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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정계야화
창랑 장택상 편 - 제23회 재일교포 북송반대 실패
창랑 장택상 편
제23회 재일교포 북송반대 실패
1965.03.08 방송
‘정계야화’는 65년 1월 4일부터 방송한 15분짜리 대담프로그램으로 70년 10월 5일부터 나간 다큐멘터리 드라마 ‘정계야화’의 원조격이다. 이 프로그램은 광복 20년과 6·25전쟁 15년을 맞아 기획한 것으로, 정계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자서전적인 회고담과 함께 정계의 뒷얘기를 들려줘 청취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 오늘은 그 45번째 이 대통령 면회를 거절당한 국제적십자 부의사 때문에 제일교포 북송반대 교섭에 큰 지장을 받았던 얘기를 역시 전 국무총리였던 장택상 씨와 동아일보 정치부장 신동준 씨 와의 대담으로 들으시겠습니다.

- 네. 창랑 선생님 모시고 여러가지 말씀을 듣는 가운데 외교 얘기가 나와서 상당히 재밌는 숨은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만 뭐 국내 정치 얘기도 앞으로 많이 또 좋은 얘기가 있을 겁니다만은 기왕 외교 교선 때 얘기가 나온 김에 뭐 또 재밌는 얘기를 더 들려 주시고 넘어 가시기 바랍니다.

- 우리 그 뭡니까 그 제일교포 북송반대 위원회가 그 1950년

- 59년 이지요.

- 59년 이요? 59년 2월경에 그게 결정이 됐습니다.

- 아 그 때 2월에 제일교포 북송반대 전국위원회 라는게 결성 됐지요.

- 그랬지요. 그 때 유석이 위원장이고.

- 네.

- 그래서 서울 운동장에서 국민대회가 열렸고.

- 그게 아마 3월일 겁니다.

- 네. 3월 입니다. 3월 중순경인가 그랬어요. 그래서 인제 거기서 대표를 국제 적십자에 보내서

- 제네바.

- 예. 항의 하기로.

- 예.

- 그 때 그 대표로 나 하고 최규남 박사 하고 유진호 고려대학총장 그 두분 나까지 합해서 셋이지요.

- 네.

- 그래서 제네바를 가기로 됐습니다. 근데 그 제네바에 간 목적은 두 가지가 있었어요. 북한에 있는 지역 공산당들이 뭐라고 하는고 하니 일본에 있는 교포중에 이북에 가고싶어 하는 사람은 국제 적십자 깃발 밑에 또한 또 국제 적십자 선박으로 수송을 했다고 이것이 인제 그 자들이 주장하는 것이고 우리는 안 될 말이다. 절대 일본 정부에서 일본 안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 사람은 대한민국 정부의 동의 없이는 도저히 국위로 수송 할 수 없다.

- 그렇지요.

- 더구나 또 국제 적십자 깃발 밑에서 이걸 수송 한다는건 이건 언어도단이다. 이 두가지를 우리가 그 투쟁 목표로 삼고 제네바를 갔지요.

- 그니까 이맘 때로군요.

- 이맘 때 입니다.

- 네.

- 갈 때에 내가 일제 36년 동안 특히 그 3·1 운동을 전후 해서 일병들이 그 합병 직전에 말하자면 그 의병들 토벌 할 때 입니다. 인제 저들이 저들이. 그 때 인제 거기 지방 양민들을 의병이라고 이 자들이 잡아서 그 땐 그 삭발한 사람이 적고 그 유발자가 많지 않았어요? 이 상투를 풀어서 나뭇가지에다 산기슭 나뭇가지에다 모두 잡아 매고 노끈으로 가지고 목을 잘라 죽이던 그 사진 또 3·1 운동 때에 그 여학생들을 그 웃통을 벗겨서 포박해가지고 그 고문하던 그 사진 말하자면 36년 동안에 일인들이 그 잔인 무도한 참 행위하던 그 사진을 색출해 냈어요.

- 어디서요?

- 민간에 있는거 공보부에 있는거 그 때 그 공보부 처장이 전성천 박사라고 자유당 시대 때 그 그분의 협력도 없고 또 내 개인으로 사람을 모두 각 지방으로 도시로 모두 파견을 해가지고 그 사진을 전부 구했는데 주로 스코필드 박사 사진이 박힌 사진이 많아요. 특히 그 수원 교회에 그 수 백명을 집어넣고 그 일본 헌병 놈들이 그 교회에 불살라서 모두 타 죽은 사진을 스코필드 박사가 그 보관해 가지고 있던게 있었습니다.

- 네.

- 그 분이 가졌던거.

- 일전에 그 저 3·1절 날 동아일보에도 두 장인가 그게 났었습니다.

- 네. 네. 그래서 인제 사진을 수 백장 모아가지고 이걸 복사를 했지요.

- 네.

- 해가지고 이걸 가방에다 모아가지고 갔단 말이야. 가서 그 북쪽 사람들을 대하니까 그 우리들에게 하는 그 대하는 태도가 그렇게 탐탁질 않아요.

- 어.

- 어쩜 그 차디 찬 아주 그 공기라고 말이야. 인사 하는 것도 그 정중한 공식 인사지 그 뭐 참 미소를 띄고 반가워 하는 그런 기색이라곤 도무지 보여지질 않는단 말이에요.

- 어째 그럴까요?

- 글쎄 이거 어떻게 된 일인가. 그 때 인제 그 김용식 군이 주불공사를 했었는데 그 분도 이제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가지고

- 합류 했겠군요.

- 예. 이 대표단을 협조해라 해서 그 분도 거기 와 있고 또 그 이범석 이라고 철이 아닙니다. 지금 외무부에 뭐 봉직하고 있다더군요. 그 사람이 영어도 잘 하고 똑똑한 사람이에요. 그때 그 한국 적십자

- 청년부장인가 그랬어요.

- 청년부. 예. 젊은 친구예요. 그 사람도 와 있고 한데. 이범석 군을 불러서 좌우간 이거 무슨 까닭인지 공기를 케내라. 어찌하여 이 사람들이 우리한테 이렇게 쌀쌀한지 이것부터 말해야 우리가 뭐 접촉을 해보지 뭐 이런 차디 찬 공기 가지고는 우리가 도저히 저 사람들하고 접근할 도리가 없지 않냐.

- 그러니까 이범석 군이 그래요. 그 뭐 더 알 까닭도 없습니다. 난 다 알고 있습니다. 이래요. 그 사람이 먼저 와 있더군요 우리보다.

- 네.

- 그 뭐냐 물으니까 중요한 간부회 그 부의사 격으로 있는 사람이 미카엘 이라는 사람이 이런 차디 찬 공기를 빚어냈소. 그 무슨 까닭이냐. 아 이 사람이 6·25 때 소련을 기용 해가지고 평양을 들러서 한국을 왔습니다.

- 네.

- 와서 이제 경무대 가서 이 대통령을 예방 했더니 대뜸 이 대통령이 김일성이 만나고 온 사람 나하고 악수 할 필요 없지 않냐. 너 같은 사람 나 만나기 싫다 해서 아주 뭐 그 자리에서

- 면박을 줬나요?

- 아 면박을 줬데요. 나도 인제 그 사람 한테 자세한 얘기를 들었죠. 그래서 그 사람 뭐 그 자리에서 퇴짜를 맞아서 이 사람이 무색하니까 그대로 나와서 그 뒤로부터 대한민국 일이라면 사사건건이 이 사람이 방해를 하고

- 아하!

-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뭐 이 사람을 안 끼고는 뭐 도저히 일을 해 낼 도리가 없어서 그래서 그 날 저녁부터 시작해서 이 사람을 찾기로 시작 했지요.

- 무마 공장을 갔었군요.

- 그렇지요. 근데 그건 내 세우긴 이범석 군을 ... 이범석 군 벌써 우리보다 먼저 와 있어서 그 사람하고 접촉이 많이 됐는데. 참 뭐 그 상세한 얘긴 다 하기 어렵습니다. 뭐 별별 공작을 다 했어요. 그 사람의 부인한테 가서 선물도 바치고 별별 참 일화가 많지요.

- 네.

- 근데 말판에 이 사람이 돌아 섰습니다. 우리측으로.

- 아 좀 누그러 졌어요?

- 누그러 졌어요. 그래서 인제 이 사람이 그 겔핀이라고 그 부총재 격으로 있고 행정이사로 있는 사람이 ... 행정이사예요 우리나라 말로 번역 하자면. 이 사람을 접근을 시켜 주더군요. 그 미카엘이. 그래서 인제 그 사람하고 인제 사적으로 친분을 맺었지요.

- 네.

- 헌데 일본 측에서는 그 이노우에 남작이라고 남작이에요. 귀족 이더군요.

- 네. 그 쪽에서도 그 교섭단이 왔었습니다.

- 아 와야지요. 와 있어요. 그렇지 않게 이북서도 대표가 여덟인가 그 단장격으로 있는 자가 이 뭣이라던가 내 그 이름은 잊어버렸습니다만 거기 다 내려와 앉아서 뒤에서 다 모두 조종을 하고.

- 삼각외교전이 벌어졌지요.

- 그렇지요. 일본 사람하고 이제 그 이북 그 공산당 대표들 하고 서로 자주 접촉을 해서 서로 숨을려고. 우린 외톨이 밤 같이 떨어졌으니 단독 행동을 하고 있었지요.

- 네.

- 그래 인제 하루는 우릴 정식으로 초대를 하더군요.

- 네.

- 그 문제에 대해서 토의하기 위해서.

- 네.

- 가니깐 쭉 그 대표들이 국제 적십자 회의실에 모두 늘어 앉았는데 우리 셋이 들어 갔지요. 유진호 씨, 최규남 박사, 나 그 자릴 잡고 앉으니까 그래도 내가 명색이 수석 이니까 날 잠고 얘길 합니다. 적십자 총재가. 이제 우리들에게 그 사람들의 질문이 그거야. 너가 한국 사람을 일본에다가 60만 내지 70만을 두고서 해방 이후에 한국 정부로서 그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한 것이 없지 않냐. 교육 방면이라든지 뭐 구제 방면이라든지 하나도 한 건도 없다는 것을 일본 대표들이 주장하고 있다.

- 네.

- 지금 와가지고 너희가 한국 시민이라고 해가지고 북송한 것이 뭐 가타부타 할 그런 그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거는 이거는 상식 밖에 아니냐. 이것이 우리한테 내거는 그 사람들의 주장 입니다.

- 일본측의 그 상당한 공작이 들어갔군요. 그 동안에.

- 여간 뭐 여간 아니에요. 그래 내가 우리 정부에서 해방 이후에 제일 교포에 대한 그 구제사업이라든가 교육사업이 없다고 하는 것은 이건 빨간 거짓말이다. 일본 정부에서 매년 아주 그 참 정식으로 한국 교포에 대한 그 문제를 가지고 우리 정부와 이간질 시키기 위해서 그 자들이 돈도 이만저만 쓰지 않았다. 한국 정부에서 이 자들을 그 제일교포들을 교육방면이라든지 사회 사업에 대해서 시설을 갖춰 주려고 하면 사사건건이 이 사람들이 반대해서 우리가 할 도리가 없었단 말이야. 그건 일본 사람이 그건 빨간 거짓말이야 하고 이제 그 적십자 총재의 말이 제일교포를 한국 정부에서 돌아보지 않았다는거 하고 또 일본 사람이 36년 동안에 한국와서 그 교육 사업 이라든지 도로 라든지 모든 그 방면에 있어서 그 참 회정을 베풀어서 한국 사람이 잘 살고 있었다는 것 이걸 또 내세우길래 내가 그랬지요. 일본 사람이 한국에 와서 사업을 많이 했다. 한데 가장 눈에 띄는 사업은 이거요.

- 네.

- 그 내 보따리를 끌러서 그 사진을 한 장씩 쭉 그 회원들에거 돌렸지요. 한 장씩 쭉 돌렸단 말이야.

- 네.

- 하! 이 자들이 보니깐 해괴망측한 사진 이거든.

- 네.

- 그래 총재가 일어나더니만 오늘 회의는 끝났소 이래요. 인제 그 때 부터 우리측으로 유리하게 일이 전개되기 시작했습니다.

- 네. 알겠습니다. 그 저 교포 북송반대 때 외교 교섭 문제를 내일 한 번 더 들려 주십시오.

- 네. 뭐 남은 얘기는 또 내일로 하기로.

(입력일 : 2007.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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