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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야화
경무대 비화 - 제22회 이박사와 타이프 라이타
경무대 비화
제22회 이박사와 타이프 라이타
1965.02.09 방송
‘정계야화’는 65년 1월 4일부터 방송한 15분짜리 대담프로그램으로 70년 10월 5일부터 나간 다큐멘터리 드라마 ‘정계야화’의 원조격이다. 이 프로그램은 광복 20년과 6·25전쟁 15년을 맞아 기획한 것으로, 정계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자서전적인 회고담과 함께 정계의 뒷얘기를 들려줘 청취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 정계야화 시리즈 경무대의 비화. 우리나라가 해방된지도 어언 20년. 이 20년 동안에 일어났던 가지가지 일들도 이제 돌아보면 한낱 지난 과거사. 그러나 흘러 보내면은 고만인 이들 과거사 속에서도 다시 되새기면은 새로운 많은 사실과 교훈을 찾아 낼 수도 있습니다. 이제까지 정계 이 얘기 저 얘기를 들어보는 정계야화 첫 시리즈 경무대의 비화를 정부 수립 직후 경무대 비서를 지냈던 박용만씨와 동아일보 정치부장 신동준씨의 얘기로 들어봤습니다.

경무대 초창기 얘기에 뒤이어 자유당 전성기, 그리고 4·19에 이르는 비극적 말기는 다시 다음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내일부터는 다른 정계야화를 듣기로 하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박용만씨와의 끝순서. 이박사가 마지막 들고간 타이프 라이터 얘기를 듣겠습니다. 》

그 동안 20여회에 걸쳐서 여러가지로 재밌는 얘기를 많이 들려 주셨습니다. 대체로 박선생이 경무대에서 일한 정부수립 초기 해방직후의 어수선 했던 당시 정세를 배경으로 해서 이제까지 들은 숨은 얘기는 지난 날 정부 초창기의 이면사를 엿보여 줬다고 하겠습니다. 우린 때때로 어떤 사물이나 역사에 있어서 정면으로 나타난 어느 일면보다는 때론 측면의 또는 뒤쪽의 그 공식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던 일면에서 살아있는 참모습을 보여지는 수가 많습니다. 이제까지 돈암장 이화장 시절에서 경무대 초창기에 얽힌 얘기를 들었는데 다음엔 또 다른 분한테서 계속 숨은 얘기를 듣기로 하겠습니다. 오늘은 박선생의 끝순서가 되겠는데 무슨 얘기를 들려주실지...

- 에. 그 참 이제까지 보고 듣고 느끼고 한 것은 저 자신으로서는 솔직하게 아무런 선입견 없이 이제까지 참 20여회에 걸쳐서 말씀드려왔어요. 오늘은 참 마직막의 이승만 박사와 타이프얘기를 마직막으로 말씀드릴까 합니다.

타이프라이타?

- 네. 타이프라이타. 그 이제 그 참 이승만... 이박사가 여기 환국하실적에도 타이프라이타 퍽 오래된 타이프라이타인데 아마 한 30년쯤 됐을꺼야. 그 타이프를 가지고 우리나라에 오셔가지고 또 중요한 말하자면 외교문서라던지 외국에 보낼 문서, 혹은 이제 국내에 있어서도 중요한 얘기는 반드시 그걸 갔다가 비서를 시키지 않고 손수 참 타이프를 치셨고, 뿐만 아니라 타이프를 치다가 어떤때는 여러번 그런 것을 제가 목격을 했습니다만, 경무대에서 밤을 세워가지고 철야해서 타이프를 쳤어요. 이래가지고 아침에 제가 출근해서 들어가면은 참 이렇게 눈이 퉁퉁 부어가지고 한 잠 안 주무셨으니까 말이지 이렇게 해가지고 어제 저녁에는 타이프 치느라 한 잠도 못 잤다. 하는 말씀을 하는 거를 종종 제가 봤어요.

이대통령은 과거에 여러가지 시책면이라든가 이런데서 자기의 생각을 종합하고 정리할 땐 꼭 영문타이프로다 치셨다 그런 얘기 있는데, 우리말로 여러가지를 필기하고 하는 것 보다도 영문으로 이렇게 정리하는게 더 쉬웠던 그런 모양이죠?

- 그렇지. 그렇게 이제 타이프틑 이제 영문 타이프고. 또 이제 외교문서 같은거는 외교문서니까.

당연히 그렇게 해야겠지. 아마 그게 이박사가 미국시절에 쭉 아마 어렸을..젊었을 때 부터 쓰던 거...

- 망명생활을 하실 때 부터 가지고 있던 타이프지.

환국해서 우리나라에 돌아 올 때도 결국 타이프라이타 하나 들고 왔다.

- 그렇지 그 타이프라이타지.

근데 그 사람마다 만년필같은 그 애지중지해서 오래 쓰고 그러는데. 외국사람의 경우는 타이프라이타가 그러기가 쉬운데 이작사도 결국 10여년 집권 시절에 쭉 한 타이프 라이타를 아마 썼다. 상당히 인상적인 얘기에요.

- 그 또 타이프를 처음부터 아끼셨고. 그 뭐 참 옛날 망명생활의 고된 그 추억이 깃든 그런 타이프니까.

그러면 타이프라이타 자체도 상당히 구식이었겠군.

- 그래. 구식이지. 악소리가 났지. 그 이제 그 이층에서 이박사가 타이프를 칠 때면 아래층에 우리가 있을적에 타이프 소리가 따그닥 따그닥 하는 소리가 타이프 소리가 들렸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요번에 그 참 그 타이프라이타에 얽힌 사연이지만은 환국하실때 그 타이프를 가지고 오셨고 4·19후에 요번에 참 하와이로 떠나시면서도 우산 두개와 그 날 비가 왔으니까. 우산 두 개와 그 타이프와 보스톤백 내게 고렇게 단출하게 참 하와이로 마지막 떠나셨는데. 그 때 놓지 않고 가져가신 타이프라이타가 역시 그 망명시절 또 대통령시절에 쓰던 그 정든 타이프 라이타였어요.

하와이 요즘 다녀온 분들 얘기들으니까 그 타이프라이타가 그대로 병실옆에 놔 있다고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 아마 그건 아마 버리지 않으실 거에요. 그래 지금 참 죽 참 돌이켜 옛날을 생각해 보면 말이지 그 이박사에 대해서 여러가지 말이 많고 또 곡해도 되는 점도 많았지만은 지금 이렇게 돌이켜 생각했을적에 확실히 그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큰 거목이었던거만은 이건 부인할 수가 없어.

이박사의 그 정치공과 이런것이 크게는 이제 우리나라 역사를 좌우한것에 이르렀는데 그 양반의 개인적인 면을 볼 때 그 양반이 그 말하자면 4·19라는 실패를 가져오게 된 이면에는 무억이 제일 큰 작용을 했을까 하는 건...

- 저가 보기에는 이 얘기가 결국 이박사와 자유당, 자유당을 에워싼 여러가지 얘기들이 이것이 앞으로 전적으로 규명되고 또 이것이 얘기가 일반에게 알려지는 단계까지 들어가야 완전히 그 분의 그 미스테이크라던지 잘못이라던지 혹은 또 잘한 거라던지 이 비극의 요소가 말이지 베일이 완전히 벗겨진다고 봐. 그러기 때문에 말기에 와서 자유당과 이박사 또 이제 자유당이 됐을적에 또 이기붕씨 또 박마리아씨 이러한 등등에 얽힌 얘기들이 언젠가는 이것이 마 적당한 시간이 되면은 이게 이제 밝혀지면은 완전히 그 어떻게 되서 참 이 4·19까지 일어나지 않으면 아니 될 정도로 까지 정치가 뭔가 그 독선에 흘렀는가 하는 그런거는 그걸 규명함으로 인해서 이제 그런게 나타나리라 보고 저 생각에는 이박사가 이제 독재다 우리 뭐 다 공공연하게 얘기하고 있잖아요. 근데 독재성도 물론 없는건 아니겠지만은 그 것보다는 원맨쉽이라 할까. 나 아니면 안된다는거. 이런 이제 그 생각이 또 이박사한테는 강했고 또 그렇게 강하게 된거는 제가 알기엔 그래요. 이박사가 딴 사람에게 맡겨가지고는 당신 자신이 하는 거보다는 이거는 못하게 된다. 이런 아마 확고한 신념이 깃들어 있어요. 그러니까 결국은 이제 그 참 후계자도 지명하지 못하고 또 후계자 될 만한 사람을 양성시켜주지도 못하고 결국 그와 같은 비극을 맞이하지 않았아요? 그러니까 이거는 이박사의 원맨쉽이라는거 이것이 아마 결정적으로 너무 강했다 하는 것은 인정안할 도리가 없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을 해요.

그건 뭐 우리 국민들도 다 그 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근데 이박사 하면 이제까지도 얘기 나왔지만 주위의 사람으로서는 프란체스카 여사라든가 또 이기붕씨라든가 또 박마리아여사 라든가 몇몇분들 또 자유당의 원로급이라고 그럴까요 간부급 분들. 이런 분들과의 관계 이런거에 이제 여러가지 문제가 나왔는데. 참 거기에서 무엇이 본질적으로 그러한 자유당의 비극을 가져왔나. 이것은 우리가 볼 적에는 아직까지도 뚜렷한 한마디로 표현된 거는 없었는데 뭐라고 그 표현이 될까 하는...

- 그렇지 그 표현중에서 가장 강하게 저한테 표현을 하라면은 그 이제 그 박마리아여사의 야망. 이것이 상당히 컷다 이거에요. 그러니까 이기붕씨라는 분은 제가 접한 이기붕씨 오랬동안 접했지만은 사람이 퍽 그...

온순. 온화하죠.

- 또 그렇고 그 사람이 그렇게까지 큰 대망을 꿈꾸는 말이야 그러한 위인이 아니됐는데 이 박마리아여사의 야망만은 이건 아주 컸어요. 그래서 저 생각에는 이거 뭐 참 고인이 된 분을 말이지 뭐라고 얘기하고 싶진 않지만은 그 분이 보다 더 겸손하게 박마리아씨가 말이지 겸손하게 대처를 해 줬던들 이박사의 비극은 사전에 방지할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전 가져요.

박선생님 그런 얘기는 말하자면 박마리아여사가 이기붕씨한테 너무 작용을 많이 한 거. 그런것이 이제 경무대까지 파급이 됐다.

- 그렇죠. 그러니까 그 때 그 참 이 일반에서는 서대문 경무대라고까지 얘길 했지않았어요?

하여튼 그 서대문 경무대 또 효자동 경무대 할꺼 없이 모두가 지난 얘기가 되고 말았는데 그 동안 박선생님 여러가지 말씀으로 지난날의 어떠한 뒷얘기를 통해서 참모습을 엿본것 같습니다.

- 네. 거 이제 그거보다도 장님들이 코끼리 다리 핧듯이 불과 참 제가 말씀드린거는 한 측면. 저의 하나의 그 본대로 들은대로 또 느낀 그대로의 일부분을 말씀드렸습니다.

바쁘신 중에서 시간을 많이 할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대단히 수고많았습니다. 고맙습니다.

《 지금까지 당시 경무대 초대 비서관을 지냈던 박용만씨와 동아일보 정치부장 신동준씨와의 얘기였습니다.

경무대의 비화를 마치겠습니다. 이제까지 22회에 걸친 경무대 비서였던 박용만씨와 동아일보 정치부장 신동준씨와의 얘기로 엮은 정계야화 첫 시리즈 경무대 비화는 오늘로 일단 끝 맺고 내일부터는 두번째 정계야화시리즈로 장택상씨의 지난날 재미있는 얘기를 신동준 동아일보 정치부장과의 대담으로 계속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

(입력일 : 2007.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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