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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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변야화 / 주간 종합뉴스
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정계야화
창랑 장택상 편 - 제5회 조병옥 박사의 주변
창랑 장택상 편
제5회 조병옥 박사의 주변
1965.02.15 방송
‘정계야화’는 65년 1월 4일부터 방송한 15분짜리 대담프로그램으로 70년 10월 5일부터 나간 다큐멘터리 드라마 ‘정계야화’의 원조격이다. 이 프로그램은 광복 20년과 6·25전쟁 15년을 맞아 기획한 것으로, 정계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자서전적인 회고담과 함께 정계의 뒷얘기를 들려줘 청취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해방된 지 올해가 꼭 20년. 그간 우리나라 정계를 주름잡은 가지가지 일들. 영원한 시간의 물결을 따라 흘러버린 과거사를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되새겨 보고 숨었던 여러가지 얘기와 새사실을 찾아보는 정계야화 시리즈. 그 27번째 시간으로 오늘은 어제로 맞은 조병옥박사 5주기에 즈음해서 조병옥박사의 마지막에 대해서 장택상씨와 신동준 동아일보 정치부장의 얘기를 들어보시겠습니다.

유석 조병옥 박사와 끊을래야 끊을수 없는 봉선와 멜로디가 지금 흐르고 있습니다. 오늘서 부터 한 사흘동안 창랑선생님하고 지난 날의 조박사 여러얘기를 좀 듣고자 합니다. 오늘은 무슨 그 저 유석 조병옥 박사의 마지막에 대헤서 창랑 선생님의 말씀을 좀 들을려고 그러는데요. 저 우선 창랑선생님이 그 유석 조병옥 박사하고 처음 만나신 건 언제쯤 되십니까?

- 그것이 기미운동 직후에 미주에서 그 때 독립운동 하시던 이박사가 그쪽에 있는 유학생 전원을 위주로 소집한 일이 있어요. 그 때 그 소집에 의해서 내가 뉴욕을 갔더니 에 어느 한인의 사택이더군요. 미주에 있는 학생들 또 독립운동하던 여러인사들이 거기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어요. 늦게 갔더니.

장선생님 그 때 학생이시..?

- 네. 그 때 스코틀랜드 애딘버러 대학에 재학중으로 있었습니다.

조박사는 그 때?

- 그 때 콜럼비아 대학에 재학중이고. 그래서 이제 서재필박사가 사회를 하셨어요. 그 날. 저녁인데. 근데 왠 젊은 사람이 다른 사람은 다 모자를 벗었는데 거 전혀 보지 못한 이상야릇한 모자를 하나 쓰고 저 여러사람있는 말석에 앉았어요. 얼굴이 험상시럽고 이래서. 그 누군가 하고 의아해 했더니. 회의 끝나고 자기소개를 하라고 서재필 박사가 말씀하셨어요. 그래 이제 자기소개를 하는데 그 분이 내 앞으로 당겨오더니 나 조병옥이요. 이래요. 그래서 이제 처음 만났습니다.

그 때 이제 유석하고 처음 만나시고. 그리고나서는 이제 언제 또.

- 그 뒤에 나도 이제 본국으로 돌아오고 돌아오니까 조병옥군 벌써 졸업하고 와서 여 연전에 와 서 연희전문학교입니다. 지금 연세대학전신이죠? 거서 교편을 잡고 있다가 무슨 그 일본총독부 조선총독부 학무국이라고 있지않았어요? 그 때 연전에 대해서 뭐 연전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이 경영하는 사립전문학교에 대해서 무슨 가혹한 규정을 정해사지고 뭐라고... 그 문제로 가지고 조병옥군이 사표를 하고 나오느니 마느니 옥신각신하는 그 땝니다.

그 땐 어디서 자주 만나시게 됐던가요?

- 조병옥군은 대게 인촌댁 사랑방이 그 때 우리들의 그 아지트라고 할까요? 그 자리에서 늘 주야로 모이고. 뭐 인촌댁 사랑방이 우리들 그저 집회장소로 뭐 정해 놯던 데죠. 그거 뭐 유석도 오고 돌아간 고이관용박사 그 참 나하고 둘도 없는 친구였고, 유석하고도 뭐 막역한 친굽니다. 그 사람. 윤치영. 그 뭐 낭산은 그 때 연천 경기도 연천 그 저 보성전문학교 농경지가 있었어요. 창고경영하고. 거기있어서 뭐 낭산은 자주 못왔습니다.

김준연씨요.

- 그렇죠. 그래서 뭐 우리들 그저 말하믄 항일 일본을 좋게 안 생각하는 사람들 집회 장소죠.

유석하고 창랑선생하고는 나이도 비슷하시죠.

- 나이. 연상이라고 하는데 나 보담 한 살 아랩니다. 근데 그 사람들 날 보고 세 살 위라고 했지만 나중에 환갑때 발견을 했어요.

전에도 보면 늘 농하시고 아주 트고 지내시던...

- 아이. 농이 아주 이만저만 정도가 지나친 농이죠.

저. 유석하고 막역하게 지내신 말씀은 낼 하고 모레에 걸쳐서 또 자세히 듣기로 하구요. 오늘은 저 조박사가 그러니까 5년전에 장면 그 때 민주당 부통령 후보하고 런닝메이트로 나왔다가 그 서울위생병원입니까? 거기에서 별안간 그 신체에 대해서 좀 건강에 이상이 있다 그래가지고 진단받아가지고 미국 떠나던 얘기. 그 즈음을 얘기를 좀 들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그 때 유석이 그 때 그 무슨. 병명은 내 들었는데 잊었습니다만.

그 때 널리 그 밝혀지지도 않았었죠.

- 네 그렇습니다. 청량리 위생병원에 입원했단 말 듣고 우리 네외 병원에 쫒아 갔죠. 가니깐 유석이 침대에 누워서 있었어요. 부인이 마침 계셨고. 조성만군이 있었든가 없었던가. 좌우간 병실에 들어가니깐 멀쩡해요. 아 왜 뭐 또 건강진단이냐? 농으로 그랬죠. 대통령 나갈테니까... 그게 아니고 내가 신체에 고장이 생겼다고 이래요. 무슨 고장? 병명은 아직 잘 모른다. 근데 날 자꾸 미국가라고 해서 수술하라고 하니. 무슨 수술이냐고 물어도 내 자신에게도 잘 알으켜 주지 않는다. 그 자네 안색이라든지 봤을때는 괜찮지 않은가. 나도 아무렇지도 않은데 의사들이 그러니 좌우간 일단 내가 퇴원해가지고 또 다시 한 번 진단 맡아야 겠다고. 그 땐 뭐 대수롭지 않게 알았어요.

그 때만 하더래도 그러니까 딴 병원에 뭐 진단같은거 말이죠. 여러가지 의심도 나고 그래서. 청량리 그 서울위생병원의 닥터루. 그 분이 이제 아주 공정한 의사다. 이래서 아마 거기가서 진단을 맡았죠. 근데 그 때 진단이 거기서도 역시 어렵다 그래서 미국이나 육군병원 미국육군병원 월트리드병원 같은데 가야 알아낼 수 있단 이래가지고 한창 말썽이 됐습니다.

- 그래 자세한 기억은 안 납니다만, 진단이 우리나라에서 자세히 안 붙은건 사실이에요. 내가 그 뒤에 유석을 진단했던 그 저 의사를 몇 분 만나서 걱정이 돼서 물으니까 병명을 잘 얘기를 못하더군요.

그래가지고 곧 미국으로 떠나게 됐죠?

- 그랬죠. 그래서 이제 미국으로 간...

1월 9일날? 1월 19일날 떠나게 됐죠?

- 1월 19일날 떠났는데 하루는 앉았더니. 그러니까 아마 1월 18일 바로 떠나던 그 전날이죠. 오후 아마 두신가? 점심을 먹고 앉았더라니까 유석 내외분이 들어와요. 그 이제 조성만군이 뒤에 따라들어오고. 조성만군은 뜰에 섰고 유석 내외분이 들어와서..

수표동 자택에 말이죠?

- 그렇죠. 사랑방에 앉아서 그러니까 이제 유석이 오시니까 또 부인도 오시고 하니까 내자가 쫒아나와서 이제 우리 너이 앉아 이제 차를 갖다 먹고 얘길하고 하는데 갑작스럽게 유석이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한 끝에 얼굴이 긴장해 지더니만 창랑이 내 병든 까닭을 자네 알지? 내가 어떻게 니 병든 까닭을 알게 뭐니 그러니까. 까닭이 있어. 날 못살게 하는 놈이 있어. 그래 내가 병이 들었어. 너 그거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그 바로 고대로 너 알고 있어야 한다.

이박사를 대고 한 말인가요?

-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내 얘기 같습니다.

아. 당내얘기...

- 그라고 이제 끝에가서 유석이 이제 나 지금 경무대서 오는 길일세. 유석이 노인이라 그래.노인이라서 하직인사 치르고 오네. 마지막 내가 이제 나오면서 "give me a chance" 그랬네. 우리나라 말로 하자면. "내게 기회를 주시오"

기회라는게 결국 뭘 말하..

- 대통령 선거 앞에 당겨오는 대통령 선거에 공명선거를 하라. 이런 의미겠죠.

페어 플레이의 기횔 달라.

- 그렇죠.

그 때만 하더라도 조박사가 미국가는 걸 허가하느냐. 마느냐. 그런 말썽도 좀 있었었죠.

- 있었죠. 그러니까 유석 말씀이 이제 그래요. 그렇게 말하니까 이박사가 그거에 대한 무뎁이데. 바로 유석 쓰던 용어 고대롭니다. 무뎁이데. 이러고...

아 이박사가?

- 그라고 날보고 빙그레 웃어요. 그 사람 하도 어이없는 일은 대게 그 사람 웃는것이 그 사람 장기니까. 그러면서 차를 한 잔 마시더니 일어나세요. 부인이 일어나시고 이러니까. 두 손을 들어서 내 어깨에다 얹더니 "창랑" 이런단 말이야. "왜 그래?" "너 하고 나 하곤 90은 살아야 하네." 그 내가 웃으면서 "그 뭐 사람 수명도 마음대로 하나." 아니야. 나라꼴이 "너와 나와 90은 살아야 해" 그 때 그 말 듣곤 기분이 좀 나빴습니다. 그 부인이 퍽 언짢아 하시더군요 유석 그 말을. 70도 못 채우고 가지 않았겠어요. 그 이튿날 비행장을 나가니깐 유석이 다른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녹음을 하더군요. 유석이. 송별사를 하는 모양입니다. 그 때 그 유석말 한가지 기억나는 거는 뒤로 총을 쏘지 마라는 그런 말. 어귀를 쓴 것 같은 기억이 납니다. 그 때 그 용어는 선거완 관계없고 당내 관계 아닌가 이런 진지하게 들었습니다.

아. 아까 그 내 병이 왜 났는지 아느냐 그 말하고 관련되는 거로군요.

- 유석이 고 전날 18일날 내게 이박사께 작별인사를 올리고 내게 와서 그 말을 할 때 그 얼굴과 긴장하고 노기가 띄어 있어요. 유석 그 안광이 언제든지 긴장할때는 패기가 나옵니다. 유석은 그 성격 그대로 표현되는 4,50년 친구니까 늘 알고 있지만. 그러면서 그 말이 내 뒤에다 총 놓지 마라는 그 말을 내가 서서 들었는데. 집에 와서 내 생각에 짐작에 요 사람이 당내 관계 아닌가. 고 전날 한 얘기를 되새김 해 보면 역시 그 관계 아닌가 하는 내 짐작이 갔습니다. 내 짐작이 잘 못 생겼는지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내 짐작엔 그렇지 않은가 하는 지금도 그 짐작은 변치않고 있다 이것이 내 판단입니다.

그 때 그 말 가지고도 여러가지 해석이 있었습니다만. 창랑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여러가지로 생각드는점도 많습니다. 그러면 내일 또.

- 내가 그 성명까지 지적하는 걸 들었지만 그건 지금내가 삼가해서 말 안하는게 좋지 않은가.

아. 조박사로부터 직접 들으셨어요?

- 뭐. 부인도 같이 한자리에 앉았더랬으니까. 부인은 이 얘길 들으면 짐작이 가실겁니다만 내 굳이 그 뭐 성명까지두루 얘기할건 없습니다만은 내 짐작은 가지요.

네. 알겠습니다.

(입력일 : 2007.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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