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경무대에 얽힌 비화 그 열네번째 붉은 장관 조봉암과 관사에 얽힌 에피소드를 초대 경무대 비서관이었던 박용만씨와 동아일보 정치부장 신동준씨의 주고 받는 얘기로 들어보겠습니다.》
초대 내각이 그 조봉암씨 그 치가 공산당이었는데 그 사람이 대뜸 등장해서 그 때 깜짝 놀랬는데 그 어떻게 해서 그 때만 하더래도 격심한 대결을 했던 좌익이 대뜸 그렇게 됐어요? 궁금해요.
- 그 때 조각에 참여했던 말이지 윤서고 비서로 부터 내가 그 얘길 들었는데 그 때 이박사가 시간이 있고 이렇게 한가할 적에는 옛날 크라이슬러 자동차, 구식 자동차를 타고 남산 드라이브를 자주 했던가봐. 근데 이제 하루는 윤서고씨가 이박사를 모시고 이렇게 남산으로 드라이브를 하는데 말이야 그 때 조봉암씨가 공산당 인천시당 위원장 아니였쇼? 그랬다가 이제 참 공산당을 탈당하면서 `삼천만 동포에 고함`이란 제목의 팜플렛을 갔다가 ...
조봉암씨가 좌익전향 제1호...
- 그렇지 전향 제1호지... 그래가지고 `3천만 동포에 고함`이란 팜플렛을 윤서고씨가 마침 그 때 의식적으로가 아니라 볼라고 포켓에 넣어가지고 이박사와 같이 탓다는 거야. 차를. 그래 이제 이박사가 차를 타서 윤서고씨 옆을 이래 보니까 포켓에서 뭐가 이렇게 팜플렛이 하나 나왔있거든? 그래서 이제 이박사가 윤서고씨 포켓에서 팜플렛을 끄집어냈데. "이건 뭐야?"하면서 말이야. 그래 이제 끄집어 내서 이래 보니까 `3천만 동포에 고함`이러고 `조봉암`저 이래 놨거든, 그래 이제 이박사가 윤서고씨한테 그걸 물었데. 내용이 뭐냐고. 그래 이제 내용이 어쩌고 저쩌고 이건 좌익과 우익이 합쳐가 ..해야 나라가 잘 된다. 그런 이제 서론을 썼다. 하는 내용을 얘기를 하니까 그 때 이제 차중에서 이박사가 그거는 사실이라고 우리나라의 이상인데 지금 현세로 봐서는 그렇게 좌우가 합작돼가지고 통일정부를 세운다는게 어렵다. 하는 그 때 이박사의 소견을 얘기하더라는 거에요. 그래가지고는 우선 윤서고씨의 팜플렛으로 인해서 그래 이제 조봉암이라는 이름 석자를 기억을 했고. 그 후에 이제 제현국회가 되가지고 이박사가 의장이 되지 않았소? 그 때 이제 조봉암씨가 역시 제현위원이거든, 근데 이박사가 국회서 사회를 할 적에 먼가 하나 어떤 문제를 가지고 조봉암씨가 의장에 대해서 발언을 얻어가지고 한 그 발언이 참 이박사 마음에 맞는 발언을 했던 모양이야. 그래서 이박사가 사회를 하다 말고 내려가서 "very good"이라고 조봉암씨의 등을 치고 좋아했다는 일이 있어요. 그래가지고 조봉암씨에 대한 인식이 말이지 이박사가 아주 그 좋게 봤단 말이야. 사람 똑똑한 사람으로. 이래가지고 거 참 농림부장관으로서 이박사가 이건 조봉암씨는 이박사가 직접 그 셀렉션했단는거야 장관으로 임명을 했다는 거야.
하여튼 이박사는 보면 그 후에도 쭉 그랬지만 어떤때 그 아주 무슨 별다른 인연 없다가도 누구하나 좋게만 보면 확확 끌어들이는 그런... 물론 짜르기도 잘 하지만.
- 그래가지고 조봉암이는 자기도 생각지 않던 그런 초대 농림부장관 자리에 이제...
아마 공산당에서 전향할 때 같은 때야 설마 그런 장관 그런건 꿈에도 안 꿨겠지만 여하튼 그 사람 조봉암씨 하면 말이지 날카롭고 생김부터 그 때 국회발언 같은거 들어 봤어도 굉장히 예리한 인상 주더구만.
- 근데 이제 조봉암이를 만나 보니까 말이야 첫인상이 사람이 예전에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했다 하는 사람으로 봐서 그런지 모르지만 인상적이고, 또 하나는 손이 말이지 이제 손을 이렇게 짤렸어 보믄 말이지 일제시대 고문당할때 손을 짤렸다는 그걸 봤을 적엔 퍽 그 뭐라할까 쇼크를 보는 사람한테 주고...
아마 이박사도 그런 점에서 말이야. 그 사람 역시 혁명투사 였으니까 이박사에도 과거에 모진 옥고 같은걸 겪지 않았어요..
- 근데 이제 이박사는 그때 이제 초당파적으로 총망라해서 참 이 좌우 이렇게 망라했고 또 하나는 그때 이제 국무총리로 이북출신인 이운영씨를 끝끝내 국무총리를 하고 싶은 생각이 있지 않았었오? 그러니까 이제 이북동포와 제휴하면 말이지 이와같은 초당파 내각을 만든다 하는 하나의 이상 이런게 아마 작용했던것 같고 근데 이제 조봉암씨 얘기가 나왔는데 내가 봤을 때 조봉암씨가 일평생을 바쳐서 좌익 공산당 운동을 했다는 그야말로 이 나라의 무산대중을 위해서 싸웠다 하는 사람인데 실지 그 사람이 겉과 실지 행동과는 말이야 그 차이가 굉장히 있는 걸 내가 봤어.
어떤 점에서...
- 내가 직접 당한 얘긴데 지금 이동원 외무부 장관이 쓰고 있는 집 있잖어 순화동에.
옛날 부통령 관저.
- 그렇지. 장면 부통령씨가 쓴 관사 말이야. 그게 실은 해방전에 이께다 경기도 지사가 쓰던 관사인데. 그래 이제 내가 대통령 비서가 되면서 그 집을 내가 계약을 해가지고 내가 있던 집이에요. 그게.
경무대 비서관 압력으로 했구만...
- 어때요. 압력이 아니지. 그런건 곤라한 얘기고. 그 때 이제 그 집이 합법적으로 내가 계약을 해가지고 내가 젤 먼저 쓰던 집이에요. 그래 이제 처음에 들어가니까...
처음부터 경무대 비서관 당당하구만. 세도가..
- 세도야 부릴라면 부릴수가 있었지. 그 집이 이제 내가 쓰기 전에 무슨 집이 됐냐 하면 미군의 DH dependent house라고 말하자면 가족들의... DH 집에 됐는데. 들어가니까 이제 하도 집에 허술하고 지금도 이제 좋은 집이 아니에요.
미국사람이 썼는데도 그럴까?
- 네. 아주 허술하고 말이야 거 뭐 수리하나 안 하고 그냥 그대로 있어 가지고 말이야 집이 형편없어. 그래서 내가 들어가면서 내 따우는 내 돈을 많이 내 가지고 그 집을 깨끗이 수리를 했단 말이야.
돈 많았겠오. 그 때.
- 뭐 돈 많어. 돈은 없었지만은... 수리를 했는데 하루는 난데없이 조봉암씨의 비서실장 이라는 이현걸이라고 역시 그 좌익이 됐는데... 이 친구가 비서들을 거느리고 다섯 사람이 그 집을 들여 닥쳤어요. 그래가지고는 덮어 놓고 문을 열고 말이지 삐꿈삐꿈 다 이렇게 검사를 한다 말이야. 왜 그러냐하니까 말이야. 농림부장관 관사로 지정됐다 말이야. 그 때 농림부장관이 조봉암씬데 이제 지정됐다하면서 몇일있더라니까 조봉암씨가 사람을 데리고 나타났어. 나타나더니 새로 이제 내가 수리하느라고 페인트칠을 쭉 했단 말이야. 관사에. 근데 조봉암씨가 오더니 이 페인트가 자기 색깔에 맞지 않는다 이거야. 그렇다고 해서 인부를 수십 명을 들여가지고 말이지 유리조각으로 새로 칠해 논 페이트를 말이지 전부다 깍아. 그래가지곤 그 참 새로 자기 마음에 맞는 페인트 칠을 하고 말이야. 이런 그 광경을 봤을적에 나중에 그 관사 비용을 공금을 유용해가지고 막대하게 썼다 이래가지고 그래서 이제 조봉암씨가 농림부장관 자리에서 모가지가 잘려 나갔는데 말이지
그러니까 그 저 박부장은 순순히 내주게 됐나요? 그 집을?
- 그러니까 그 때 이제 안 내줄라고 하다가 그 때 이제 이범석씨가 국무총리 아니됐소? 그래 이제 내가 국무총리한테 항의를 했지. 항의를 하니까 그 집은 일단 농림부장관 관사로 지정됐으니까 그 집은 비워주면 딴 집을 하나 주겠다 이래가지고 비워주기로 내가 결정 했었지. 그래가지고 참 이 그 막대한 관사 수리비용을 공금으로 유용해가지고 조봉암씨가 그 때 농림부 장관에서.. 감찰위원회서 적발이 돼가지고 파면됐어.
아 바로 그 관사건 때문에?
- 그러지 관사사건으로.
그러고 보믄...
- 그런걸 봤을적에 이 조봉암이라는 사람은 겉과 속이 난 다른 사람이다. 이렇게 봤었고. 또 하나는 이 사람 조봉암씨의 취미가 말이야 굉장히 귀족 취미를 가지고 있었어요. 어떤 하나의 예를 들자면은 술좌석에 가잖오 그러면 전라도 유명한 북 잘치고 장구 잘 치는 이런 일류 기생들하고 북을 치고 장구를 치고 이래 말이지 참 고짜배기 노래를 말이야 읇으며서 술을 먹는 그런 참 귀족 취미를 가지고 있어요. 적어도 이 나라의 무산 대중을 위해서 한다는 이 사람이 말이야 그와 같은 귀족취미에다가 페인트 색깔이 자기 마음에 안 맞는다 이래 가지고 그 좋은 집에 칠해논 색깔을 말이지 전부다 인부를 수십명씩 들여 가지고 껍데기를 벗기는 취미라든지 이걸 봤을 적에 지금 난 그렇게 봐요. 조봉암씨는 자기 조봉암씨 실력 이상으로 일반 대중에게 평가되고 있지 않는가 이런 생각이 들어...
공산주의 운동도 일종의 정치운동인데 예난 지나 지금보면 정치가라는 사람은 겉하고 속 다르긴 뭐 박부장 자신도 아마... 아이 그런데 조봉암씨에 대해선 하여튼 얘기거리가 많아...
- 그런데 한가지 놀랜 건 말이야 내가 5·16후에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말이야 5·16후에 덮어 놓고 막 잡아 넣지 않았어? 그 덕택에 내가 참 형무소 생활을 했는데 서대문형무소에 떡 들어가니까 그 아침마다 서대문 형무소에는 아침 일찍이래면 말이야. 이상한 새야. 새들이 많이 날아와서 찝적거려.
참새?
- 참새 아냐. 소리도 이상한 샌데. 그 이제 그 잡범들이 하는 얘기가 조봉암씨가 여기에 서대문 형무소에 갇혀 있을 적에 자기 밥을 안 먹고 콩을 골라가지고 언제든지 새를 먹여살린다 이거야 조봉암씨가 사형집행 될 때까지. 그래서 그 새가 조봉암 새라는거야.
특정한 새를?
- 옳지. 특정한 새를. 그래 가지고 그 형무소 안에서. 지금도 그래요. 서대문 형무소 안에서의 조봉암이의 인기라는 건 이건 절대적이야. 말하자면 신격화야.
의례 그런 인물 중엔 전설이 따르게 마련이죠.
- 그래서 지금도 이제 서대문 형무소엔. 내 있을 적엔 그랬어. 새가 아침에 날아와서 짹짹 거리면 잡범들 죄수들이 말이야 바깥을 내다보면서 말이야. 아 저 조봉암이 새가 왔다. 조봉암씨가 없으니까 대신 내가 콩을 준다 하면서 그 이제 그 밥에서 콩을 골라 가지고 유리창 바깥에다가 콩을 던져주고 그런 그 일을 내가 목격을 했고. 나도 또 새에 콩 좀 주고 말이야.
의례 그런데선 참 무료하고 그러니까 얘깃거리가 나오게 마련이지. 자 그럼 초대 장관들 말고 또 딴 양반얘기 누구 있을까?
- 그 이제 또 하나 이색적인 장관은 캡틴 신. 배 타던 선장 신성모씨 그 얘기를 하면 또 재밌는 얘기가 나올것 같...
그럽시다.
제13회 안호상박사의 행운 ◀ ▶ 제15회 민성일과 신성모 장관 (입력일 : 2007.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