 우리가 ..을 했지요. 야 이거 대접을 해야 하는데 도저히 우리 힘 가지고는 안되니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조금만 기다리라고 한·일 하루만 더 기다리라고.
- 네.
- 그래 그 분이 그 이튿날 사흘날 아침에 오더니 어떻게 해야 되겠소. 장소는 그 요리 학원 강의실 교실로 하고 그 요리 학원 그 경영주가 전부 실비로 하겠단다 하니 술하고 또 재료만 너가 좀 대라 그 재료라는건 뭐 얼마 안든다 하니까 그렇게 하면 내가 이걸 치뤄 주고마. 그래서 인제 우리가 참 고맙다 그러고 받아들여서 인제
- 아 실지로 하셨어요?
- 그렇지요. 그래서 인제 우리 대표 셋 최규남 박사, 유진호 씨, 나 인제 그 최규하 참사관 김영식 군사 셋이 출몰을 해서 그 날 저녁은 잘 치뤘지. 서서 명사들은 다 왔고 또 외국 대공사 근데 그 런던 타임즈 특파원이 왔어요.
- 네.
- 미스터 존스라고 이 분을 내가 그 저 이 거시기 뭡니까 그 적십자 총재인 미슈겔런을 모르더군요. 그 런던 타임즈 특파워원이.
- 네.
- 그래 내가 인제 소개를 하면서 아 이분이 미스터 존스 라는데 런던 타임즈 특파원이라고 이러니까 미스터 존스가 척 내 말을 받더니만 그 미스터 장 천만에 말씀 하지 마시오. 아 왜그러우. 아 더 타임스지 런던 타임스 라는게 뭐요. 타임스가 세계에 둘 있소? 더 타임스지.
- 그 사람들 그 자존심...
- 여실히 영국 사람은 그 참 자존심이라는건 그런데도 그 여실히 나타난다는걸 내가 그 참 심각하게 느꼈습니다. 아 뉴욕 타임스도 있잖아요?
- 네. 그럼요.
- 타임스가 둘 일리가 있나. 더 타임스지. 런던 타임스라는 말이 안된 말이야. 이러고 ...
- 자기네들이 원조라 이거지요.
- 그렇지.
- 그 집 같은건 괜찮았습니까? 그 파티에 뭐 격이 떨어지거나 그러지는 않았구요?
- 아니에요. 그 요리 학원이라는데가 그 제네바에서 가장 그 참 서서라는 그 호텔업으로 참 버텨가는 나라 아니에요? 근데 그 요리 학원에서 전부 그 졸업한 사람들이 각 그 참 요장이라든지 또는 그 호텔로 전부 전출한 까닭에 훌륭한 집이에요.
- 네.
- 네. 뭐 그날 아주 남 못지않게 아주 치뤘습니다.
- 우리 대표단이 그 초대 받았던건 주로 어디 입니까.
- 그 총재가 우릴 우리가 떠날 무렵 그 한 2,3일 전에 그 몽츄라라는데가 그 왜 여기 저 우리나라에서도 사진 찍어가면 서서 그 호숫가에 외딴집 하나 이렇게 서서 인제 ...라고 그 바이런이 그 유명한 그 시 지은 집안 이에요 그.
- 네. 네.
- 인제 그 바로 거기에다가 인제 그 산상인데 서서에서 제일가는 호텔 입니다. 그리 우릴 초대를 했어요. 총재가. 쭉 초대를 해서 그 때 인제 우리나라 특파원으로 간 분이 지금 동아일보 논술위원으로 있는 박권상 군, 또 이 한국일보에 있는 김종환 인가? 그 친구 내가 이름을 자세히 기억 안나는데 그 친구도 그 때 같이 참석을 했어요.
- 네.
- 그래서 인제 그 참 훌륭한 대접을 받고 인제 이 사람들이 기분이 좋으니까 인제 그 미슈 미까르 내외가 그 평양을 거쳐서 서울 왔다가 이 박사 한테 그 거절 당하고.
- 어저께 밤 얘기요.
- 그렇지요. 그 얘기도 인제 나오고. 인제 기분이 좋으니까.
- 본인의 입에서 나왔나요?
- 그렇지요.
- 네.
- 나오고. 그 총재가 날 보더니 그래요. 미스터 장 본국 돌아가면 할 일 하나 있소. 이래요.
- 네.
- 아 뭐 당신네들이 우리한테 해 준 일이야 참 산해 같은데 뭐 한 두가지 겠습니까. 많이 협력 하겠습니다. 저희 힘 다 할 때까지. 아니 그것 보다도 회비 좀 내라고 당신들 대통령 보고 말씀해 주시오. 아니 회비 라니요. 아니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한 푼을 회비를 안내 그 회비 지금 체납된 것이 3만불이오.
- 아이고.
- 네. 이거 한 푼 안냈소 말이야. 당신네들이 제일 미워하는 사람들 이북 공산당 사람들은 달달이 내오 말이야. 뭐 일본 적십자는 더구나 말도 할거 없고 당신네들 적십자에선 한푼이 안 와.
- 예.
- 아 이거 얼마나 무안 했겠습니까. 본국 와서 경무대 가서 귀환 보고 할 때 대통령께 그 말씀 하지 않았어요? 선생님 그 회비는 보내줘야... 회비라니 무슨 회비. 아 체납된 회비가 3만불 이라는데 한 푼도 안보냈다고 그럽니다. 이 양반이 한참 생각 하더니. 그렇지. 국제 적십자 보단 미국돈 3만불이 낫잖아? 이렇게 하고 치워 버려요.
- 그것도 이 박사의 그
- 고집 이지요.
- 네.
- 형편없는 고집이지.
- 그 여러가지로 좋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저 외교에 관한 얘기가 또 무궁무진 하리라고 생각 됩니다만은 우선 저 창랑 선생님 그 국제 무대에서 얘기는 이만 하구요 내일 밤에서 부터는 국내 정계 얘기 그걸 좀 계속해서 들려 주십시오.
- 그래 할 만큼 했는데 뭐 이만 하고 마는게 좋잖아요?
- 하하하. 다음날서 부터 또 듣죠.
(입력일 : 2007.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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