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방 후 20년, 흘러 간 역사의 물결에서 새 좌표를 찾아보는 정계야화. 오늘은 서른 세번째로 인촌과 이조자기에 대한 얘기를 장택상 씨와 신동준 동아일보 정치부장의 대담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 인촌 김성수 선생 10주기를 맞아서 여러가지로 재밌는 말씀을 들어 봤습니다. 근데 제가 전에도 가끔 이촌 선생 댁을 가면요. 대개 그 이조자기, 고려자기 해서 그 우리나라 고유문화 여러가지 골동품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거기에 관해서 뭐 좀 재밌는 얘기 말씀 좀 해주시죠.
- 글쎄 그 인촌이 이조기를 수집한 그 동기를 잠깐 말씀 여쭐까요?
- 네.
- 그 분이 애초에 이조기에 취미를 붙이기는 그 뭐 시덥지 않은데서 부터 출발 했다고 난 보고 있어요. 그 분이 그 손님을 많이 초대 했습니다. 동아일보, 경서방직, 학교 관계 그런건데 그런 관계로 그 내부에 귀빈을 자주 자기 집에다 초대한 그런 그 습성이 있어요. 근데 그 역시 이것도 인촌의 그 참 애국심에서 출발 했다고 하는게 같지요. 그 옛날에 이조 그 분원 7첩 반상기.
- 네.
- 한국도 이만한 그 참 식기가 발전 됐다. 이걸 이제 외부인에게 보이기 위해서 분원 식기를 많이 수집 했습니다. 처음부터 시작 할 때에. 그래서 인제 그것이 어떻게 취미로 발전이 돼서 그 땐 본격적으로 이조 도자기를 수집 했어요.
- 아 그럼 여러 많은 점 수집 하셨겠군요.
- 네?
- 수십 점...
- 아 수십 점이 아니라 수백이 넘을 겁니다. 그때 한 일화가 있는데요. 부인께서 들으시면 웃으실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은 하루는 내가 그저 진영 때에요 그게 9월 인데 인촌 댁을 어디 갔다가 잠깐 들렀다니까 인촌이 그 사랑 방문을 열어놓고 바로 그 문 앞에 앉아서 그 이조기 접시 하나를 그 저 비누로 닦고 앉았더군요. 그래 내가 들어가니까 아 이 사람아 빨리 들어오라고. 그 뭘 닦고 앉았냐니까. 아 내가 오늘 여주를 갔댔어. 이 접시가 어느 촌가에 있다는 말 듣고 가서 사 왔네.
- 경기도 여주요?
- 그렇죠. 아 이 우리집 안에서 비싸게 샀다고 이거 바가지를 긁는데 괴로워 못 견디겠네.
- 아 그 땐 일부러 그렇게 가서 사시고 그랬나요?
- 그렇지요. 그 인촌이 그 저 가까운 근교 많이 다녔었습니다. 그거 사러. 그것도 소개꾼이 있어요.
- 아 골동품 상회에서 직접 사는게 아니라?
- 아니에요. 골동상에 그렇게 좋은게 있나요. 모두 촌가에 모두 참 이렇게 비장 돼가지고 있는 거지요. 뭔지 모르고.
- 네.
- 얼마를 줬나 물었어요.
- 네.
- 180을 줬다고 그래요.
- 아 그 땐 큰 돈 이겠군요.
- 큰 돈 이구 말구요.
- 접시 하나지요. 그러니까.
- 쌀 한가마니에 6원 7원 할 때 아닙니까.
- 접시 한 점에 180원 이면 쌀 몇 가만가요.
- 하 그 뭐 십여 가마니지요 뭐.
- 네.
- 그래 인제 인촌 그 좋은 해결 할 방법이 있네 이러니까 어떻게? 아 이거 내가 180원 내고 내가 가져가면 부인께서 아마 아 그 값어치가 있는가 보다 하고 그렇게 화를 안 내실거 아니야? 이러니까. 그거 됐다. 너 돈 있니? 그 있어. 그래 내가 200을 냈단 말이야. 얼른 인제 20을 거슬러 준단 말이에요. 내가 그 놈을 신문지에 쌌지요. 싸가지고 나 지금 가네. 아 왜? 놀러와서 왜가? 아니 글쎄 내가 누굴 좀 찾을라고 하는데 내가 가서 안 늦으면 또 들르고 그럼 내일 만나세. 그래 내가 황연히 나왔어요.
- 왜 그렇게 빨리 나오셨어요?
- 그 나온 이유는 인촌이 또 그 동안 어떻게 변심을 하면 더 뺏기지 않을까 하는 그거죠. 그래 퍼뜩 인제 집으로 가지고 왔단 말이야. 올 때 그게 아마 그게 9월달 인데 8시 9시 날이 밝았지요. 있다 보니까 밤 11점 되락마락 해서 아 대문을 차는 소리가 난단 말이에요. 그 난 진작에 알았지요 벌써. 아 이거 인촌이다. 그래 내가 애들이 나가서 문을 여니까 대뜸 인촌이 발을 대문 턱에다 턱 드려노니 이 놈 접시 도둑놈 나오너라 하고 인촌 목소리가 나오더라 얼른 갖다 접시를 갖다 집어 넣었죠. 그러니까 뜰에 딱 올라서면서 이놈 접시 내놔. 아 접시라니 이 사람 왜이래. 이 놈 내가 이태준이 한테 들었어. 이태준 군 이라고 소설갑니다. 지금 이북 갔습니다. 그 사람은 좌익이고 그래서. 그 사람이 그 좋은 물건도 많이 가지고 갔어요. 그 사람이 그 도자기의 권위잡니다. 그러니까 내가 가던 전에 오전 오후 쯤 됐겠지 그러니까 인촌 댁에 아마 이태준 군이 들렀던 모양이야. 이제 인촌 집에서 그걸 보니까 이태준이 마음에 좋으니까 그 땐 그 이상한 버릇이 있어요. 서로 보고 좋아도 좋다는 표정을 안 합니다. 행여나 혹 이것이 굴러서 내 손에 입수나 안 될까 해서 그런 습성을 우리가 다 가졌을 때에요.
- 그 골동품 수집하는 분들 대개 다 그렇더군요.
- 다 그렇습니다. 이태준 군이 보고 가서 저녁에 들렀단 말이야. 10시나 9시나 어떻게 됐는지 모르지만 들러 보니까 인촌 보고서 아 그 접시 선생님 한번 더 보여주시오 그러니까 아 그거 창랑이 가져갔어. 인촌이 그랬겠지. 아 그 우리집 안에서 그 자꾸 바가지를 긁어싸서 창랑이 또 마침 하겠다고 해서 그 내 털어줬어. 그러니까 아 선생님 그 국보를 놓쳤습니다. 이러니까 인촌이 갑자기 욕심이 참 폭발했던 모양이야. 아 그냥 쫓아 내려왔습니다.
- 아...
- 그러니까 거두절미 하고 좌우간 3년 동안을 그 접시를 내가 인촌 안 오는 새에만 가끔 내서 이렇게 감상을 하고 했지 인촌 목소리만 나면 그 접신 햇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 크기가 얼만한 겁니까?
- 그게 약 지금으로 말하면...
- 직경이 한 몇 센티나 되나요?
- 직경이 저것만 하지요. 그러니까 그게...
- 그럼 한 30센티 되겠네요.
- 30센티 조금 더 넘을 겁니다. 34~35센티 아마 될겁니다.
- 흰 백자 입니까?
- 아니요. 백잔데 속에 그 저 이...
- 무늬가.
- 네. 무늬가 있고 이런데 그것이 6·25 때 내가 참 굉장한 물건들을 많이 가졌더랬는데요.
- 네.
- 그거 다 국보가 두어 점 되고 이랬는데 그거 다 벌써 깨지고 도난 당하고 이랬는데 마침 그건 그냥 남아 있어요. 지금도 그걸 내어보면 인촌 생각이 나고. 그래서 내가 인제 언젠가 그걸 인촌 수택이 묻은 고래대학 도서관에다가 내 기증을 할까 하는 생각을 지금 내가 꿈꾸고 있습니다. 참 인촌 생각에 말이야. 그렇게 인촌이 뭐 좌우간 3년 동안을 접시 도둑놈이란 소리를 듣기를 내가 수백번을 들었으니까.
- 굉장히 애석 하셨던 모양이지요.
- 근데 자긴 나한테 이제 꾀임에 녹아서 자기가 그 놓친게 분하다 그거지.
- 근데 그 저 자기가 그러니까 그 뿐 아니라 여러개 많이 가지고 계실텐데 그런 자기들은 지금 가 보니까 뭐 인촌 댁에 얼마 없는거 같던데.
- 네. 인촌이요 서화 도자기를 연천 그 그 땐 이제 지금 고려대학 이지만 그 땐 보성전문학교 농장 이었어요 창고가 있고. 하루는 인촌이 해 8월 쯤 됐나요? 그 전에 해방 전 바로 직전 쯤 됐는데 인촌이 쫓아 내려왔었어요. 내 집을 와서 여보게 그 낭산이 지금 농장 관리 하고 있으니 그 창고 에다가 자네 물건하고 우리 물건 옮기세. 이 B29가 분명히 자주 오고 이러면 까딱하면 우리가 폭격 당할 테니까 옮기세. 그래서 인제 인촌 물건하고 내 물건하고 인제 전부 연천으로 옮겼습니다. 인촌 그 자녀가 많잖아요?
- 네.
- 그 혼수 까지 혼수품 까지 다 옮겼댔습니다. 아 그 놈이 참 천만외로 3·8선 이북으로 돼가지고 전부 다 지금 이북 가 있잖아요. 내 물건도 그렇고 인촌 물건도 그렇고.
- 이 저 낭산 김준연 선생이 이전에 동아일보에 뭐 연천 농장 얘기를 좀 쓰셨더군요.
- 네네.
- 근데 그 농장에다가 갖다 다 맡겼다구요 전부 지금 이북 넘어 갔는데 근데 그 괴이한 일은 인촌의 인감 증명이 그 한 몫 갖다 인촌이 거기다 갖다 놨단 말이야.
- 아 그 농장에.
- 네. 근데 그거 1947년 인가 내 수도청에 있을 때 인촌이 전화를 걸고 이 사람아 이 내 인감 증명이 도로 돌아 왔으니 이게...
- 인감이?
- 인감 저 인감 도장.
- 네.
- 인감 도장이 도로 돌아 왔으니 이게 평양까지 갔다가 왔을 것이니 이거 왠일이냐 말이야. 도데체 갖다 준 사람이 누구냐. 면부지 하는 사람이 내 사랑방에다 던지고 갔으니 이게 필시 평양까지 갔다가 어떤 공산당 놈에게 가져 온거야. 다른 물건은 다 있는대로 가져 갔는데 내 인감 도장만은 도로 아마 나한테 보낸 것 같애. 그런 그 일화가 있습니다.
- 아 그럼 그때 그 창고에 있었던 물건들은 다 없겠군요.
- 다 갔지요. 아마 그 인촌 댁에 그 인감 도장이 있을건데 그 도장이 평양 한 번 갖다 온 도장 입니다. 그 내 인촌께 직접 들었으니까요.
- 아 그 묘한 경로를 밟았겠군요.
- 묘한 경로지요. 그러니까 그 도장은 평양 여행을 한번 했던 도장이지. 인촌은 못 갔었대도 그 도장만 한 번 갖다 온 거니까.
- 그 저 인촌 선생께서 하여튼 많은 그 그야말로 좋은 보물급 골동품도 많이 가지고 계셨을텐데 그것도 전부 갔겠군요.
- 아니에요. 자기 말이 조금 서화만
- 몇 점 이나?
- 서화하고 그 도자기 몇 점 만은 자기 고향 전북에다가 보내 두었다고 그런 말씀을 내 인촌한테 직접으로 들었고 좋은거는 전부 연천 다 갔댔습니다.
- 그럼 창랑 선생도 다 연천에...
- 난 전부다 옮겨졌습니다.
- 몇 점 이나.
- 그 뭐 한 40여 점 될 겁니다.
- 네.
- 그 때 그 트럭으로 인촌 댁 트럭이지요.
- 네.
- 그 난 인촌 댁에만 갖다 옮겨만 줬는데 인촌이 전부 실려 보냈지요. 그 몽땅 다 넘어 갔지요.
- 주로 무슨 이조 자기 입니까?
- 이조 자기 지요.
- 연천이 3·8 이북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지요.
- 어쨌든 이제까지 인촌 선생님 말씀도 여러가지 듣고 했는데 그런 물건 좀 남았을 정도고 인촌 선생님을 가셨지만 인제 그런 말씀과 함께 여러가지 그 이전에도 말씀 나왔지만 인촌 선생의 유덕 또 그 남기신 공 이런것이 앞으로 아마 영원히 남을 겁니다.
- 남고 말구요. 우리나라 사람으로야 특히 인촌에 대해서야 영세불명 이지요. 잊을 수 없는 애국자고 참 잊을 수 없는 대 선각자 라고 아니 할 수 없지요.
- 이제까지 그 인촌 김성수 선생 말씀을 네 차례 같이 들었는데요. 내일서 부터는 인제 창랑 선생님이 그 국무총리로 계셨던 때 일 뭐 그 때의 여러 말씀 좀 들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국무총리 때 얘기 보다 그 전 6·25 때 겪은 얘기 몇 가지 해볼까요?
- 네. 그럼 그걸 들려 주세요.
- 네.
(입력일 : 2007.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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