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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정계야화
경무대 비화 - 제10회 정치 테러
경무대 비화
제10회 정치 테러
1965.01.26 방송
‘정계야화’는 65년 1월 4일부터 방송한 15분짜리 대담프로그램으로 70년 10월 5일부터 나간 다큐멘터리 드라마 ‘정계야화’의 원조격이다. 이 프로그램은 광복 20년과 6·25전쟁 15년을 맞아 기획한 것으로, 정계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자서전적인 회고담과 함께 정계의 뒷얘기를 들려줘 청취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오늘은 열번째 시간으로 정치 테러편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대담에는 당시 경무대 초대 비서관이었던 박용만씨와 동아일보 정치부장 신동준씨 입니다.》


- 네. 해방직후 좌우익 대립이 한창이던 때에 정치 테러가 참 많았습니다. 특히 당시의 그 민족 지도자였던 여러 요인들이 45년서 부터 한 두해 사이에 거의 그냥 요원의 불길처럼 테러에 쓸려서 말이죠 사라져 갔는데 이제 생각해보면 참 허왕하기도한 이야기였습니다만 그 때 그 요인들 여러분들 암살 사건 같은거 오늘은 그런 얘기를 좀 말씀을 들려주시죠.

- 그러니까 우리나라 해방 후에 말이죠. 정치 테러 말하자면 정치 적인 목적을 가진 정치 테러에 제 1호는 역시 1945년 12월 30일날 있었던 그 한국 민주당 수석 총무 송진우 선생을 암살한거 이것이 아마 제일 처음인것 같아요.

- 그렇죠.

- 근데 이 송진우 선생님은 그 때 한국민주당의 당수죠. 수석 총무로 계셨는데 그 때 죽인 사람이 누구냐면은 한현우라고 그 때 암살할 적에 이 한현우라는 사람은 29살 이었어요.
이 사람이 결국 송진우씨 댁까지 가가지고 29일날 그러니까 1945년 12월 29일 새벽에 그 송진우 선생을 암살을 했습니다.

- 해방되던 8·15 지나고 나서 한 두달밖에 안됐죠. 연말 첫 연말 때 그랬죠.
그 때 아마 집에선가 그런...

- 네. 집에서 암살을 당했어요. 근데 이 한현우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할거 같으면 옛날부터 테러를 그 이 업으로 삼다시피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한현우라는 사람은 그 일본에 그 말렵에 일제 말렵에 그 유명한 정치가였던 나카노 세이고, 나카도 세이고라는 사람이 주제하던 동방회의 회원이었고 또 이 뿐만아니라 이 자가 그 일본의 수상겸 육상이었던 도조 히데키 이것을 갖다가 암살을 기도했다가 징역 10개월을 언도 받은 일이 있었어요.
그와같이 이 전력이 말하자면 이 테러를 상습으로 늘 정치 테러를 하는 그와같은 경력을 가졌던 사람이었죠.

- 그 때 그 단독범이었죠 아마.

- 네. 그 때 그 단독범이었어요. 그리고 그 때 무긴가 뭔가 아마 받았지만은 지금은 뭐 나가가지고 자유의 몸이 되었을 거에요.

- 그저 한현우 그 범인 말이죠. 그 동기는 그 때 뭐라고 나타났었죠?

- 그 때 밝혀진 동기로써는 말하자면 그 때 당시에 상당히 혼란하지 않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제 한민당의 당수인 송민호씨를 암살 함으로 인해가지고 그 여러가지 일들이 잘 풀려나갈거다 하는 자기 착각에 사로잡혀가지고 순전히 정치적인 목적에서 그냥 그대로 단순히 참 암살을 했어요.

- 그 후에 재판도 여러번 있었고 그랬습니다만 말이죠. 뭐 단독범이다 이랬는데 그 배후 같은게 역시 지내놓고 이제보면 뭐 확실하게 드러났다고 볼 수 없는거 아니겠어요?

- 지금 그렇죠. 아직까지도 그 배후라는 것은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채 그냥 그대로 우야무야로 그냥 넘어가고 말았죠.

- 다음 두번째 테러가 그러니까 장덕수 선생이 되나 아 저 누군가요 여운형씨가 돼나요?

- 그렇죠. 두번째 테러가 여운형씨 테러 사건이죠. 암살 사건. 이 여운형씨는 그 때 이제 그 참 근로 인민당 그 때 이제 그 당수였죠.

- 그게 아마 47년인가 그렇죠.

- 그쵸. 그 47년 1947년 7월 19일날 이건 아주 백주 혜화동 로터리 있잖아요. 혜화동 로터리에서 백주 대로상에서 혜화동 로터리에서 차타고 나오시는걸 가지고 그냥 그대로 한지근이라는 사람이 이걸 그 이 죽였어요.
그 때 이제 한지근이라는 아이도 아까 그 이 마찬가지고 29살.

- 아니, 한지근이가 19살 인가 아마 그런 소년이었던거 같은데.

- 아니, 내가 알기로는 로터리에서 죽일적에 그 때 나이가 스물아홉으로 기억하고 있죠.

- 그래요? 이것도 역시 이건 역시 우익 테러죠.

- 그 때 역시 여운형씨가 이 좌우합작 뿐만아니라 박헌영이 와도 서로 제휴 해가지고 좌익 노선을 끌고 있었으니까 아마 이 테러는 아마 우익 테러 였을 거에요.

- 그리고 이제 그 다음이 장덕수 선생.

- 그렇죠. 근데 이제 근데 이 한지근이라는 사람이 이남사람이 아니라 출신이 어디냐 하면 평양북도 연변 출신이에요. 이래가지고 인제 용문중학을 마치고 월남 해온것이 1947년 6월달에 월남 해와가지고 여운형씨를 암살했죠.

- 그럼 우익 테러라도 출신은 이북이었다...

- 그렇죠. 이북 출신으로 해서 이제 그 우익 테러를 한거죠.

- 장덕수씨 살해 사건이 그로부터 두 달인가 뒨데. 연말인가 아마 그 때 그랬을거에요.

- 그것도 또 연말이고. 근데 장덕수씨 암살 사건은 여기에 인제 참 내가 얘길 좀 해야겠는데 이 암살한 사람이 누구냐면 박광옥이 암살을 했거든요. 근데 이게 장덕수씨를 암살한 것이 그러니까 47년 1947년 12월 2일날 그 저녁 때 됐어요. 저녁 6시경 그러니까 그 땐 좀 어둑어둑 했죠.
근데 이 박광옥이가 암살을 했는데 박광옥이라는 애를 내가 잘 알아요. 어떻게 잘 아느냐면 그 때 박광옥이가 그 반탁운동을 하던 학생의 몸이 됐어요. 그러다가 그 다음에 이제 종로 경찰서에 들어가가지고 경사가 됐죠.
그래가지고 이제 외근을 봤었는데 그 때 경찰복을 입은 채 그냥 장덕수씨 선생댁을 찾아갔어요. 그러니까 장덕수 선생하고 박광옥 하고는 서로 안면이 조금 있는 편이었죠.
그래가지고 장덕수 선생을 불러내가지고 나오셔가지고 몇 마디 얘기를 건낸 후 장덕수 선생이 뒤돌아 서서 말이지 가자 거기서 그냥 현관에서 그냥 쐈어요.
이래가지고 참 설산 장덕수 선생이 돌아가셨죠.

- 그 저 장덕수 선생 돌아가실 때만 하더라도 그 저 한민당의 뭐였는지 모르겠어요.

- 한민당의 정치 부장이에요. 정치 부장이고 뿐만아니라 장덕수 선생은 그야말로 참 이 머리 두뇌가 아주 명석하고 이래서 한민당의 모든 정치 얘기다든지 하는거는 완전히 참 장덕수 선생이 요리하고 나갔죠.

- 네. 한민당의 브레인이었죠.

- 그렇죠. 브레인이었죠.

- 근데 이 저 범인도 역시 그 때 뭐 뭡니까 영웅심 같은거.

- 근데 이제 범인은 딴사람과 달리 박광옥이는 사형 집행 됐어요. 그 때 그 얘기가 있는데 박광옥이가 군정 재판을 받았거든요. 그 때 증인으로 김구 선생을 증인으로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김구 선생은 증인으로 안나설라 그랬고, 그러나 미군정에서는 자꾸 군정 재판을 하면서 나오라그러고 이래가지고 할 수 없이 김구 선생이 불려나갔어요 증인으로.
그래 이제 증인으로 불려나갔을적에 참 재판을 하면서 이제 그 미국 그 성조기를 이제 밑에서 재판을 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제 김구 주석께서는 나는 한국 사람이다 말이야. 나는 한국 사람인데 태극기 밑에서 재판을 받았으면 받았지 성조기 밑에선 재판을 받을 수가 없다 이래가지고 그 증언을 거부한거에요.

- 그 김구 주석이 또 얼마 안있다가 돌아가셨죠.

- 그렇죠. 김구 주석이 인제 그러니까 남북 협상을 갔다 오신 후 1949년 6월 26일날 그 인제 경조장에서 안두희.

- 그렇죠. 그 유명한 안두희.

- 그 현역 육군 장교 됐죠. 안두희가 그 때 또 김구 선생을 암살을 했죠.

- 그 김구 선생 그 때 암살 동기가 역시 안두희도.

- 네. 그 배후 관계는 아직 까지도 이건 밝혀지지 않았지만은 그 이제 그 좌우합작을 반대해서 결국 이것도 역시 김구 선생을 없앰으로 인해서 나라에 도움이 돼겠다 독립에 도움이 돼겠다는 자기 생각으로 그래가지고 이제 참 위대한 지도자의 한 분을 또 암살하고 말았죠.

- 그 때 참 국민들이 전부 아마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많았고 그 때 참 생각납니다. 근데 이렇게 지금 안두희 배후도 아직 잘 드러나지 않았다고 그러고 안두희가 아마 지금 살아있어서 어딘가 있다는 소문도 있었죠.

- 그렇죠. 살아서 요즘 다닌다니까요.

- 지금까지 쭉 인제 이렇게 들었던 여러 요인 암살범들이 있지않습니까. 이 사람들 중에 한 사람만이 아까 얘기했다시피 사형선고...

- 네. 박광옥이 혼자 사형됐죠.

- 네. 박광옥이 혼자만이 사형이 집행되고 나머지는 대게는 인제 다 풀려져가지고 이렇게 돼있는데. 이 참 지내놓고와서 이제 생각인데 말이죠. 이런 그 배후, 그 때만 하더라도 먼 훗날 역사가 인제 이걸 심판해서 가려낼 것이다 했는데 뭐 십년 이십년 지났어도 지금 아직 가려내 지지도 않아있고 참 이거 미묘하거든요.

- 네. 미묘한 그거고 참 이 지금 와가지고 생각하면은 이와같이 참 아주 훌륭한 지도자들을 말이죠. 이와같이 서글프게 말이지 암살로 이렇게 참 훌륭한 지도자들을 다 매장해버렸다 하는거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애석하기 짝이없는 일이죠.

- 그 그 때의 얘기도 뭡니까 이 박사가 해공 그 라이발 해공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 이 박사 혼자 남았잖아요. 그 참 이상하다고 말이지. 어떻게 그렇게 이 박사만 남고 모조리 말이야 전부 쓰러져 가느냐.
이래가지고 참 그 때만 하더라도 이 박사가 절대적인 권세를 쥐고 있었을 때라 말들은 크게 못하고 말이죠 이렇게 지내왔는데 이제 생각하면 이게 과연 그 오리무중에 쌓였던 그 안개가 걷혀졌느냐 하면 역시 안 걷혀졌거든요. 이게 언젠가 걷혀질 날이 생길런지 어쩔런지.

- 생겨야 돼겠죠. 그리고 다시는 이와같은 참 정치 테러라던가 이런거는 정말로 다시는 없어야 겠어요.

- 그런데 이 박사 자신도 아마 좀 그 테러를 당하던가 그런 일이 있었죠.

- 네. 이 박사도 그러니까 몇 번 참 기막힌 테러 미수에 그쳤지만은 그런 일이 몇 번 있었어요.

- 내일은 고 이 박사와 이 박사가 당한 테러 얘기 뭐 이런 얘기를 좀 들려주시죠.

- 네. 네. 그러죠.

제8회 마포장 제11회 이박사 암살미수


(입력일 : 2007.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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