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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정계야화
경무대 비화 - 제19회 싫어하는 부통령과 신문
경무대 비화
제19회 싫어하는 부통령과 신문
1965.02.05 방송
‘정계야화’는 65년 1월 4일부터 방송한 15분짜리 대담프로그램으로 70년 10월 5일부터 나간 다큐멘터리 드라마 ‘정계야화’의 원조격이다. 이 프로그램은 광복 20년과 6·25전쟁 15년을 맞아 기획한 것으로, 정계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자서전적인 회고담과 함께 정계의 뒷얘기를 들려줘 청취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 경무대 속에 숨은 얘기 오늘은 그 열아홉번째. 이박사가 싫어하는 부통령과 신문얘기를 들어봅니다. 대담에는 역시 경무재 비서였던 박용만씨와 동아일보 정치부장 신동준씨입니다. 》

- 이대통령이 좋아했던 사람은 뭐 이제까지도 얘기나왔지만, 싫어하는 살마 하면 어떤 사람을 끄낼 수 있을까?

- 그 뭐 싫어하는 사람이 여러 사람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봤을제 부통령있잖아요? 부통령에 대해가지고 이박사가 아마 크게 호감을 가지고 좋아한 분은 함태영선생 빼놓고 나서는 이시영, 초대 부통령 이시영 선생 또 김성수 선생, 장면 선생 아마 이 부통령 그 한 분에 대해서는 그렇게 좋은 아주 싫어했달까 그렇게 얘기해도 과언이 아닐거에요.

- 아마 이 양반이 독재적인 성격이라고 그럴까 강력한 리더십이라고 그럴까 이런 것이 아마 그런 그 부통령에 대한 그 견제라고 그럴까 또는 무시하는 그런 방향으로 나왔는지도 모르지.

- 근데 저 이 실지가 이 저 보면은 우리나라에 말이지 상원 하원 미국같이 상원 하원제가 되 있으면 부통령의 가치라던지 위치가 확립되겠는데 그렇질 못하고 하니까 자연히 이제 부통령은 결국 이박사를 돕는 말이지 그와같은 하나의 부수적인 존재밖에 안 됐었는데. 특히 이제 그 이박사가 부통령에 대한 생각은 악세사리적인 존재라 할까 이런 정도로 밖에 생각을 안 한거 같애. 그래서 처음에 이제 이시영선생이 부통령이 됐을 적에 우리가 뭐 여러번 참 그런 걸 겪었지만은 이시영선생이 몸이 불편하신지 않았어?

- 원랜 연로도 하시고.

- 연로하시고 말이야. 이시영부통령께서 경무대를 들어오신다 이랬을 제 비서들이 나가가지고 말이지 참 이 부축을 해가지고 대에는 양측에서 부축을 해가지고 이제 그 응접실로 모시면은 그저 이박사께선 이제 찾아오셨으니까 안 만나실순 없고 그래가지고 참 이 그 만나시는데 만나면 뭐 별반 딴 얘기란게 없고 그 땐 이시영선생님이 부통령하실적에 찾아오면은 늘 그 이제 술을 내놓았어요. 위스키 같은거. 그래 이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다가 이제 돌아가신다고 그래서 우리들이 나가가지고 이제 부축을 해서 차까지 이제 모시는데. 그래고 이제 그 부통령 이시영 부통령이 돌아가신 후에 이제 이박사는 어떻게 이제 그 생각을 하시냐 하면 "그, 그 시간 낭비했다고." 그 이제 면회해서 만나서 얘기하는 것을 쓸데없는 시간낭비로 밖에 그걸 인정을 안 했어.

- 아주 내놓고 그렇게 말하시고...

- 어어. 시간낭비했다. 또 특히 이제 또 못마땅한 건 이제 그 부통령이라 이래서 특혜가 있지 않겠어? 그럼 이제 비서실장이 있고 비서가 있고 뭐 이렇게 해서 또 부통령실로 해서 경비도 나가고 이러면 그거는 또 경비의 낭비다 하는 걸로 또 이제 생각을 했었고 말이지. 그러기 때문에 부통령에 대해서는 완전히 그러니까 참 뭐라할까 필요없는 말이지 그런 이제 그 걸로 밖에 인정을 안 한거 같애.

- 이박사에서 결국 부통령제가 실패한 셈이 되서 지금 없어진거 아녀요?

- 그렇지. 뭐 이렇게 하면는 이건 완전히 실패 안 할래야 실패 안 할 도리가 없고 참 대통령으로는 듣지 못하는 얘기를 부통령으로서도 환영하면 잘 들을 수 있지 않겠어? 그러면 그런것을 갖다가 반영을 했던들 부통령직은 좀 살아났을거고 또 일반국민의 여론이라든지 하는데는 오히려 더 밝을 수가 있었을거야.

하여튼 이대통령의 강한 성격 탓이라고 봐야 겠지.

- 으응. 그런게 많이 있지.

- 또 싫어한 사람이라고 그럴까 누가 있을까 또

- 그 뭐 그러다가 ... 싫어한 사람이라는 것이 뭐 개인적으로 지적할 수는 없는거지. 그리고 또 이 그 이 박사의 그 성격 가운데서 그 가장 이거는 유감 됐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은 말이야. 신문을 그 국내 신문 그 때 그 한국 언론계에서도 말썽이 많았지만은 신문에 대해서 아주 이 저 통 신문을 보지 않았어요. 그 때 이제 초대 그러니까 인제 공보 비서로서는 지금 이제 김광섭 씨, 그 분이 이제 그 공보담당 비서관이 됐는데 그 땐 그래도 아침마다 이제 그 여덟시 반이지 아홉시에 이제 경무대에서 출근 할 적에 여덟시 반에 이제 그 대통령과 만나가지고는 이제 그 신문에 난거 이걸 이제 쭉 보고를 했었어 그래도. 대게 큰 사건 같은거.

- 신문은 직접 가져가지 않고.

- 그 직접 보는 법은 없지. 국내 신문에 대해서는. 이래가지고는 그 저 김광섭 씨가 이제 보고를 하면 말이야. 정치가 잘됐다던지 이런거는 이제 들으면 좋아하시고 또 이제 뭐 잘못된 일이 있지 않겠어? 이런거를 얘기를 하게되면 말이야. 이건 아주 이 박사 께서도 성을 내셨단 말이야. 그래 되니까 그게 아마 그렇게 해 나오다가 얼마 안가가지고 아마 몇 년 후에는 그 완전히 그 이 국내 신문에 대해가지고의 기사라든지 하는건 통 알길이 없을 정도로 그건 아주 막아버렸을거야.

- 아, 그러면 뭐 하여튼 저 대통령이 신문 안 본다는건 인제 유명한 얘기가 됐는데.

- 그렇지. 유명하지.

- 그 저 간혹 얘기 들으면 그것도 번역을 해서 영어로다가 간추려가지고 뭐 적어갔다 보고했다고...

- 그건 아니고. 국내 신문에 대해서는 일체히 저 당신이 말이지 자신이 보는 법은 없었고, 이제 외국신문 여기에 대해서는 또 아주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그래가지고는 이 항상 미국에서 그 누가 보내는지는 모르지만은 외국 신문에 그 잘라가지고 한국에 관한 기사 이런거는 꼭 경무대로 왔었지. 이러면 이제 프란체스카 여사가 그걸 이제 모아가지고 대통령 한테 반드시 그걸 일러줬고, 이제 또 아주 정성을 들여가지고 스크랩 북에다가 붙여 놨었지. 그러니까 이제 외국에 신문에 대해가지고는 날카로운 이제 신경을 집중 하면서 국내 신문에 대해가지고는 이것을 갖다 일채 보지 않는 말이지 이와같은 그 이 모순을 범했다 이거야.

- 근데 그 일국의 통치자로서 국내에 일어나는 일 여러가지를 알기 위해서는 자기가 궁금해서라도 신문을 읽을만 한데 어찌 안 읽었을까?

- 글쎄. 그게 인제 참 결국 이제 국정에 어두워지는 말이지. 근본적인 하나의 그 이유의 하난데 국내 신문을 안 보고 국내 움직거림을 갖다가 안보니까 모르지 않겠어?

- 말로 밖에 들을 수 없지.

- 말로 밖에 들을 수 없으니까. 그 말이라는것도 말하자면 그 참 이 자유당 말기에 와가지고 말이지. 인의 장막으로 둘러 싸여 있을 적엔 그 말이라는 것이 무슨 가치가 있겠어. 각하 지당합니다 하는 말 밖에 더 듣겠느냐 이거야. 그니까 이 신문을 안 봤다는건 이 박사.. 내 생각에 제 생각에 이 박사가 국내 신문을 안보셨다 하는거는 결정적으로 이건 큰 하나의 그 마이너스라 할까 과오였다 하는걸로 이건 단정을 하는데 안 할 도리가 없어.

- 우리 그 추측인데 혹시 그 저 신문에 나는거 같은거에 대해서 이 박사가 여러가지 신경을 쓰면 혹 그 정치 하는데 무슨 그 장애가 있을까 해서 그 이 아까 말한 인의 장막 혹 비서나 뭐 이런 분들이 말이야. 신문에 나는건 다 거짓말이다 이거 믿을게 못 된다 그니까 볼 것도 없습니다 해가지고 아주 이 박사 한테 그런 고정관념을 준거 아닐까?

- 아니야. 그거는 그거는 저 이 초창기 부터 김광섭 씨가 그 보고 말 신문에 난 것을 갖다가 보고 드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8시 반 시간 와서 딱 정해가지고 그걸 반드시 보고 하도록 했었어요. 근데 이건 역시 그 당신의 성격이더군. 결국 이제 신문에 정치가 잘못된다 뭐가 잘못됐다 이런거를 들었을 적에는 앵그리 한다는 거 성을 낸다는 거 이건 역시 그 나이가 어눔 연로 하셔가지고 그런지 그건 모르지만은 좌우간 이 국내 여론에 대해서 퍽 그 무관심 했고 이걸 또 묵살하는 방향으로써 그건 당신 자신이 그와 같은 방향으로써 나갔었지. 그 무슨 주위에서 신문에 난건 거짓말 입니다. 하는 그와같은 그 일이라는건 있을 수도 없었지.

- 하여튼 그 때 소문으론 국내 실정에 어찌나 어두운지 무슨 쌀 값 이라든가 말이야 뭐 의복값 같은것도 모르고 그런거 뭐 신문에 물가 추세나 뭐 신문에 나는 그 여러가지 보면 다 알텐데.

- 신문 안 보면 그런거 모르지.

- 글쎄. 그 신문 안 보면 모른다는게 아마 그런데서 나왔을거야.

- 그니까 결국 이제 그 이 박사 이건 참 어떻게 돼가지고 국내 신문을 직접 안보시게 됐는지 안보셨는지 인건 저로서도 알수가 없지만은 하여튼 이거 하나만은 저 일국의 참 최고 통치자로서 말이지 대단한 큰그 미스였다고 생각을 해.

- 그 4·19 때 말하자면 학생들의 움직임 이라던가 또 민중의 그 생각, 이런거를 자기가 감독 못하신거 이런것도 결국 신문 못 본게 아마 큰 원인 이었다고 볼 수 있겠지.

- 그렇지. 근데 이제 그 이 박사의 또 하나 고집이 말이야. 그 왜 이 박사의 담화라든지 성면서 같은거 보면 `그리하얐으니` 하는 식으로 옛날에 그 쓰던 그 그런말 아니야?

- 그렇지.

- 근데 이거를 비서들이 말하자면 현대 말로 고치면 말이지 이거는 아주 싫어했다 이거야. 못 고치게 해. 그리고 니가 그렇게 유식하면 니 맘대로 하라고 오히려 성을 낼 정도로 말이지. 그러니까 저 이 박사가 말씀 하시는거는 그게 무슨 자던 간에 고대로 받아쓰고 고대로 발표를 해야지 그래서 자구 수정을 한다든지 그걸 현대말로 고친다든지 한다는건 이거는 용서가 안됐단 말이야.

- 그 소위 말하는 유시 라든가 가마물이라던가

- 옳지. 그래.

- 이 때. 하여튼 그 문장이 하여튼 말 시작하고 끝날 때 까지가 굉장히 길잖어.

- 길고 또 이제 뭐 무슨 소린지...

- 알아들을 수 없고. 이 대통령이 말하자면 그 지시하고 이런거는 오히려 그게 무슨 내용인지 잘 못 알아 듣는데 특색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근데 이제 그걸 뭐 또 해석 하느라고 이렇다 저렇다 해가지고 야단이었는데

- 맞어. 그런 그 자유당 때 그런 그 이 실례가 있지요. 근데 그 그리고 또 하나는 인제 그 이 박사 자신의 글의 고문 옛날 그 글 밖에는 몰랐으니까 신문이라는거는 그러니까 요새 이제 그 받침이 다르잖어? 그러니까 이 다르니까 이거 보기도 또 어려웠을거야. 그런 점도 없지않아 또 있었을거야. 그래서 왜

- 한글 파동

- 한글 파동 이라는 그 이 파동이 이루어 지고 하는 하나의 그 사건이 있었댔지만은 역시 그 이 박사가 봐 가지고 그 무슨 받침이 어떻게 돼가지고 이것이 밑으로 올 받침이 되는지 이걸 모르니까 그거 불편하기 짝이 없거든. 그러니까 그저 알아듣기 쉽도록 모든 글을 고쳐라 이래된게 한글 파동이 됐지.

- 자신이 알아듣기 쉽게.

- 결국 그 분의 그 강한 성격 탓이라고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 그 저 이 박사의 그 기왕 글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야. 이 박사가 인제 한시 같은거는 비교적 잘 일고 했는데 그 저 풍류라 그럴까 이 박사의 그 ....

(입력일 : 2007.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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