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열번째 시간으로 정치 테러편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대담에는 당시 경무대 초대 비서관이었던 박용만씨와 동아일보 정치부장 신동준씨 입니다.》
- 네. 해방직후 좌우익 대립이 한창이던 때에 정치 테러가 참 많았습니다. 특히 당시의 그 민족 지도자였던 여러 요인들이 45년서 부터 한 두해 사이에 거의 그냥 요원의 불길처럼 테러에 쓸려서 말이죠 사라져 갔는데 이제 생각해보면 참 허왕하기도한 이야기였습니다만 그 때 그 요인들 여러분들 암살 사건 같은거 오늘은 그런 얘기를 좀 말씀을 들려주시죠.
- 그러니까 우리나라 해방 후에 말이죠. 정치 테러 말하자면 정치 적인 목적을 가진 정치 테러에 제 1호는 역시 1945년 12월 30일날 있었던 그 한국 민주당 수석 총무 송진우 선생을 암살한거 이것이 아마 제일 처음인것 같아요.
- 그렇죠.
- 근데 이 송진우 선생님은 그 때 한국민주당의 당수죠. 수석 총무로 계셨는데 그 때 죽인 사람이 누구냐면은 한현우라고 그 때 암살할 적에 이 한현우라는 사람은 29살 이었어요.
이 사람이 결국 송진우씨 댁까지 가가지고 29일날 그러니까 1945년 12월 29일 새벽에 그 송진우 선생을 암살을 했습니다.
- 해방되던 8·15 지나고 나서 한 두달밖에 안됐죠. 연말 첫 연말 때 그랬죠.
그 때 아마 집에선가 그런...
- 네. 집에서 암살을 당했어요. 근데 이 한현우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할거 같으면 옛날부터 테러를 그 이 업으로 삼다시피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한현우라는 사람은 그 일본에 그 말렵에 일제 말렵에 그 유명한 정치가였던 나카노 세이고, 나카도 세이고라는 사람이 주제하던 동방회의 회원이었고 또 이 뿐만아니라 이 자가 그 일본의 수상겸 육상이었던 도조 히데키 이것을 갖다가 암살을 기도했다가 징역 10개월을 언도 받은 일이 있었어요.
그와같이 이 전력이 말하자면 이 테러를 상습으로 늘 정치 테러를 하는 그와같은 경력을 가졌던 사람이었죠.
- 그 때 그 단독범이었죠 아마.
- 네. 그 때 그 단독범이었어요. 그리고 그 때 무긴가 뭔가 아마 받았지만은 지금은 뭐 나가가지고 자유의 몸이 되었을 거에요.
- 그저 한현우 그 범인 말이죠. 그 동기는 그 때 뭐라고 나타났었죠?
- 그 때 밝혀진 동기로써는 말하자면 그 때 당시에 상당히 혼란하지 않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제 한민당의 당수인 송민호씨를 암살 함으로 인해가지고 그 여러가지 일들이 잘 풀려나갈거다 하는 자기 착각에 사로잡혀가지고 순전히 정치적인 목적에서 그냥 그대로 단순히 참 암살을 했어요.
- 그 후에 재판도 여러번 있었고 그랬습니다만 말이죠. 뭐 단독범이다 이랬는데 그 배후 같은게 역시 지내놓고 이제보면 뭐 확실하게 드러났다고 볼 수 없는거 아니겠어요?
- 지금 그렇죠. 아직까지도 그 배후라는 것은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채 그냥 그대로 우야무야로 그냥 넘어가고 말았죠.
- 다음 두번째 테러가 그러니까 장덕수 선생이 되나 아 저 누군가요 여운형씨가 돼나요?
- 그렇죠. 두번째 테러가 여운형씨 테러 사건이죠. 암살 사건. 이 여운형씨는 그 때 이제 그 참 근로 인민당 그 때 이제 그 당수였죠.
- 그게 아마 47년인가 그렇죠.
- 그쵸. 그 47년 1947년 7월 19일날 이건 아주 백주 혜화동 로터리 있잖아요. 혜화동 로터리에서 백주 대로상에서 혜화동 로터리에서 차타고 나오시는걸 가지고 그냥 그대로 한지근이라는 사람이 이걸 그 이 죽였어요.
그 때 이제 한지근이라는 아이도 아까 그 이 마찬가지고 29살.
- 아니, 한지근이가 19살 인가 아마 그런 소년이었던거 같은데.
- 아니, 내가 알기로는 로터리에서 죽일적에 그 때 나이가 스물아홉으로 기억하고 있죠.
- 그래요? 이것도 역시 이건 역시 우익 테러죠.
- 그 때 역시 여운형씨가 이 좌우합작 뿐만아니라 박헌영이 와도 서로 제휴 해가지고 좌익 노선을 끌고 있었으니까 아마 이 테러는 아마 우익 테러 였을 거에요.
- 그리고 이제 그 다음이 장덕수 선생.
- 그렇죠. 근데 이제 근데 이 한지근이라는 사람이 이남사람이 아니라 출신이 어디냐 하면 평양북도 연변 출신이에요. 이래가지고 인제 용문중학을 마치고 월남 해온것이 1947년 6월달에 월남 해와가지고 여운형씨를 암살했죠.
- 그럼 우익 테러라도 출신은 이북이었다...
- 그렇죠. 이북 출신으로 해서 이제 그 우익 테러를 한거죠.
- 장덕수씨 살해 사건이 그로부터 두 달인가 뒨데. 연말인가 아마 그 때 그랬을거에요.
- 그것도 또 연말이고. 근데 장덕수씨 암살 사건은 여기에 인제 참 내가 얘길 좀 해야겠는데 이 암살한 사람이 누구냐면 박광옥이 암살을 했거든요. 근데 이게 장덕수씨를 암살한 것이 그러니까 47년 1947년 12월 2일날 그 저녁 때 됐어요. 저녁 6시경 그러니까 그 땐 좀 어둑어둑 했죠.
근데 이 박광옥이가 암살을 했는데 박광옥이라는 애를 내가 잘 알아요. 어떻게 잘 아느냐면 그 때 박광옥이가 그 반탁운동을 하던 학생의 몸이 됐어요. 그러다가 그 다음에 이제 종로 경찰서에 들어가가지고 경사가 됐죠.
그래가지고 이제 외근을 봤었는데 그 때 경찰복을 입은 채 그냥 장덕수씨 선생댁을 찾아갔어요. 그러니까 장덕수 선생하고 박광옥 하고는 서로 안면이 조금 있는 편이었죠.
그래가지고 장덕수 선생을 불러내가지고 나오셔가지고 몇 마디 얘기를 건낸 후 장덕수 선생이 뒤돌아 서서 말이지 가자 거기서 그냥 현관에서 그냥 쐈어요.
이래가지고 참 설산 장덕수 선생이 돌아가셨죠.
- 그 저 장덕수 선생 돌아가실 때만 하더라도 그 저 한민당의 뭐였는지 모르겠어요.
- 한민당의 정치 부장이에요. 정치 부장이고 뿐만아니라 장덕수 선생은 그야말로 참 이 머리 두뇌가 아주 명석하고 이래서 한민당의 모든 정치 얘기다든지 하는거는 완전히 참 장덕수 선생이 요리하고 나갔죠.
- 네. 한민당의 브레인이었죠.
- 그렇죠. 브레인이었죠.
- 근데 이 저 범인도 역시 그 때 뭐 뭡니까 영웅심 같은거.
- 근데 이제 범인은 딴사람과 달리 박광옥이는 사형 집행 됐어요. 그 때 그 얘기가 있는데 박광옥이가 군정 재판을 받았거든요. 그 때 증인으로 김구 선생을 증인으로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김구 선생은 증인으로 안나설라 그랬고, 그러나 미군정에서는 자꾸 군정 재판을 하면서 나오라그러고 이래가지고 할 수 없이 김구 선생이 불려나갔어요 증인으로.
그래 이제 증인으로 불려나갔을적에 참 재판을 하면서 이제 그 미국 그 성조기를 이제 밑에서 재판을 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제 김구 주석께서는 나는 한국 사람이다 말이야. 나는 한국 사람인데 태극기 밑에서 재판을 받았으면 받았지 성조기 밑에선 재판을 받을 수가 없다 이래가지고 그 증언을 거부한거에요.
- 그 김구 주석이 또 얼마 안있다가 돌아가셨죠.
- 그렇죠. 김구 주석이 인제 그러니까 남북 협상을 갔다 오신 후 1949년 6월 26일날 그 인제 경조장에서 안두희.
- 그렇죠. 그 유명한 안두희.
- 그 현역 육군 장교 됐죠. 안두희가 그 때 또 김구 선생을 암살을 했죠.
- 그 김구 선생 그 때 암살 동기가 역시 안두희도.
- 네. 그 배후 관계는 아직 까지도 이건 밝혀지지 않았지만은 그 이제 그 좌우합작을 반대해서 결국 이것도 역시 김구 선생을 없앰으로 인해서 나라에 도움이 돼겠다 독립에 도움이 돼겠다는 자기 생각으로 그래가지고 이제 참 위대한 지도자의 한 분을 또 암살하고 말았죠.
- 그 때 참 국민들이 전부 아마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많았고 그 때 참 생각납니다. 근데 이렇게 지금 안두희 배후도 아직 잘 드러나지 않았다고 그러고 안두희가 아마 지금 살아있어서 어딘가 있다는 소문도 있었죠.
- 그렇죠. 살아서 요즘 다닌다니까요.
- 지금까지 쭉 인제 이렇게 들었던 여러 요인 암살범들이 있지않습니까. 이 사람들 중에 한 사람만이 아까 얘기했다시피 사형선고...
- 네. 박광옥이 혼자 사형됐죠.
- 네. 박광옥이 혼자만이 사형이 집행되고 나머지는 대게는 인제 다 풀려져가지고 이렇게 돼있는데. 이 참 지내놓고와서 이제 생각인데 말이죠. 이런 그 배후, 그 때만 하더라도 먼 훗날 역사가 인제 이걸 심판해서 가려낼 것이다 했는데 뭐 십년 이십년 지났어도 지금 아직 가려내 지지도 않아있고 참 이거 미묘하거든요.
- 네. 미묘한 그거고 참 이 지금 와가지고 생각하면은 이와같이 참 아주 훌륭한 지도자들을 말이죠. 이와같이 서글프게 말이지 암살로 이렇게 참 훌륭한 지도자들을 다 매장해버렸다 하는거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애석하기 짝이없는 일이죠.
- 그 그 때의 얘기도 뭡니까 이 박사가 해공 그 라이발 해공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 이 박사 혼자 남았잖아요. 그 참 이상하다고 말이지. 어떻게 그렇게 이 박사만 남고 모조리 말이야 전부 쓰러져 가느냐.
이래가지고 참 그 때만 하더라도 이 박사가 절대적인 권세를 쥐고 있었을 때라 말들은 크게 못하고 말이죠 이렇게 지내왔는데 이제 생각하면 이게 과연 그 오리무중에 쌓였던 그 안개가 걷혀졌느냐 하면 역시 안 걷혀졌거든요. 이게 언젠가 걷혀질 날이 생길런지 어쩔런지.
- 생겨야 돼겠죠. 그리고 다시는 이와같은 참 정치 테러라던가 이런거는 정말로 다시는 없어야 겠어요.
- 그런데 이 박사 자신도 아마 좀 그 테러를 당하던가 그런 일이 있었죠.
- 네. 이 박사도 그러니까 몇 번 참 기막힌 테러 미수에 그쳤지만은 그런 일이 몇 번 있었어요.
- 내일은 고 이 박사와 이 박사가 당한 테러 얘기 뭐 이런 얘기를 좀 들려주시죠.
- 네. 네. 그러죠.
제8회 마포장 ◀ ▶ 제11회 이박사 암살미수 (입력일 : 2007.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