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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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정계야화
창랑 장택상 편 - 제16회 ‘트르만’과 백악관의 워싱턴 초상화 이야기
창랑 장택상 편
제16회 ‘트르만’과 백악관의 워싱턴 초상화 이야기
1965.02.27 방송
‘정계야화’는 65년 1월 4일부터 방송한 15분짜리 대담프로그램으로 70년 10월 5일부터 나간 다큐멘터리 드라마 ‘정계야화’의 원조격이다. 이 프로그램은 광복 20년과 6·25전쟁 15년을 맞아 기획한 것으로, 정계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자서전적인 회고담과 함께 정계의 뒷얘기를 들려줘 청취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 오늘은 그 서른 여덟번째로 트루맨 대통령과 미국 백악관의 조지 워싱턴 초상화 얘기를 역시 전 국무총리였던 장택상 씨와 신동준 동아일보 정치부장의 이 얘기 저얘기로 들어 보겠습니다.

- 오늘은 어제에 이어서 미국에 계셨을 때 뭐 또 재밌는 얘기를 좀 들려 주십시오.

- 그렇지요. 그 역시 그 유엔 관계 얘긴데요.

- 네.

- 우리가 그 10월 인제 그 10월달에 그게 아마 15일경 쯤 될겁니다.

- 아 1950년 이구요.

- 그렇죠. 1950년 6·25 동난 당시지요.

- 네.

- 그래서 그 14일날 밤인가요? 우리 대표단이 유숙하던 호텔이 그 코모도 호텔이라고 큰 호텔인데 거기에 인제 나가 유숙해 있고, 임병직 외무부 장관이 있었고

- 네.

- 장면 주미 대사관 워싱턴서 유엔 관계로 뉴욕에 오면 인제 그 또 유숙하고 있는데 그 장면 씨가 밤 거기 10월 14일 밤 그 9신가 그 나보다 한 층인가 두 층 꼭대기에 있었어요 그 호텔. 저도 그 잠옷을 입고 쫓아 내려가서 지금 워싱턴서 전화가 왔는데 그 대통령 비서관이 내일 아침 11시 그러니까 15일날 그 이튿날 10월 15일날 아침 11시에 대통령을 면회 하겠다고 하니 장 부의장 오늘밤 잘 떠나야겠소 이래요.

- 아 트루만 대통령 쪽에서 자청 해서요?

- 네. 자청 해서요. 그러니까 이제 임병직 군하고 나하고 인제 장면 대사하고 인제 그날 밤에 떠나기로 됐지요. 10시 반인가 기차가 그 있더군요. 4시간 걸려요. 뉴욕서 워싱턴이.

- 네.

- 밤 차를 타고 워싱턴 가서 내려서 그 이튿날 11시에 인제 백악관을 들어 갔지요. 시간을 맞춰서.

- 10월 15일이면 유명한 그 트루만 대통령하고 맥가더 원스가 회담한 때 아닙니까.

- 네. 그 날 2시에 떠나기로 스케줄이 짜 있더군요. 근데 우린 오전 11시에 들어오너라 이래요. 근데 이제 들어갔더니 임병직 군 이나 뭐 장면 대사는 다 복장이 구비 돼갔는데 나는 여기서 뭐 피난민의 한 사람으로 간 사람이니가 뭐 의복이 남루하고 괴상 하지요. 거기다 또 인제 구두가 황색 노란 브라운 슈즈란 말이에요. 노란 구두를 신으니까 비서관이 이렇게 나를 훑어 보더니

- 구두를 쳐다봐요?

- 내려다 봐요. 보더니 이거 좀 곤란 합니다. 이래요.

- 역시 그 대통령 면접 이니까요.

- 그 못 하는 법이거든요.

- 네.

- 그래 내 그랬다 나 그런 체면 내가 알만한 사람이오. 허나 내가 ... 피우지요. 피난민이요 이 말이야. 이래서 내가 불구 염치하고 이걸 신고 들어왔는데 난 대통령 몇 년 사퇴 하겠소 이래요. 아 그건 안 됩니다. 뭐 안될거 뭐 있소. 내가 자진해서 사퇴 하는데. 임병직 외무부 장관이 우리 대표단 수색이요 또 장면 주미 대사관 한테도 좋지 않소. 이러니까 안돼요 당신이 과거 미군정 때 수도청장으로 됐고 미국에 참 공로가 있다고 이 대통령이 대단히 반가워 할텐데 특히 당신이 지명 했는데. 그 때 국회의원 한 분이 갔는데요. 그 분을 우리가 추천 했습니다. 이 분을 빠뜨리고 갈 수 면회 할 수 없다 이러니까 보통 국회의원은 안된답니다.

- 네.

- 나는 그 때 부의장이기 때문에 된다고 이래요. 그래서 그 분은 못 갔지요. 그게 바로 김동성 씨 입니다.

- 네.

- 그 분 한텐 퍽 미안했지 뭐. 저 쪽에서 못 오게 하니 뭐 도리가 있나요? 그래 난 자진해서 사퇴 하겠다 이러니까 안된다 그래요. 그래서 들어 갔지요.

- 네.

- 임병직 군, 나, 장면 주미대사 들어갈 때 인제 그 비서관이 우리에게 주의를 줘요. 파이브 미닛. 5분 이상은 더 못 합니다. 아 그거야 뭐 우리가 절에 온 색신데 하라는데로 하지 우리가 뭐 더 있고 말고 없소. 하자는데로 하겠소. 하고 이제 들어갔단 말이야. 그날 오후 2시에 위크 아일랜드를 트루만 대통령이 떠나는 그런 스케줄이 짜 있었어요.

- 아마 그 맥아더 장군하고 회담 하니까 위크도에서 회담 하니까 그 전에 아마 사전 지식을 얻기 위해서 아마 만나는 모양 이었죠?

- 그거는 잘 모르겠습니다. 좌우간 우리 대표가 그 때 인제 곧 환국하게 돼있으니까 아마 우리하고 또 그런 특수 전쟁 관계도 있고 하니까 우리 대표단을 임견 하는것이 또 아마 자기의 의도가 아니었던가. 좌우간 불러서 들어 갔습니다. 우리 자체가 간 건 아니고. 그래 턱 들어가니까 그 대통령 앉은 방이 적어요 비교적.

- 네.

- 근데 그 바로 그 대통령 앉은 그 정면 벽에 초상화가 하나 붙었더군요.

- 네. 무슨 초상화.

- 조지 워싱턴 초대 미국 초대 대통령.

- 네. 네.

- 워싱턴 초상화가 붙었는데 길이가 그 벽 길이하고 똑같더군요.

- 아 그러면 굉장히 큰 거 로군요.

- 아 여간 큰 거 아니죠.

- 네. 원색으로 인제...

- 네. 원색으로. 그 조지 워싱턴 생존시에 아마 그리던 거였는데 그 대통령 정면에 있어요 벽에. 한 벽을 다 차지하고 있어요.

- 네.

- 그래 내가 인제 처음 인사를 하고 나서는 미스타 프레즈덴트 이랬단 말이야. 저기 붙은 사진이 초대... 미국 대통령인데 물론 미국에서는 참 저 양반을 건국 참 영웅이요 미국 국민이 부모같이들 생각하고 있는데 우리 한국은 사정이 좀 다릅니다 내가 이랬단 말이야.

- 네.

- 뭐냐 그래요. 대뜸 뭐냐 그래요.

- 네.

- 우리 한국서는 트루만 대통령을 미국서 조지 워싱턴 숭배 하듯이 그렇게 지금 숭배하고 있는 형편이요 이랬다구. 아 그거 무슨 소리냐고 어째 그러냐고.

- 네.

- 아 생각해 보시오. 당신네들은 워싱턴 때문에 이런 위대한 나라를 취해왔고 우리는 간신히 지금 참 동방의 한 적은 공화국으로 생긴지 불과 한 달이 되락마락 해서 말이야 갖은 고충을 다 겪고 또 몇 달이 못 지나서 이런 동난이 일어났는데 당신이 우릴 돕지 않았다면 우린 다 부산 바닥에 생선 양선 되고 말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서 한국을 대표해서 유엔에도 오고 또 미국 대통령도 만나게 되니 이게 다 당신의 은공 아니요 말이야. 그래서 우리 국민학교 학생들 어린애들 남녀간에 말이야 어른 애들까지 트루만 대통령이라면 미국서 조지 워싱턴 대통령을 숭배 하듯이 꼭 그렇게 숭배하고 있습니다. 이래요. 허허. 그 양반이 그만 두 손을 비벼요 이렇게. 그러더니 그거 무슨 소리냐고.

- 굉장히 좋아 했겠지요.

- 아이 들어 보세요. 두 손을 비비면서 하는 말이 사람은 관 속에 들어간지 50년이 돼야만 비로소 그 사람의 가치가 논의되는 것이지 50년 전에는 그 참 정체가 밝혀지지 않는데 내가 지금 한국서 그런 참 숭배의 대상이 된다는건 그건 참 난 뜻밖의 일 이라고.

- 아주 겸양지덕을 말하면서...

- 네. 이러면서 그것 보세요. 사람이라는건 추워줘서 싫다는 사람 없는걸 내 그 때 발견 했어요. 에치슨 국무부 장관이 슥 들어 오는데 척 보더니만 난 지금 곧 떠나니까 이 한국 대표들 얘기 잘 듣고 우리가 극력 한국을 도와요. 만일 한국의 군대가 부족 하다면 우리가 또 더 지원해.

- 네.

- 그러니까 에치슨이 웃으면서 "예스. 예스." 이렇게 대답할 뿐이지요. 아주 좋아요. 그래서 그 벌써 이제 10분이 넘었지요. 5분 잡지요. 비서관 한테 5분 밖에는 더 있지 마라. 그래 우리가 일어나서 내가 먼저 일어 나섰지요. 그러니까 장면 대사도 일어나니까 아 트루만 대통령. 왜그러냐고 그래요. 아 여기 올 때 본래 5분 주의를 받고 왔습니다. 천만에 말이라고. 내가 2시에 비행기로 떠나는데 지금 11시 반도 채 못 됐는데 말이야. 아 그래 앉았지요. 그래 인제 한국 사정을 물으십디다. 그래 내가 그랬지요. 우리 한국서 지금 다른건 다 그만두고 국민학교 어린애들이 말이야 학교 교사를 참 가지지 못하고 길에서 천막을 치고 풍풍우에 이걸 배우고 있는 이걸 볼 때 이 눈물겨워 볼 수가 없소. 아니 이것 참 이런데 와도 음식이 달지 않고 잔이 오질 않습니다. 이러니까 대뜸 그 에치슨 국무부 장관 보고 극력 보호 후원해 주라고 이랬지요. 미스터 장 말이 참 ... 합리적 이야기니 빨리 그걸 봐줘서 시정 시키라고 이래서 그 때 모포 뭐 이런거 모포만 그 때 50만장인가 얻어 왔습니다.

- 네.

- 그 때 그 사회부 장관이 구 박사 라고 그 분이 지금 생존해 있는지 않는지 그 분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 분이 내게 와서 국회에 와서 치하까지 했습니다. 이것이 이런 참 ...가 이렇게 많이 와서 감사 하다고.

- 그 트루만 대통령이 그 기분, 기분에 의한 원조 였겠군요.

- 네. 그래서 이제 본국을 나와서 오니까 부산 오니까 대통령이 안 계세요.

- 네.

- 서울 와 계시는지 관저를 가니까 서울 올라가셨다고 그래서 그 다음에 서울 왔더니 대통령이 대뜸 날 보더니만 잘 했다고 뭘 잘했습니까? 아 그 트루만 대통령을 우리나라에선 미국서 조지 워싱턴 숭배하는 이상 숭배한다 그런 말을 했다지? 그랬습니다. 잘했어. 잘 됐어. 이래요. 아 그 각하께서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다 내게 정보가 그 날 들어 왔는데 정보가. 이렇게 말씀을 하더군요. 어쨌든 그 외교 같은거 흔히 그 국제 무대에서도 있지만 기분 그 때 그 때 개인 기분이 크게 좌우 하는군요.

- 아이 미스터 신 생각해 보시오. 그 사람이 뭐 갖은 참 그 큰 사람들에게 다 그 뭐 칭찬도 받고 이런 사람들이 이 뭐 이 약소국가 이 대략 형편없는 국가의 한국 대표가 그 분을 추워줬데야 그 분이 뭘 그렇게 감사하겠소. 허나 사람이라는 거는 추워줘서 싫다는 사람이 없다는걸 내가 그 때 알았어요. 아주 이 양반이 두 손을 비비면서 사람은 관 속에 들어간지 50년 후라야 진가가 나온다고 이런 얘기까지 한 사람이 5분 약속 한 것을 문제 없다고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얼마든지 더 얘기하고 이러며 연승 미스터 에치슨을 쳐다보면서 한국을 후원해 주라고 그래요. 그래 내가 나오면서 나오고 나니까 그 때 외무부 장관 일 때 였습니다만 임병직 군인데 허리를 이렇게 치며 아이 그 장 부의장 참 굉장 하시오. 왜? 아 그 어쩌 대통령 한테 그렇게 뭐 펴 놓고 그렇게 얘기를... 아 여보시오. 그런 사람한테 펴 놓고 얘기 안하고 누구한테 한 단 말이오. 그런 사람한테 쭈삣쭈삣하면 더러 못 쓰는거요. 그런 사람한테 아주 활기있게 얘길 해야 되지 뭣하로 우리가 그 사람들 앞에 가서 전전긍긍 할 까닭이 뭐요. 이런 그 농담까지 한 일이 있습니다만. 하하하.

- 재밌었습니다.

(입력일 : 2007.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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