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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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정계야화
창랑 장택상 편 - 제13회 부산 피난때의 워커장군 에피소드
창랑 장택상 편
제13회 부산 피난때의 워커장군 에피소드
1965.02.24 방송
‘정계야화’는 65년 1월 4일부터 방송한 15분짜리 대담프로그램으로 70년 10월 5일부터 나간 다큐멘터리 드라마 ‘정계야화’의 원조격이다. 이 프로그램은 광복 20년과 6·25전쟁 15년을 맞아 기획한 것으로, 정계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자서전적인 회고담과 함께 정계의 뒷얘기를 들려줘 청취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 해방 후 20년, 흘러간 역사의 물결에서 새 좌표를 찾아보는 정계야화. 오늘을 서른 다섯번째로 부산 피난시절 워커 장군의 장황했던 얘기를 장택상 씨와 신동준 동아일보 정치부장 과의 대담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 네. 어제 대구 얘기에 이어서 오늘은 그 부산 시절의 워커 장군, 그 때 그 미8군 사령관이었죠.

- 네.

- 그 뭐 관여되는 얘기 해주시기로 돼있었죠.

- 그 얘기는 그렇게 됐습니다. 내 기억에 남아있는 걸로는. 우리가 부산 가서 인제 자릴 잡고 부산 가서 인제 다 정돈이 됐으니까 국회에 의사당 이라던지 임시 의사당 이라던지 정부는 도청을 그 때 차지하고 있었고.

- 네.

- 국회에서 그 때 결의가 되기를 50만 장정을 무장 시키고 또 그 병기 라던지 모든 그 거기에 수반되는 장비가 적어도 UN군과 같지 않고는 도저히 이 전쟁을 치뤄 낼 수가 없다. 이제 이런 얘기들이 국회에 돌고 이래서 소위 50만 장정 무장 결의 라는걸 그 때 국회에서 통과 됐어요.

- 아 그게 아마 북군의 그 소위 증언과 무장 그 장비 근대화에 첫 걸음이었을 겁니다.

- 그게 첫 걸음 초봅니다.

- 네.

- 그래서 인제 그 때 국회에서 대표로 선정 되기를 그 때 해공 신익희 의장 이청천 나중엔 지청천으로 이름이 도로 바뀌어 졌습니다만 그 분 하고 나 하고 인제 셋이 국회 대표로 선정이 돼서 대구에 그 때 UN군 사령관이 있었어요. 워커 중장 그 분 한테 가기로 됐습니다.

- 아마 지청천 장군이 그 때 국방위원인가 그랬죠.

- 국방위원장이죠.

- 네.

- 그 때 인제 같이 동반 하기는 국회사무총장에 박종만 씨라고 지금은 고인 됐습니다만 그 분이 우리와 같이 갔지요.

- 요즘 그 군원 얘기가 한창 입니다만은 그 땐 인제 초보로 한국군 현대화 그 교섭차 가신 거군요.

- 그렇지요. 그래 인제 가니까 이게 벌써 정부로 그 워커 중장에게 벌써 입수가 된 모양 이에요. 가니까 보통 통례로 말해서는 뭐 2~3분 더 기다리게 안 하는데 약 20분을 기다리게 한단 말이에요.

- 아. 일부러 기다린 걸까요?

- 네. UN군 사령부가 그 저 경산 나가는 길에 옛날에 일본 그 연대지요 그 그건데. 그래 인제 아 이거 아마 우리 오는 것을 그렇게 달게 안 여긴다 이렇게 벌써 미리 짐작이 들더군요. 그래 한 20분을 기다리게 하더니 그 즉시 들어오라고 하는데 그 때 인제 그 워커 중장이 앉았고 부관이 한 두 서넛씩 인제 같이 동석해서 앉았는데.

- 워커 장군이 그 때 부임하고 아마 얼마 안돼서.

- 얼마 안돼서죠.

- 유명한 워커 라인으로 인제 그 방위선 설정하고.

- 네. 그래 여기서 전사하지 않았어요?

- 네.

- 근데 뭐 말을 뗄 수가 없어요.

- 아 분위기가요.

- 어떻게 그 긴장한 얼굴로 우리를 대하는지. 그 나중에 인제 우리가 나와서 얘기들을 많이 했습니다마나 긴장해서 얘길 떼기가 어려워요. 그래 내가 그랬지요. 그 저 우리가 여기 온 그 사명을 당신이 아마 잘못 들은 것 같애. 내가 잘 모르고 하는진 모르겠소만은 아마 그 50만 장정 코리안 유스를 무장해 달라는 그런 요청과 사명을 띄고 온 걸로 아마 장군이 그렇게 아는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고 딴 사명이 있소. 이렇게 내가 딱 붙였단 말이야. 그 이가 날 이렇게 정면으로 쳐다보니 아 그러면 무슨 딴 얘기요? 이런단 말이야. 네. 그렇소. 뭐요? 우리가 여기 온 거는 한국군의 그 장비 라든지 또 그 인원수 라든지 하도 그 빈약하고 도무지 이 소련의 무기로써 그 장비를 갖춘 인민군은 당해낼 도리가 없소. 하니 우리도 한 UN군의 한 맴번데.

- 네.

- 인도상 그걸 일선에 내보내서 생죽음 시킨다는게 참 정말 안타까워서 국회에서 우리가 정부에 건의도 하는 동시에 장군에게 일단 통화를 하고 나서 우리가 행동을 취할라고 해서 왔는데 그건 뭔고하니 그 요지는 우리 군대는 후박의 서플라이 섹션으로 그 보급 하기로 하고 보급이나 수송이나 이런데로 돌리고 이 최전선에 실지 전투 엑티브 서비스는 참 참전 안 시키는 것이 옳지 않은가. 더 UN에서 우리들에게 더 건대한 무장을 주고 이런 뒤에야 비로소 이 전쟁터에 참가하지 지금 현실로선 도저히 이것을 참 그대로 우리가 인도상 좌시 할 수가 없다. 이래서 당신의 그 의견을 한번 일단 타진하기 위해서 온 거요. 이러니까 아 그거 무슨 소리냐고 워커.

- 깜짝 놀랐겠군요.

- 어. 이건 이야기가 다르지 않냐. 당신한테 견해가 어떠냐 이걸 우리가 타진하러 온 거요.

- 그건 창랑 선생이 순간에 그 기지로 그렇게 둘러대신 거지요?

- 엉터리 없는 얘기지.

- 그러니까 해공은 싱글싱글 웃죠. 해공은 영어 알아 듣습니다.

- 네.

- 그러니까 그럼 일단 아 그거 그래선 안 돼. 지금 한 사람도 지금 뺄 수가 없고 한국군이 정말 지금 전투를 잘해. 한데 그건 그럴 수가 없다. 로메트리아는 좋소.

- 네.

- 그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면 그 무슨 뜻인가 재료는 좋소. 그 군대 소질로는 좋다 이 말이지. 로메트로는 좋지만 웨폰이 없소 이 말이야. 무기가 없으니 아 그거 생죽음 시키기도 싫소 하니 국회에서 당신한테 통보도 하고 또 정부엔 우리가 건의 하기로 이런 사명을 띄고 왔소. 이러니까 안 된다고 그 분이 긴장하던 얼굴이 확 풀어지는 거야. 그래서 뭐라 하니까 그럼 대체 당신네들이 요청이 만일 그걸 그렇게 아니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진다면 어떤 행동을 우리가 취했으면 좋겠냐. 아니 그렇다면 지금 참전하고 있는 그 군대 에게도 물론 장비가 필요 하지만 앞으로 우리가 그 로메트리안이 많아. 재료가 많아. 인원이 참 병력이 이만하니까 그 사람들에게 우리가 무장을 시켜 준다면 우리가 뭐 당신네들 힘을 빌릴 것 있소? 우리 힘으로 전투 하지 않겠소?

- 네.

- 인민군이 어디 별 놈들이요? 그 놈들 소련 무기 가지고 우리 하고 싸운다면 우리가 낭패를 당하지. 같은 무기 아니면 그건 문제가 안돼. 하루 아침 거리로 우리가 다 해치우겠소. 이러니까.

- 그 때만 하더라도 그 한국군이 일본 무기 같은거 좀 갖고 그 정도 였으니.

- 소위 그 때 우리 군대가 가진 그 장비 라는게 대개 미국것도 조금 얻었지만 대개 일본 그 38식 총, 이건 뭐 망측 하지요. 현대 참 지금 우리 국군에 비해 보면 이건 뭐 참 천양지 소양지차가 있지요.

- 네.

- 그래 그니까 우리가 그랬지요. 만일 그렇다면 장군의 의도가 그렇다면 우리 병력의 참 현대에 적합한 무장을 주기를 희망 합니다. 이러기에 그럼 인원수는? 아 인원수야 다다익선 이지요. 하지만 당신네들 형편이 어떨런지. 우리야 얼마든지 우리 저 장정들은 얼마든지 많이 있고 우린 뭐 50만도 좋고 100만도 좋소. 우리 댁하곤 100만 어쩌고 이런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것 까지는 어떤지 모르겠소만은 그래도 기십만의 장비만 주면 우리가 전투에 참가 할 수 있지 않소. 그러니까 20만 얘기 합니다. 20만이면 어떠냐. 좋소. 다다익선이면 그만 해도 우린 만족 하오. 그래서 그게 제 2군병이 그게 창설된 겁니다. 나중에 우리 정부에서 그걸 잘못해서 김윤근 이라든지 윤익선 이라든지 그 다 총살까지 다 하고 그런 그 참 비극이 빚어 놨습니다만은 제 2국민병 그 훈련 근데 그 때 그 워커 중장이 그래요. 그럼 훈련부터 시켜라.

- 네.

- 장비는 우리가 담당하마. 훈련부터 시키라 해서 그 제 2국민 방위군 인가 뭐 그래서 그게 참 유종의 미를 구하지 못하고 중간에 우리가 실패를 했지만은 원 제 2국민방위군 이라는게 그 이름이 생기기를 우리가 그 국회에서 대구 가서 그 워커 중장 하고 교섭한 그 결과가 바로 그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리고 그게 오늘날 말하자면 60만 한국 현대군의 그 실마리 이기도 했군요.

- 그렇지요.

- 그 때 그 워커 장군이 그래도 선견지명이 있어서 그걸 선뜻 응낙을 했으니까 그게 그래도.

- 근데 그 분이 내 지금까지 해석하기가 어려운 건요. 그 분이 어디로 어느 소스로 얘기를 들었는지 50만 장병 무장 결의터가 된건 그건 사실인데 그걸 어째 자기가 오해를 했는지 뭔지 당장 우리한테 대하는 태도가 처음에 삼엄 했습니다.

- 네.

- 삼엄해서 해공은 말도 못 떼고, 이청천도 더구나 그건 외국말 잘 모르니까 옆에 앉아 방관만 했지만 도무지 뭐 어떻게 말을 걸 도리가 없어요. 그래 내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좌우간 얘긴 붙여야 뭐 되겠는데 화제도 없지 우린 그런 사명이 아니다 50만 장정 무장 사명이 아니고 좌우간 지금 이 현실로 봐서는 우리 군대를 갖다가 일선에 전쟁 시킬 수가 없다. 부득불 서플라이 섹션이나 이런대로 돌리면 되지만 일선의 그 실지그 엑티브 서핀스엔 도저히 참가시키기 어렵다 하니 이걸로 꺼내니까 그 분이 그만 얼굴 표정이 달라 지더군요.

- 말하자면 정면 교섭에서 측면 교섬으로 작전을 돌리셨군요.

- 그렇다고 할까?

- 근데 그 그 때만 하더라도 참 이 워커 장군이니 뭐니 이 한국에 대해서 반신반의라고 그럴까요? 여러가지로 그 걱정이 많았을 때니까.

- 그 워커 장군은 그 분이 상당히 이 한국전에 열중 했고 이랬습니다만은 내가 그 태전에서 그 딘 사단장이 포로가 되고 그러지 않았어요? 그 저 우리 군정 말년에 군정 장관으로도 있고 지금도 그 분이 살아 있습니다만 그 태전 전투에서 그 포로 되지 않았어요? 그 분이 조금 경솔 했어요.

- 네.

- 내가 태전에서 그 분 만났거든 내 그 분 밑에 이 수도청장도 지내고 했는데 그 분 한테 만나서 인사를 하고서 이 전투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치열하겠습니다. 이러니까 `원 위크!` 이 손가락을 열개 들었습니다. `아셜 피니쉬드 인 원 위크` 내가 이 한 주일 안에 다 해치우겠다. 그런지가 불과 26일이 못 돼서 그 분이 포로 됐습니다. 조금 경솔했다. 근데 이 워커 장군은 우리한테 퍽...

- 네. 여기서 생명을 바치고.

- 네. 생명도 바치고 그 분은 우리들에게 그 퍽 동경하는 분 이에요.

- 네. 그럼, 내일은 또 계속해서 부산 시절 얘기를 해주실까요? 뭐 또 다른 얘기들을...

- 글쎄요.

(입력일 : 2007.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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