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야화’는 65년 1월 4일부터 방송한 15분짜리 대담프로그램으로 70년 10월 5일부터 나간 다큐멘터리 드라마 ‘정계야화’의 원조격이다. 이 프로그램은 광복 20년과 6·25전쟁 15년을 맞아 기획한 것으로, 정계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자서전적인 회고담과 함께 정계의 뒷얘기를 들려줘 청취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경무대에 얽히 각가지 비화 그 열 여섯번째. 전진한 장관과 막걸리 얘기를 오늘은 바로 당사자인 전진한 의원과 함께 박용만 초대 경무대 비서와 신동준 동아일보 정치부장 세 분의 정담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요전에 초대 내각 얘기 꺼내다가 전진한 장관 얘기가 나왔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도 오늘 저녁에 전의원 바로 종로구에서 나온 지금 민정당 위원이신 전진한 의원을 만나 뵈서 오늘 이 자리에 끌고 나왔어요. 그 때 초대 내각에 있어서 전진한 장관하면 참 서민적인 장관으로 예나 지금이나 참 일반에게 잘 알려져 있는데 그 땐 어땠어요? 장관도 계시지만.
- 참 머 그 때도 역시 아주 평이 좋으신 그런 참 초대 사회부 장관으로. 뿐만 아니라 전진한 장관은 그 세상에서 알기에는 장관이 되시기 전에 노동운동을 해서 장관이 된 분으로 이렇게 알고 있지만 실지에 있어서는 그 노총운동을 하시기 전에 여러 청년단체 그 때 아마 10여개의 청년 단체가 총 통합을 해서 그 때 대한독립촉성전국청년총연맹이라는걸 만들었어요. 그 때 위원장이 바로 전진한 선생이고 그 때 당시에 저는 조사부의 직을 맡아가지고 전진한 선생을 모시고 같이 일을 했었는데. 그래 이제 참 전진한 선생이 사회부 장관이 됐단 말이에요. 사회부 장관이 되셔 가지고 장관이 됐지만은 새로 양복을 해 입고 나올만한 처지가 아니었어요. 허허허
아니 지금도 보니까 셔츠가 떨어지셨는데...
- 전진한 장관이 참 이렇게 초대 사회부 장관을 해서 국무회의가 열려서 내가 그 잊지 못할 가장 인상깊은 건 말이야. 국무회의 있을 적에도 늘 전진한 선생 퍽 이렇게 서민층으로 지지가 많고 뿐만 아니라 행동 자체도 서민의 냄새가 푹신 푹신 나지요. 근데 국무회의가 있는데 전진한 선생이 아마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에 말이야 청진동 막걸리 골목집에 가셔 가지고 아마 막걸리를 자신 모양이야. 그래 가지고 수염에 막걸리가 붙어 있는 정도로 말이지. 이래 이제 국무회의에 나오셨다 이거야. 하루는 국무회의가 끝난 다음에 당시 대통령인 이박사가 날 좀 들어오라는 거야. 그래 내 드가니까 그 전진한 장관한테서 술내가 나는데 국무회의가 있을 적엔 술 좀 먹고 나오지 말라고 하라...하하하. 나 한테 그런 얘기를 해 준 적이 있어요. 그마만치 참 이 장관이 ... 말하자면 내가 장관이다 하는 말이야 내세우는 이런 면모라는 건 지금 장관이 여기 계시지만은 찾아 볼 수가 없고 그저 예나 지금이나 항상 그저 이렇게 대중의 ..과 더불어 말이지 살아 나온 분이라 하는 걸 이렇게 느끼죠.
그 저 그 때 국무회의 때는 뭐 말할 것 없고 매일 막거리를 자셨던 가요?
- 뭐 노동운동을 하기 때문에 결국은 저 이 뭐 노동자와 잘 섞이니까 그런 막걸리 먹을 기회가 많죠. 그래서 그 때는 지금은 뭐 술 대단히 삼가하지만 그 때는 또 젊은 때지 말하자면 한 마흔 다섯 이니까. 마흔 여덟이지 그 때. 그래서 어울리면 막걸리 잘 먹었습니다. 선천적으로 좋아해요. ... 멋이 있거든. 사실은 뭐 장관 될 분이 아니지요. 노동자 그 무슨... 그래서 기분이 말이죠 장관이라는 그런 기분이 안 나고. 또 내 항상 마음에 그 한거는 남북이 통일이 안 됐는데 말이야. 반쪽의 장관이라는게 뭐 장관인가 하는 그런 또 서글픈 생각이 났어요. 마음에 말이지. 남북통일되서 완전한 민족..가 완성이 됐으면 장관이니 잘난척이라도 하겠지만 이래놓고 장관이라니 마음에 말이야 어딘지 섭섭하고 좀 허전해서. ...
그래서 그 저 그 때 그런 말씀을 전 장관한테 이 박사의 말씀을 전하셨어요?
- 그렇죠. 그럼. 그래 이제 고 다음에 전 장관을 만나서 말이지. 그 국무회의 있을 적엔 술 잡수고 나오시지 마십시요. 그랬다가 또 하루는 걸작이야. 하루는 또 국무회의가 열렸는데 말이죠 일부러 내 앞에 전 장관이 오셔가지고는 입을 이렇게 갖다 대면서 말이야. 이봐 박비서 오늘 내 술 안먹었지. 이렇게 내한테 갖다 댄단 말이야. 그 때 냄새를 맡아보니 여전히 술내가 나....하하하
그래서 결국 끝내 약주를 안 하실 때는 없었구만요.
- 그러니까 장관을 그만두는 한일 있다 하더래도 내가 막걸리는 저 안 먹고는 안 되겠다는 거지.
그 때 결국 서너 너덧달인가 밖에 안 하셨지 아마...
- 근데 이제 그 내가 가장 아깝게 생각되는 것이 말이지 적어도 한 나라의 국무회의라 하더라도 이와 같이 서민의 풍채가 풍기는 말이야 그와 같은 참 이 서민의 냄새가 국무회의를 할 적에 풍풍 풍겼다는 거는 그 때 당시에 참 이 전진한 장관과 같은 서민 출신의 더군다나 이제 노동운동을 하고 청년운동을 하던 서민 출신의 장관이 참 장관직을 자리했다는 것이 퍽 그 이색적이고 또 인상이 깊었어요.
전 장관께서 그 때 어떻게 하다가 그만 두셨는지 그 경우 같은 걸 좀 얘기주세요.
- 제가 명색이 장관된적에 가결 할 때나 말이지 정부에서 상당히 저하고 의견이 안 맞는 이가 많았어요. 첫째는 허정씨하고 안 맞았었는데. 허정씨는 교통부 장관인데 그 교통부 내에다 노동단체를 단체권을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단 말이야. 원칙으로는 어느 나라든지 인정해야 되는건데 허정씨는 좀 완고한지 모르지만은 안 된다 이래가시고 그 동안 시비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사표를 낼라고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노동단체에서 싸워 달라고 해서 안 내고 있었는데 대한청년단 결당문제가 있었어요. 있을때 유진산씨가 준비위원장이 됐는데 그 때 그 내용은 참 밝힐 필요가 없지만 그 떄 윤치영씨가 내무 장관이거든 근데 이 양반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이 유진산씨를 그 때 뭐 각목을 팔아먹었니 이래가지고 그 때는요 청년을 운동을 하자면 자연이 그건 어디다 팔아먹어야 누가 돈 줍니다. 나도 많이 팔아먹었는데 말이죠. 하하하. 한데 이걸 지탄해가지고 이 사람을 구속할라고 하는데 대한청년단 결당하는것이 얼마 안 남았거든. 그래 진산씨가 우리집에 왔다가 붙들려 갔단 말이여.
바로 고 자리에서?
- 우리집에서. 우리집 안방에서 붙들려 갔거든. 그래 내가 이거 저 결국은 그 때 이제 뭐 여러가지 얘기가 많지만은 그 내가 직접 내무부에 가서 진산씨를 내올라 했는데 그 때 치안부국장이라는 사람이 대단히 태도가 불충하길래 내가 야단을 치고 그리고 뭐 그 다음 여러가지 말이 많지만은 결국 안되겠단 말이야. 그래 내 그 각의가 열렸는데 그 때 이 대통령이 날 더러 말이여 전 장관 그 때 갔던 사람 몇 사람을 파면했으니까 고만 참으라 이런단 말이여. 형식으로 한게 사정이 그게 아니거든.
치안국의 갔을때 불만을 털어 놓으셨구만?
- ...갔다와서 이 박사가 야단을 했어요. 나라의 기강이 찮다. 왜냐면 대통령이 새파랗게 내 감기고 말이여. 명색이 일개 장관이라는 사람을 치안부국장 치안국 경찰이 대한 태도가 그거 안 된다 이 말이여. 그래 이 사람들을 이래 뒀다간 구데타한다. 경무대 당신 못 있어 이 말이야. 이랬더니 이 양반이 화가 나가지고 말이야 윤치영이를 파면한다 하고 그 때 야단났지. 온통 뭐 치안국장이하 전부 가두라 이러다가 또 내중이 검찰총장 불러서 전부 가두라카다가 내중이 윤치영이 불러다가 파면이라 하다가 그 다음날 가니까 말이여 참으로 날 구박하더란 말이여.
거꾸로 됐구만요. 어떻게 된거에요 그래.
- 내가 말이여. 그 때 사표를 써가지고 있었거든. 나는 그만두고 말이여. 장관이런거는 말이여 돈 있고 세도 있고 양반하는게. 나 상놈 아니요. 나 노동자요. 장관이 뭐요. 대통령이 실수를 말이여.. 지금 대통령 권위가 안 서는 거는 이런 사람을 장관을 해서 경찰이 무시하고 이런단 말이여. 그러니 양반을 갖다 쓰기라. 나 상놈이라고. 이러니까 막 이양반이 따라나오면서 안 된다고...그래가지고 말이지. 그래 나온 뒤에 제가 말이지 친구 뒤에 숨었지. 그래 몇일 찾고 야단이라 숨어있다가 국회열리자 나와서 내가 국회에서 연설하고 말이야 그 때 이래선 뭐 독재국가 된다 말이여 이 나라는 대한민국 헌법대로 국민의 국가가 된다는 이상에 내가 나왔는데 나와보니 이 나라는 독재국가가 돼. 경찰국가 이건 틀림없다. 이래 연설을 했죠. 그래가지고 그 때...
그 후로 아마 전 장관께서 벼슬한 일은 통 없으시죠?
- 그 다음에는 이박사하고 좌익이니 뭐니 갈라져가지고 말이여 적대주의 되 가지고 고생 많이 했습니다. 하하하.
- 근데 저 이 내 일전에 윤석우씨를 만났어요. 만나가지고 얘길 들으니까 참 이 전 장관을 추천한 분이 유진산씨가 전 장관을 추천을 했다 이럽디다.
- 뭐 진산이는 그 때 청년운동 하는 사람들. 노동운동 하는 사람들을 많이 알았어요.
- 아주 가까웠던 모양이에요.
- 진산은 저 해방직후에 청년운동 할 때 같이 부위원장으로 나는 위원장으로 같이 했고. 쭉 계속해서 ... 운명을 같이 해 왔어요.
지금도 상당히 불가분의..
- 그렇죠. 그 사람하고 나하곤 뭐 인연이 끊을 수 없지.
어쨌든 처음 정부수립 되가지고 초대 내각은 아마 여러가지 점에서 질서도 안 잡히고 모든게 엉망이었을 거에요. 근데 그런 가운데 어때요? 이범석 총리 그 분과 각 각료들과의 관계 같은건 어떻게 순조로웠는지 모르겠어요.
- 그건 뭐 직접 전 장관님 한테 물어 봅시다.
- 저 그만하면 원만히 돼 갔죠. 근데 거기서 내가 제일 말썽을 일으켰지. 하하하
- 아니 그런게 아니고. 그 때 이제 그 초대 내각이라는게 참 이 어떤 정파에 휩쓸리지 않고 초당파적이다 이래서 참 거 심지어는 좌익하던 조봉암씨도 그걸하고 말이지. 전 장관도 그렇고. 이렇게 했을적에 이범석씨가 이제 국무총리로 있지 않았어? 그러니까 이제 이범석씨의 얘기가 역시 요 다음번엔 아마 좀 얘기 좀 되리라고 생각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