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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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변야화 / 주간 종합뉴스
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정계야화
창랑 장택상 편 - 제14회 UN한국위원단의 선정
창랑 장택상 편
제14회 UN한국위원단의 선정
1965.02.25 방송
‘정계야화’는 65년 1월 4일부터 방송한 15분짜리 대담프로그램으로 70년 10월 5일부터 나간 다큐멘터리 드라마 ‘정계야화’의 원조격이다. 이 프로그램은 광복 20년과 6·25전쟁 15년을 맞아 기획한 것으로, 정계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자서전적인 회고담과 함께 정계의 뒷얘기를 들려줘 청취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 해방 후 20년 흘러간 역사의 물결에서 새 좌표를 찾아보는 정계야화.
오늘은 유엔 한국 위원단 선정의 비화를 역시 장택상 씨와 신동준 동아일보 정치 부장과의 대담으로 들으시겠습니다.

네. 오늘도 어제에 이어서 부산 피난 시절의 여러가지 재밌는 얘길 들려 주십시오.

- 그러죠. 어저께는 어쩌께도 역시 6·25 때 얘깁니다만 오늘도 역시 거기에 계속해서 한 마디 하고싶은 것은 그게 그 해 그러니까 1950년 9월 입니다. 9월 16일인가 아마 그렇죠.

네.

- 그 때에 임병직 씨가 외무부 장관 이었댔어요.

네.

- 내가 그 때 국회 부의장으로 있고 했는데 그저 국회에서 이런 결의를 했어요. 한국 전쟁에 유엔군을 지원 했다고. 미국 정부에도 또 역시 그와 같은 결의를 했구요. 나하고 임병직 그 외무부 장관하고 같이 동반을 해서 미국을 떠났습니다.

네.

- 아 그 때 김동성 씨가 그 때 국회의원 인데 그 분도 그 때 같이 우리 셋이 같이 떠났군요. 그래 떠나서 인제 유엔에 가 있을 때에 내가 그 때 첫대 착안 하기를 1948년 그 때 그 1월 이던가 유엔 한국 위원단이 처음 나왔댔습니다. 나왔는데 그 때 그 멤버의 두 나라가 우리 문제에 대해서 사사건건이 방해돼요. 인도하고 시리아.

아 그 나라들이 중립국이니까 인제 자연 그렇게...

- 중립국인지 무슨 국인지 모르지만 그저 우리 문제라면 볼을 후비고 그저 방해만 해요. 그래서 인제 이걸 좀 그 멤버에 한국 위원단 멤버에 좀 제거 했으면 이런 생각이 간절했는데 나하고 그 때 당시 주미 대사 장면 박사 하고 그 문제를 가지고 에치슨을 수차 회계를 하고 그 분에게 호소를 했지요. 그 분이 어렵다. 지금 멤버를 체인지 한다는건 어렵다. 그래 하나 우린 그저 참 꾸준히 쉬지 않고 에치슨 미국 수석 대위원 수석 대표국에 업소 하다 시피 했지요. 했더니 하루는 우리 둘을 불렀어요. 불러서 조그맣던 그 국무성 화성턴으로 불렀어요. 그 때 내 기억에는 뉴욕에 있는걸 화성턴으로 오라 그래서 갔더니 날 보고 대뜸 하는 말이 너 어디 좀 써 봐라.

뭐를요?

- 시리아 하고 인도 대신에 누구를 어느 나라를 거기에 바꿨으면 좋겠는지 써 봐라 이래요.

아...

- 내 지금도 그 장면씨가 그 참 외교에 대한 그 전망에 내가 참 경탄을 하고 있습니다만 내가 첫 대에 차이나를 썼다 이 말이에요.

아 중국을요.

- 그렇죠. 그러니까 시리아 하고 인도 두 나라 대신에 다른 나라를 예약 했다는건데 내가 첫 대째 근데 중국이 뭐 우리하고 참 형편이 같으니까 뭐 가장 우리의 동정장을 지금이나 그 때나 그랬으니까.

네.

- 장면씨가 내 팔을 내 쓰던 그 오른팔을 탁 붙들며 한국말로 말이에요. 아 여보 장부장 그거 어쩔라고 그러쇼 그런단 말이에요. 뭐 잘못됐소? 아이. 차이나는 지금 여기 공기를 모르시오. 볼온간에 중공하고 지금 자유중국하고 이렇게 바꿔칠 모양 같던데 만일 차이나라고 썼다가 자유중국이 유엔에 빠져나가고 중공이 대신 들어온 다음에 그 놈들이 우리나라오믄 이거 어떻게 되겠소 말이야.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여가지고 온셈이니 큰일났소. 아찔해요. 그래 내 당장 거기다 오스트레일리아 썼다말야.

호주

- 네. 쓰니까 그 우리는 한국말로 주고 받고 하니까 에치슨이 물어요. 무슨 얘기냐. 그 내가 그 얘기를 했죠. 장면씨 하던 얘기를 영어로 번역을 해 얘길 하니까. 한참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끄덕. maybe. maybe. 두 번 그래요. 염려하는것이 옳다 이 말이지. 그래서 이제 오스트레일리아하고 타일랜드를 우리가 시리아하고 인도 대신에 바꿔 넣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국회에 와서요. 그 때 유엔에 다녀와서 국회 보고한 것이 아마 지금 국회속기록에 그냥 있을 겁니다. 장면씨를 내가 극구 칭찬 했어요. 지금 다행이 중공이 자유중국하고 서로 참 안 바꿔쳤길 다행이지. 만일 바꿔쳤다면 말이에요. 우리는 참 큰일입니다. 지금 유엔.... 여기 와 있잖아요. 만약 중공대표가 그렇게 있다면 우리일이 어떻게 됐습니까. 장면씨 앞으로 보는 out-look라든지 그거에 대해서 한 걸음 더 우리보담 밝으시다는 그 점에 대해서 내가 경탄을 했어요.

그 때 그 에치슨씨도 역시 그 중공가입. 그 기운을 인정했던거니까.

- 아 이 그 때 중공을 유엔에 참가시키라고 중립국들이 많이 유엔에서 논의가 됐고 그 때 그 아마 연대표를 찾아보면 알것입니다만 그 때 중공대표를 부르자 별 얘기들이 많았고 그 때 기세로 그 6·25때 중공군이 한국전쟁에 참가만 안했으면 그건 틀림없이 중공이 유엔에 들어오는 겁니다. 자유중국이 물러나고. 중공이 자유중국 자리를 차지하는건 틀림없는 사실이에요. 그자들이 그 말하자면 참 저희들이 자승자박해서 한국전에 참가함으로서 지금 저가 유엔에 참가 못했지 한국전에 중공군이 참가안했다면 그건 틀림없이 중공군이 아니 중공이 유엔에 들어오는 거에요.

중공이 유엔가입이 좌절된 게 침략자 낙인을 유엔에서 받았기 때문에..

- 그거죠. 단순한 그거죠. 그러고 이제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하니까 도저히 들어올 수 없죠. 참 미국이 그 중공 유엔 가입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단순한 한국전쟁에서 침략자라는 낙인이 찍힌 것이 원인이죠.

그 때 그 에치슨 그야말로 미국대푭니까?

- 수석대표죠. 국무장관이요 수석대표.

그 분과의 그 교섭이외에.

- 그게 한가지 또 일화가 있습니다. 그 이제 그 중국하고 내가 중국을 써넣어서 장면 주미대사가 저지해서 오스트레일리아로 바꾼 그 전날입니다. 한국오기 2-3일전인가. 우리가 자주가서 에치슨씨에게 가서 참 호소를 하고 하니까 에치슨씨가 그래요. 다른 나라는 괜찮다만 영국이 자꾸 우리들에게 이렇게 잔소리가 많으니 너 영국출신이라니 너 어디 영국대표단을 좀 찾아봐라 이래요.

아. 유엔대표 말이죠?

- 그렇죠. 그래 내 그 이튿날 식전에 그 리스트 호텔이라고 뉴욕 그게 영국대표단이 3층하고 2층을 대절해가지고 쓰고 있더군요. 찾아갔죠. 그 때 그 영국 외무성 어시스턴트 세크러터리라는게 말하자면 부차관이랄까 부차관이죠. 그 이가 그 있어요. 그 분을 전부텀 내가 알아요. 그 분을. 해서 이제 마침 그 층계 승강기에 내려서 3층으로 올라가니까 그분이 그 어디로 가느라고 승강기를 탈라고 기다리고 섰단말야 나는 내리고 그래 내가 딱 붙들고 나 좀 만나야겠소 이러니까 시계를 이렇게 척 보더니 좋다. 그래 이제 방으로 들어가서 참 얘길 했죠. 내가 솔직한 얘기를 했지. 에치슨한테 이런 내가 참 사정으로 유엔 멤버를 바꿔달라고 사정을 했는데 퍽 영국정부를 꺼린다. 그래서 자기하는 말이 영국정부만 어떻게 묵인을 하면 너희 요청을 내가 들어줄 수 있는데 영국정부서 태도가 어떨런지 퍽 걱정이라고. 내가 자청했다. 그럼 영국대표단 문제는 내가 접촉해 보겠소. 그래서 내가 여기 왔는데 그거는 너희 나라 대표단에 대한 아무런 무슨 연고가 없는데 단, 너하나 개인의 친분 이걸믿고서 내가 너희를 찾아왔으니 너 나 좀 살려다오.

그때까지만 해서 그 양반이 있는 걸 생각도 못했던 거였죠?

- 어이. 알았죠. 그건. 거기와 있는건 내가 알았죠.

만날 예정은 했던건가요?

- 만날 예정은 못했지.

우연히 이제 엘레베이터 앞에서 만난거 아닙니까?

- 그 분이 내가 가면 만나줄 그런 친분은 내하고 있습니다. 그 뒤에 1950 고 이듬해 파리서도 만나고 런던서도 런던 외무성 갔을때도 만났습니다만. 그 분이. 그래 이제 그 분의 협력이 많았습니다. 코렌 내가 그 분에게 요청한지 이틀만인가 나 있는 여관으로 왔어요. 그 때 그 코모도 호텔이라고 나 그때 장면 주미대사도 거기 와 있고 나도 거기 있었는데. 왔어요. 와서 에치슨한테 추진시키라. 영국정부에서는 묵비권 행사 하겠다. 찬성 반대도 없이 그대로 묵비권. 뭐 사일렌스만 하면 될것 아니냐. 그래 에치슨한테 즉시 ...를 보내고 그 걸음에 바로 갔죠.

그 인도가 영국세력에 그 때만해도 상당히 영향을 받았던 때니까.

- 연방이니까. 물론 그 때쯤은 지금 인도와 또 달랐어요. 영국의 내정은 모르겠습니다만 외교에 대해서는 영국의 지시를 참 잘 받아들이고, 영국말이라면 그 사람들이 뭐 별로 거부할 입장에 서 있지도 못하고... 영국의 묵비권을 우리가 ...를 통해서 획득을 한 까닭에 전취라고 할까 에치슨한테 갔죠. 그 날밤에 즉시 가서 보고를 하니까. 됐다. 그 때 또 뭐래요. 에치슨이. 누구누구... 아 일전에 써 넣은 오스트레일리아하고 타일랜드만 해주면 좋지 않겠소. 이래서 지금 타일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 우리 한국 위원단이 와서 있는 것이 우리들이 그 참 에치슨 국무장관에게 건의한 그 결과로 지금 그 분들이 지금 여기 와 있고 차이나가 빠졌습니다.

그걸보믄 하여튼 외교라는 것도 국제적인 여러문제가 개인적인 친분 친소 이런걸로 많이 좌우되는 일이..

- 가장 중대합니다. 개인의 친분이. 요전에 김동성씨가 그 아까 말씀드렸습니다만 임병직 외무장관 하고 나하고 서이 갔는데 그 분이 그 남미 대표들을 많이 알아요. 남미 대표들을. 그 분을 시켜서 남미대표들하고 교제를 시켰죠. 저녁도 같이 먹고 점심도 같이 먹고 그래서 그 분의 남미대표들을 수집하는데 우리가 많은 효과를 얻었습니다. 그 때 우리를 출석시키네. 우리 대표를 출석시키.. 정치위원횝니다. 정치위원회에 출석시키느냐 안 시키느냐 그 때 별별 얘기들이 많았어요.

외교얘기가 나온김에 내일 계속해서 무슨 말씀 들려 주시죠.

- 내일은 그 조병옥 박사 그 이대통령에게 외교서신이 6·25때 그걸 이박사가 못 가지고 나가서 그걸 경무대 그냥 두고가서 그걸 공산당 놈들이 가져다가 비신스키를 줘가지고 그게 유엔에서 벼락천불이 나선 그 얘기 좀 해볼까요?

(입력일 : 200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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