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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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정계야화
경무대 비화 - 제17회 족청과 대한 청년단
경무대 비화
제17회 족청과 대한 청년단
1965.02.03 방송
‘정계야화’는 65년 1월 4일부터 방송한 15분짜리 대담프로그램으로 70년 10월 5일부터 나간 다큐멘터리 드라마 ‘정계야화’의 원조격이다. 이 프로그램은 광복 20년과 6·25전쟁 15년을 맞아 기획한 것으로, 정계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자서전적인 회고담과 함께 정계의 뒷얘기를 들려줘 청취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 오늘도 경무대 주변얘기 그 열 일곱번째 족청과 대한청년단에 얽힌 숨은 얘기를 당시 경무대 비서였던 박용만씨와 동아일보 정치부장 신동준씨 대담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

초대 국무총리 이범석씨 하면 족청을 연상하게 되는 군요. 근데 그 저 족청 그 조선민족청년단 뭐 그 때는 대동청년단, 대한 청년단, 최근에는 거의 없어진 청년단이지만 해방 후 한창 말썽도 많았고 그랬는데. 그 족청 얘기서부터 오늘 시작해 보죠.

- 그러니까 이범석 장군이 1946년 6월달에 광복군과 같이 우리나라에 환국을 했지. 그래가지고 10월달에 그러니까 약 4개월 후인 10월달에 이제 민족 청년단이라는거를 결성을 해서 소위 그 이제 족청을 만들었었는데.

국가 지상. 민족 지상. 푸른 셔스. 뭐 이태리 그 때 그 검은셔스대 훅셔스대 뭐 그거 비슷한 인상을 준다고해서 파쇼다 뭐다 그랬는데

- 그 때 아마 그러한 비난을 많이 받았었죠. 비정치, 비군사 이렇게 해가지고. 근데 이제 족청을 만든 이제 이범석 장군이 그 후에 국무총리가 되지 않았어?

그 때 이제 누가 아마 제청을 했던가?

- 처음에 그러니까 국무총리로서는 이박사가 이제 이윤영씨, 조만석씨와 같이 조선민주당을 하던 이윤영씨를 했었는데. 국회에서 부결됐고. 그 다음에 이제 이범석 장군을 국무총리로서 추천한 사람은 그 때 이제 그 초창기 혼란하고 이러니까 스트롱맨이 되야 된다. 이렇게 해가지고 당시 외무부장관으로 감투가 바껴졌던 외무부장관 장택상씨하고 또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 받은 이인씨하고 이 두 분이 이범석 장군을 추천했다 하는 그런 얘기를 내 윤석오씨 한테 그 얘기를 들었는데..

해방전까지만 하더래도 아마 이 박사하고 이범석씨는 전혀 생면부지 아니었어?

- 그러니까 이제 서로 하와이와 이범석 장군은 중국에 있었고.

말만 들었겠구만.

- 말만 듣고 그거 했었는데. 역시 처음 대면하기는 두 분이 다 환국해 가지고 참 이제 대면을 했던 모양이야.

어쨌든 그 김성수 인촌선생이 총리가 된다 뭐 이런 얘기가 있다가 한민당이 싹 가시고 그냥 이범석씨가 나오는 바람에 깜짝 놀랬었지. 근데 그 이범석씨가 족청을 이끌고 나오다가 이제 중도에서 그만두게 됐는데 그 그만둔 경위..

- 그게 이제 그 내가 그 때 그 이 중앙청 대통령실에서 얘긴데. 그게 이제 1948년 그게 아마 11월 달의 일이였어. 어느날 이제 국무회의가 끝난 다음에 전부 다 딴 장관들이 나가고 이범석 국무총리를 불러 세워. 대통령이. 불러 세우더니 그 그 저 국무총리가 하고 있는 민족청년단인가 하는거. 그거 이 해산을 하던지 안 그럴것 같으면 국무총리를 내놓던지 둘 중에 어느 길을 택하라고 말이야. 아주 그 이박사가 화가 나셔 가지고 말이지 국무총리였던 그 이제 이범석 장군한테다가 호통을 치더군. 그래 가지고 이제 그 이범석 장군이 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이렇게 해가지고 그 이튿날인가 민족청년단 그 때 단장이 됐으니까. 그 해산명령을 내렸어.

그 때 그 족청이 그야말로 끈덕지게 버텼던걸로 알고 있는데.

- 그래가지고 해산명령은 내렸지만 그 밑의 사람들은 왜 민족청년단을 갖다가 애써서 만들어가지고 해산하겠느냐 우리는 못하겠다 이래가지고 다소 이제 그 옥신각신 여러가지로 트러블이 있었지.

민족청년단은 처음서부터 결국 이박사하고 이렇게 사이가 멀어진 채로 시작된 거 아니겠오?

- 그러니까 이박사와 아무런 관계없이 그러니까 이범석 장군이 독자적으로 자기의 청년단을 그 때 만들었던거지.

이박사는 짜게 생각했는 모양이야.

- 그런 모양...

근데 그 족청없어지기 전에 벌써 딴 청년단. 그러니까 이박사 직계 청년단을 만들려던 움직임이있었던거 아니야...

- 그게 이제 직계청년단이 아니라 이제 그 족청은 이제 그 이범석 장군이 직접 맹글은 거고 그 때 이제 청년단체가 아마 4~50개 가량 됐단 말이야. 그래서 이것을 갖다 통합을 시켜야 되겠는데 내가 이제 그 참 이 청년운동도 하고 학생운동도 해보고 이래서 그 어떻게 해서든지 이 청년단을 갖다가 통합을 시켜봤음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하루는 이 대통령께 건의를 했어요. 건의를 해가지고 각 청년단체 대표들을 한꺼번에 모아봤자 이제 그 통합이 어려울꺼고 이래서 이제 날짜를 정해가지고 한 청년단체에서 대표 세사람씩이 매일 교대로 말이지. 이렇게 해서 대통령과 면회를 시켰어. 그래가지고 각 청년단체 대표들이 전부 다 이제 대통령과 개별적으로 면회를 다 한 다음에. 이제 대통령과 만나니까 이제 우린 무조건 뭉치라 이러니까 뭉치겠습니다. 뭉치겠습니다. 전부 다 이제 대답이 그랬단 말이에요.
그래가지고는 이제 참 대한청년단을 만들기로 각 청년단체가 다 모여가지고 대한청년단을 만들기로 해가지고 이 대한청년단이 결성되기를 그러니까 1948년 12월달에 대한청년단이 결성이 됐는데. 이 때 이제 결성이 될 적에 그 때 준비위원장이 누구냐하면은 그 말썽많은 유진산씨가 그 준비위원장이 됐어. 그리고 이제 준비위원회가 어디 있었냐 하면 저 종로 3가에 지금은 불타버리고 없지만 명월관자리 거기에서 대한청년단 준비위원회가 있었단 말이야.
근데 한가지 이제 그 놀라운 일은 각 청년단체에서 그러니까 대한청년단을 만들면서 강령을 만드는데 각 청년단에서 추천해가지고 강령을 몇가지 이제 가져왔어. 근데 하루는 이제 대통령이 경무대에서 연필하고 종이하고 가지고 들어오라는 거야. 그래 이제 내가 연필하고 종이하고 가지고 들어갔단 말이야. 그러니까 이제 그 이박사가 앉아가지고 줄줄 그 일러. 구술을 하는데 그게 이제 대한청년단의 `우리는 청년이다. 심신을 연마하여 국가의 가능성이 되자. 또 이제 `우리는 청년이다. 이북동포와 합심하여 통일을 완수하자.` 또 이제 `우리는 청년이다. 박해분자를 숙청하고 세계평화를 보장하자` 이게 단숨에 줄줄 이르는걸 이제 내가 받아 썼단 말이야. 이걸 받아써 가지고 이제 당시 준비위원장인 유진산을 갔다 줬는데. 거 참 그 이박사의 뭐랄까. 한꺼번에 내리 이르는 강령. 이래가지고 제정된 건데. 그것참 그거 봤을적에 놀... 나로썬 놀랠 정도의 참 이 두뇌를 가지고 있다 하는 것을 느꼈었지.

미리 아마 준비를 하고 있었겠지.

- 준비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단숨에 구술을 한다는 것이 퍽 그 어려운 일이라고 느껴진 그게 있어.

그 때 그 저 뭐야 대한청년단 만들때만 하더라도 아까 말하다시피 막 혼란이 있고 이런 판이었는데 그 때 이제 유진산위원. 지금 이제 민정당 유진산 위원. 제명 된. 그 때 이제 유진산 위원이 만들라 그럴때 무슨 저 순조롭게 될 리도 없었을 텐데요. 어땠어 거?

- 그러니까 각 청년단체 대표들이 개별적으로 면회를 해가지고 전부 다가 뭉치겠다고 약속을 했으니까 그게 이제 그 순조롭게. 그거 이제 그렇게 한꺼번에 대표들을 불렀으면 안됐었지만은 순리적으로 개별적으로 했기 때문에 뭉치게 되었고. 그 때 이제 그 한가지 지금도 기억에 나오는 게 김두한씨. 이 분이 이제 그 대한청년단을 만들기 위해서 각 청년단체 대표들을 쭉 이 중앙청 제 2회의실에 불렀단 말이야. 내가 이제 김두한씨 옆에 가가지고 여보, 당신 저 이 이박사께 인사를 드리라고. 왜 이제 그 소리를 했냐 하면, 김두한씨가 그 때 이제 그 청년운동을 하면서 공산당인 전평간부들을 갖다가 여러 스무명을 죽였어. 아주 그 죽여버렸단 말이야. 이래가지고 이제 그 김두한씨가 미군정에서 사형을 언도받아 가지고 있었댔단 말이야. 그러자 이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이 되면서 사형이 면제가 되었어. 근데 면제 할 적에 사인을 이제 직접 이제 가지고 들어가지고 사인을 받았는데. 그래 이제 그 자기를 사형에 면제된 거에 대한 인사를 이박사한테 하라고 그러니까. 이 김두한씨가 걸작이야. 기냥 앞에 가더니 고개를 푹 숙이더니 "저 김두한입니다." 그러고는 "각하. 감사합니다." 이것 뿐이야.

원래 원래 그런 말투지.

- 어어. 그러니까 이제 이박사가 말이지 어깨를 이렇게 쓰다듬으면서 자네는 정말 참 이 잘못했으면은 죽을 뻔 했다고 하는 얘기를 하더군. 그러니까 이제 김두한씨는 그저 아까 얘기 했던 바와 같이 무뚝뚝하게 그저 그 얘기 뿐이야.

그 때 김두한씨가 대한청년단에 간부급으로...

- 그렇지. 그 후에 이제 대한청년단이 된 이후도 감찰대. 늘 이제 김두한씨는 그저 청년단체에서는 항상 감찰. 또 노동운동을 했을 적에도 맨 감찰. 그러니까 역시 주먹이 세고 하니까 항상 이제 그러한 직책엔 아마 적임이었고.

그런 결국 청년단체. 이것도 결국 나중엔 무야무야 되가지고 없어졌는데. 그 저 청년단하면 언제든지 일종의 테러라고 할까 이런거를 연상하기 쉬운데.

- 그게 이제 우리가 참 사회적으로 재평가 해줘야 될 것이 참말로 그 때 당시에 청년단체가 생겨가지고 자기의 논밭을 팔아가면서 그야말로 애국충정해서 청년운동을 했어. 그니까 그 때 당시에 딴 사람들은 참 돈벌이 한다 어쩐다 이랬을 적에 누가 그걸 뭐 좌익하고 말이지 생명을 내놓고 이렇게 싸워 온 사람들이고. 또 그런 사람들을 내중에 와가지고는 이제 그 심부장 말마따나 테러를 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비난 하는데. 그런 점에 있어선 우리가 공정하게 청년운동 한 사람들의 그 수고를 높이 평가 해줘야 한다고 난 그렇게 생각해.

어쨌든 역사적인 하나의 지금은 유물이 되고 말은 셈이지.

- 에. 헤헤

오늘은 우선 청년단얘긴 그 쯤 하고 요담에는 그 저 경무대하고 직접 관련된 얘기를 좀 들어보기로 합시다.

- 에. 그 그런 얘기로서 할 껀 우리가 이박사와 친척들. 이런 사람들과의 관계를 갖다가 얘기해 보면 재미나는 얘기가 또 나올 수 있으리라고 봐요.

(입력일 : 2007.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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