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무대 속에 숨었던 옛 ... 그 열 다섯번째 대담. 민성일과 신성모 장관에 엉킨 사연을 경무대 비서관이었던 박용만씨와 동아일보 정치부장 신동준씨의 이 얘기 저 얘기로 들어봅니다. 》
내무부 장관하면 말이에요. 그 해방이루 20년 동안 오늘날까지 제일 많이 바뀐게 내무부 장관 자리거든. 그 초대 내무부장관도 이내 그냥 윤치영씨 요즘에 얘기 나왔던 바껴가지고 신성모씨 됐는데, 그 어떻게 되서 이제 그 신성모씨 별안간에 등장했는지 말이에요.
- 신성모씨 장관 얘기하고 민성일이라는 그 인민의 소리를 듣는 날.
고 인연이 있나?
- 인제 인연이 있는데. 내가 이제 대통령 비서가 돼 가지고 처음에 그 이제 느낀거는 어떻게 하든지 간에 대통령 한테 이 인민의 소리를 늘 들을 수 있고 국민의 여론을 항상 가깝게 하고 또 서민층과고 가깝게 지내는 그야말로 백성의 대통령으로서 자격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이래 느껴가지고
민의를 듣자?
- 응. 이래가지고 사실은 매 목요일날 말이지 오후 2시에서 5시까지를 대통령르 면회오는 사람은 그것이 지게꾼이든 혹은 거지든 누구를 막론하고 전부 다 경무대에서 면회를 시켰어요. 그래서 민성일이라는걸 대통령께 내가 건의를 해가지고 참이 목요일날을 민성일로 정해가지고 늘 그것을 했었는데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어요. 어떤 노판데 말이야 노파가 이제 허름한 옷을 입고 경무대를 들어왔어. 들어와 가지고 이박사를 이렇게 보더니 대뜸 손을 말이지 두 손으로 이렇게 이박사 손을 잡더니 말이야 "아이구, 저 대통령님 우리 아들 좀 데러오도록 해주소" 이래. 순 경상도 말이더구만. 그러니까 이제 대통령께서 "그 아들이 누구냐"고 그러니까 그 우리 아들이 신성모라고 그래 그러니까 이박사가 한창 이래 생각하다가 "어~캡틴 신 캡틴 신" 그런단 말이야. 그러면서 노파의 두 손을 갖다 꼭 잡으면서 캡틴 신은 내가 곧 오라고 그래서 곧 올꺼라고 안심하라고 말이지. 그러더군. 그래서 나는 그 때 옆에 섰다가 말이지 세상에 캡틴신이라는 사람이 누군가 그래 이제 그 때 나는 전연 뭐 캡틴 신은 몰랐지.
신성모씨는 그 때 어디있었는데..
- 신성모씨는 영국서 일등 선장이야. 그래서 일제시대때 말이야 캡틴 신 하면은 용맹을 날렸데. 선장으로서는 아주 그 참 세계적은 선장이었던 모양이야. 그래서 이제 캡틴 신이 곧 온다. 이래고 이제 얼마 후에 키가 땅땅하고 말이제 거센 파도와 태양에 그슬려 가지고 말이야 얼굴이 구리빛같은 사람이 입을 착 이렇게 물고 말이야 그런 사람이 하나 나타나 바로 그 사람이 신성모야. 마도로르 신이지. 그래 이제 신성모씨의 인상은 그 때 보니까 역시 그 마도로스 같은 키가 땅땅하고 입을 이렇게 다물었을제 한일자로 이렇게 그래서 과연 의지가 굳은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했다는. 그래 신성모씨가 들어와 가지고 몇일 후에 얼마 안되가지고 그러니까 1948년 12월 말 경에 말이지 윤치영씨 내무부장관하고 장택상씨 그 외무부장관 또 사회부장관 전진한씨 그 때 상공부 장관 임영신씨 이 한꺼번에 다 바껴졌어요.
조각한지 몇 달. 한 서너달밖에 안 됐을...
- 그러니까 7월달에 취임해가지고 12월달이니까 불과 몇 달. 그래가지고 이제 내무부장관 후임으로 신성모씨가 내무부장관이 됐지.
그 요전에 얘기했던 윤치영 내무하고 장택상 외무 트러블 이게 원인이 됐겠구만.
- 그렇지 이 바껴진게 그 두 장관은 자리가 바껴졌다 이래가지곤 말이야. 국무회의 석상에서도 서로 얘기를 안 할 정도야. 이래서 그 대통령이 당시 대통령은 그 이 두 장관이 말도 안하고 싸우는 바람에 말이야. 참 그 애를 태운걸로 내가 알고 있어요.
골치깨나 썩였...
골치 썩였지. 말하자면. 서로 아껴주는 사람인데. 그 이제 그 얘기가 참 신성모씨가 돌아오자 국내 더군다나 내무부장관이라는 자리에 그 신성모씨를 앉혔단 말이야. 그러기 때문에 역시 국내 사정에는 아주 어둡던 사람 항상 이 참 파도와 싸우던 신성모씨 이 캡틴을 갖다가 내무부장고나은 시켰는데 내가 알기엔 내무부 장고나 신성모로써는 큰 훌륭한 일들을 업적을 남긴 내무부장관으로는 생각질 않지.
누가 누가 밀었을까?
- 그 때 이제 그 신성모씨를 주선한 사람은 말이지 이박사께 건의한 사람은 그 때 당시 내가 알기엔 국방부 국무총리로 있던 이범석장군이 적극적으로 선성모씨의 귀국을 주선했다고 하는 얘기고. 그걸 그 장시에 한국민주당의 중진 간부들도 신성모씨가 국내 들어오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했다는 얘기를 내가 듣고 있어요.
이박사도 신성모씨를 개인적으로 알았...
- 개인적으로 알았지. 그리고 또 신성모씨 이랳을 적에 말이야 이박사의 최후까지 총애를 받던 사람이 신성모씨하고 이기붕씨 이 두사람은 끝끝내 최후까지 죽을때까지 이박사의 총애을 받았던 사람으로 내가 알고 있어요. 과거에 이박사의 총애를 받았던 사람이야 우리나라에는 참 많지만은 참 마지막까지 이렇게 총애를 받았던 사람은 이 두 신성모씨와 이기붕씨라 이렇게 생각하는데.
이박사 하여튼 변덕이 심하니까.
- 그 변덕이 심한데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총애를 받았다는 것이 하나의 기적같은 일인데...
무슨 무기가 있었을까.
- 근데 그 내가 이제 얘기를 들었는데 말이야. 신성모씨의 그 때 별명이 항간에서는 뭐라고 얘기 했냐면은 그 낙루장관이라 그랬었어.
낙루장관이란 말인 그 때 나온 말이지...
- 그렇지. 이제 낙루장관이 어떤 얘긴고 하니 이박사 앞에서 끄떡하면 주먹만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참회랄까. 눈물을 잘 흘리는 장관이었다고 그 때 신성모씨 얘기 했었지.
하여튼 정치가 치고 눈물 안 흘리는 정치가가 없으니까.
- 정치가만 자꾸 그래 꽂아가지고 얘기 할게 아니라.
하여튼 정치가하면 과장 아니면 정치가 안되니까 뭐 또 할 수 없겠지뭐.
- 근데 이제 그렇게 신성모장관이 낙루장관이란 별명을 들을 만치 참 이박사한테는 비위를 잘 맞춘 모양인데 또 하나의 이 사람의 기적이 있어요. 그건 뭐냐하면 참 이 신성모씨 같이 내무부장관을 지낸다 국방부장관은 지내 참 국무총리 서리를 하지 않았소? 이렇게 까지 참 부귀영화에 최첨단을 걸은 분인데 돌아갈 때 까지 자기 집 한 채가 없었어. 말하자면 사역하는 이 문제. 이것만은 아두철미 청렴했던 모양이야. 그러니까 청빈했다는거. 참 집 한 채도 없이 여러 장관은 지내고 부귀영화를 누리면서도 자기 집 한 채 가지지 않을 정도의 자기 개인에 대해서는 청렴했단 말이지. 이것이 역시 이박사에게 인정된 말이야 하나의 그걸로 보고. 또 하나는 이제 이박사의 성격을 볼것 같으면 이런게 있어요. 이박사 거 참 잘 노해요. 성을 잘 내. 그러니까 이 참 얼마전에 몇일전에 돌아간 윈스턴 처칠의 유명한 말을 빌린다면 `잘 노하는 자는 또한 사랑에도 강하다` 이런 참 이 명언을 남겼는데 말이지. 그 이박사도 역시 노하는 건 참 퍽 잘 노했단 말이야. 그러니까 역시 노하는 자는 사랑에도 강했다 이러는데 이 사랑이라는 거는 신성모씨나 이기붕씨에 대해서는 참 이 지극한 사랑 강했다 하는 걸로 나는 보지.
그 이제 신성모씨가 상당히 청빈했다 그러는데 아마 영국의 일들 선장 쯤 됐으면 상당히 부유한 형편이고 말이지 보수도 많았을텐데. 어머니가 찾아왔을 때 같은 때 보면 상당히 허름한 차림으로 왔다는거 봐도 이제 그 떄 부터 성격이..
- 성격이. 그래가지고 신성모씨가 국내에 오셔가지고 그렇게 역대 장관을 귀중한 자리를 많이 하면서도 자기 친척이라고는 한 사람 돌본 사람이 없다는 거야. 그 때 자기 어머니가 경무대 찾아왔는데 그야말로 경상도 빈촌에 있는 말이지 촌부야. 옷도 그 때 무명 옷을 입었던가? 그 정도의 옷을 입고 소박하더군.
설마 누가 뒤에서 노파 자당께 말이야 찾아가 보라고 공작한건 아니였겠지.
- 그 저 자기 아들을 말이지...
정말 보고 싶어서 탄원하러 갔는지도 모르지...
- 탄원하러 왔으니까 이박사 손목을 잡고 그렇게 탄원을 했던거지.
그래도 신성모씨가 내무부장관으로서 뭐 상당히 활약은 하고 그랬지만 국방부 장관으로 있을때 사건도 많았고 역시 바다에 있던 사람이 육지에 올라오니까 잘 안됐던 모양이야.
- 그 저 신성모씨가 그 때 참 이 내무부장관 뿐만 아니라 대학청년단을 만들면서 바로 또 초대 단장까지 지내지 않았소? 그 때문에 이 분이 또 국방부 장관을 했다 국무총리 서리를 했다 이러지만 혁혁한 공적은 우리나라에 남기진 못했어. 그러니까 이건 역시 바다에서 노는 사람은 역시 바다에서 놀아야지 바다에 놀아야지. 바다에 노는 사람이 육지에 올라온것이 잘못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 때가 많아요.
요즘 5·16 후에 상아탑에서 말이야 학원에서 많이 튀쳐나와서 이제 정계나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 옳지. 그래 가지고 시행착오를 일으켜 가지고 요모양 요꼴 만드는 말이야. 그거와 비슷한 얘기야.
너무 야당소리만 내지 마시고... 근데 그저 딴 장관얘기 또 들어 볼 수 있을까?
- 그 때 또 하난 특색있는 장관이 전진한장관 사회부 장관 참이 텁텁한 장관으로서 참 이 재미나는 얘기가 또 있어요.
전진한 장관 요즘 민정당.... 그 얘기 또 좀 들어봅시다.
- 전진한 장관얘기는 막걸리와 전진한 장관 제목을 그렇게 붙여가지고 요 다음번에 한번...
요즘도 여전히 무교동 다니더구만.
- 그렇지. 막걸리꾼. 막걸리 장관이거든 이 전전한이가.
그 때도 무슨 막걸리 얘기가...
- 네. 있죠.
그럽시다. 그러면 저 전진한 장관 하여튼 서민장관이었고 그 후론 요즘은 참 장관하면 빠릿빠릿하고 말이지 뭐 저 쪽 뽑은 장관인데 아마 전무후무 였을거에요. 그 저 텁텁한 전장관.
- 자우튼 국무회의 석상에서 막걸리 냄새를 풍긴 장관으로선 아마 역대 장관으로선 전진한 장관밖에 없었을거요. 그마만치 전진한 장관은 그야말로 서민. 또 나오기도 서민에서 나왔고 또 자라기도 서민에서 자랐고 또 장관질 할적에도 서민 품목 그대로의 장관이었으니까. 요다음번에는 막걸리와 전진한 장관 그런 타이틀을 가지고 또 얘기를 해보도록 합니다.
(입력일 : 2007.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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