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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정계야화
경무대 비화 - 제9회 이화장과 김장흥 경위
경무대 비화
제9회 이화장과 김장흥 경위
1965.01.25 방송
‘정계야화’는 65년 1월 4일부터 방송한 15분짜리 대담프로그램으로 70년 10월 5일부터 나간 다큐멘터리 드라마 ‘정계야화’의 원조격이다. 이 프로그램은 광복 20년과 6·25전쟁 15년을 맞아 기획한 것으로, 정계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자서전적인 회고담과 함께 정계의 뒷얘기를 들려줘 청취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지난날 권부의 정상이었던 경무대를 둘러싸고 수많은 정치인들의 명멸과 그 주변에 오고 간 숨은 얘기를 들려주는 경무대비화, 오늘은 그 아홉번째 시간으로 이화장과 김장흥 경위 편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도 역시 대담에는 당시 경무대 초대 비서관이었던 박용만씨와 동아일보 정치부장 신동준씨 입니다.》

- 네. 어저께 말씀대로 오늘은 김장흥 경위, 그 김장흥 경위가 어떻게 돼서 이 박사하고 가까워졌나 거기서 부터.

- 아, 예. 김장흥 경위는 그 처음에 막바로 이화장으로 온 게 아니라 돈암장 시절에 그 저희 돈암장으로 왔었는데 그 때 그 김장흥씨는 중부 경찰서에 외근 주임이라서요 그래서 돈암장 경비로 왔다가 그 후에 이제 참 마포장 또 이제 이화장까지 이렇게 이제 쭉 따라 다니면서 경비를 담당했었죠.

- 아, 그러니까 그 때만해도 이제 자위테러 같은 것도 심했고, 그래서 인제 경찰이 신변 보호로 보낸 파견한 사람 이로군요.

- 예 예.

- 이 박사 하곤 무슨 전에 과거 관계는

- 그런거는 뭐 전혀 없었죠.

- 그러니까 순전히 직책상 가까워진 사람이로군요.

- 그렇죠. 직책상.

- 결국 김장흥 경위가 그때 인제 이 박사하고 가까워지고 있을 때 그 당시에 근황.

- 그 이제 그 때만 하더라도 참 이 경비하는 김장흥씨는 물론이지만은 경비하는 사람들이 퍽 그 참 어려웠어요. 왜그런가 하니 참 이 월급 이외의 부수입이라는건 단 한푼도 어디서 나오는데가 없지 않겠어요?
그래서 인제 내가 여러번 그 이화장에 들릴적에 마다 김장흥씨는 그 참 이 배가 고프다고 그러니까 올 적에 떡 좀 사다달라고 하는 얘기를 갖다 여러번 내가 들었고, 또 실제에 있어서 내가 그 이화장에 들릴적에 종종 그 이 떡을 사가지고 가가지고 김장흥씨를 주면 김장흥씨가 퍽 그 좋아하면서 말이지 그 떡을 맛있게 먹던 그런일이 여러번 있었죠.

- 아, 그럼 그 때는 김장흥씨 말고 또 여러사람이 경비를 하고 있었던가요?

- 그렇죠. 김장흥씨가 그러니까 그 때 경비 책임자고.

- 몇 명이나.

- 그 때 한 십여명 쯤 될거에요. 경비하던 사람들이.

- 결국 그럼 김장흥씨도 자연히 이 박사하고 가까워지게 되겠군요.

- 그렇죠. 그러니까 뭐 조속으로 참 이렇게 경비를 하고 또 이 박사께선 이 산책이라던지 수목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럴적에 인제 늘 인제 이 박사 옆에 서서 있고, 그러면 자연히 얘기들을 주고 받게 되고 그러니까 김장흥씨는 이 박사와 아주 가깝게 됐죠.

- 이 박사가 단독으로 다닐 때마다 같이 인제 따라가 줬군요.

- 그렇죠. 그러다가 이 박사께서 대통령이 되지 않았어요? 그니까 이제 김장흥씨는 경무대로 들어갔죠. 경무대로 들어가면서 바로 뭐가 됬느냐 하면 경위에서 경감이 됐어요.

- 승진해가지고.

- 그렇죠. 승진해가지고.

- 그 때 이제 경무대 경찰서 그 때 처음 창설이 됬죠?

- 창설은 그 때 네 창설 됬었죠. 창설 하면서 그러니까 초대 서장겸 경감으로 있었고 또 이제 이 박사께서 아침마다 이제 경무대에서 중앙청으로 출근하시지 않았어요?
그 땐 이제 자동차 앞에 운전수 옆에 타가지고 모시고 중앙청까지 나오고 그렇게 지냈죠.

- 경무대 경찰서하면 이제 상당히 세도있는 기관으로 인제 뒤에까지도

- 후에 와가지고 참 그 경무대 경찰서 라는거는 상당한 참 이 독립기관 같이 실제는 독립된 것도 아니었지만은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이 박사의 지시 이것만 받는 그 경무대가 됐죠.

- 말하자면 옛날 왕의 근위대, 근위대 대장 뭐 이런 격이니까.

- 그렇죠. 그 뭐 이 민주국가에 있어서 참 이 그 때 당시의 경무대 경찰 서장이다 이렇게 되면 그거 하난 그게 있었죠.

- 옛날에도 쭉 그랬습니다만 하여튼 집권자의 신변을 보호하는 사람, 이 사람의 인제 출세 같은게 빠른거는 예외가 없는데 김장흥씨도 굉장한 속도로 승진이 됐는데.

- 그렇죠. 예. 빨랐죠. 네. 근데 인제 그 그 때 이런게 있었어요. 경무대의 대체적으로 서원, 김장흥씨는 물론이고 일반적인 서원들도 출세랄까 계급 올라가는게 굉장히 빨랐습니다.
그건 인제 왜그런가 하니 가령 예를 들어서 내무부 장관이 갈린다 이랬을 적에 새로운 장관이 하나의 선물 격으로 말이지 계급을 하나씩 이렇게 올려줬어요.

- 서원 전부

- 옳지. 전부에 될 때도 있고 또 몇 사람 될 때도 있고 그리고 이제 그 다음에는 대통령의 생신 날이 되면 이제 또 계급이 또 하나씩 올라가고 이렇게 되는 현상 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김장흥씨 같은 분은 경위로서 참 오랜동안 경위를 했지만은 경감이 되고 경감에서 총경되고 총경에서 경무관이 되고 경무관에서 그 다음에 치한 국장이 되고 이렇게 참 진도가 굉장히 빨랐죠.

- 치한 국장이 그 선거 땐가요. 그러니까.

- 그렇죠. 그러니까 그 이제 이기봉씨가 부통령으로 출마하고 장면씨가 부통령으로 출마했을 적에 장면씨 한테 졌을 적에 그 때 졌을 적에 당시 이제 치한 국장이 김장흥 치한 국자잉 됬죠.

- 그 김장흥씨가 아마 선거에 지고 나서 인책 했던가 뭐 어떻게 했던가 그래가지고 강원도지사로 좌천됬죠.
좌천이라면 우습지만.

- 그 때 당시로써는 좌천, 실질적인 그게 좌천이죠. 이 박사 옆을 떠나게 됬으니까. 좌천이라고 했지만은 그 때는 그래도 그게 영전이라 이래가지고 강원도 도지사까지 김장흥씨가 됬죠.

- 김장흥씨가 치한 국장으로 가게 됨에 따라서 그 후임이 그러니까.

- 그렇죠. 저 이 김장흥씨가 치한 국장을 가면서 그 자기의 하던일을 맡기는분이 바로 서정학씨, 그 분도 역시 치한 국장을 지냈지만은 서정학씨를 이제 그 자기 후임으로 추천을 했죠.

- 서정학씨도 쭉 저 이 박사 경비대원 출신이던가요?

- 그렇진 않아요. 서정학씨는 중간에 들어온 분이고, 참 이 돈암장이나 이화장 부터 온 분은 아니랬어요.

- 그리고 서정학씨가 2대 경무대 경찰서장이고 3대가...

- 그러니까 이제 3대는 이제 그 참 이 박사가 귀국 하셔가지고 부터 쭉 그 운전을 하던 말이지 김국진씨라고 있어요. 이 분이 이제 참 경무대 경찰 서장까지 지냈죠.

- 그리고 이제 곽영규 인가요.

- 그렇죠. 그리고 이제 김국진씨가 경무대 경찰 서장을 그만두고 지방으로 쫓겨 났댔어요. 그 후임으로 이제 그 참 사형선고 당한 곽영규씨가 인제 그 후임으로 경무대 서장에 앉았댔죠.

- 이런 십몇년 동안에 될 사람이 경무대 경찰서장.

- 그렇죠.

- 결국 이 경무대 경찰서장이면 그 땐 참 특권적인 존재 였는데

- 그렇죠. 경무대 그렇기 때문에 경무대 경찰 서장의 인사발령은 내무부 장관이 단독적으로 못했어요.

- 물론 그렇겠죠.

- 그건 반드시 대통령의 의사를 타진해서 발령을 했었지 그냥은 맘대로 못했었고, 또 이제 경무대 경찰서라는거는 그 특히 대통령께서 그 이 장관을 추천 임명을 한다던지 혹은 인제 주요 인사를 할 적에 그 신원조회를 경무대 경찰서를 하여금 신원 조회를 시켰어요.
그러니까 아마 오늘날로 볼거 같으면 가장 이제 박 대통령의 가까운 중앙 정보부, 뭐 이런게 있어 가지고 중앙 정보부에서 참 뭐 신원을 조사 한다던지 하는거와 비슷한 그런 이제 참 이 역할 이라 할까 하는 게 이제 그 때 당시에는 경무대의 경찰서였죠.

- 어쨌든 그 때만 하더래도 이 박사가 무슨 특별한 내사, 비밀리에 조사할거 같은거 이런건 뭐 일체 경무대 경찰서에서.

- 그렇죠.

- 그 때 인제 기구가 점점점점 커지고, 이럼에 따라서 인제 참 4·19 직전에는 일반 민중의 원성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만은.
어때요 그 저 김장흥씨가 그 초대 경무대 경찰 서장이 된게 이 박사하고 가까워진 인연이었는데 김장흥씨 개인성격이라고 할까 이런거는 어땠었습니까.

- 네. 거 김장흥씨라는 분이 말이 적은 사람이라서요. 그리고 또 일반 경찰에도 그렇잖아요 그 뭐 다소 이제 사람이 빠릿 빠릿하고 말이지 어떻고 한 사람들은 대게 사찰이다 혹은 수사다 그 인제 그런데 인제 김장흥씨의 그 때 당시의 맡아가지고 했던 인제 그 경위였다 하는것만 본다 하더래도 그 분이 그렇게 인제 남 앞에 나서는 거를 좋아한다던지 이런 성격을 아니었고, 사람이 강직 했습니다. 또 이 고지식 했고, 그랬기 때문에 인제 오랫동안 참 이 박사를 모시고도 사고없이 말이지 그렇게 참 영달의 길을 걸을 수 있던것도 역시 김장흥씨의 그 개인 성격이 인제 얘기한 바와 같이 그런 인제 좋은 점이 있었기 때문에 역시 그와 같이 영전을 해 온 거라고 이렇게 보죠.

- 김장흥씨가 별세한게 강원도지사 땐가 그렇죠?

- 그렇죠. 강원도지사로 갔다가 강원도지사 재직시에 그러니까 이제 숙환으로 돌아갔죠.

- 그 상당히 충실 하면서도 괄괄한 곽영규 그런 사람 하고는 좀 비교가...

- 아주 대조적이죠. 네. 이 사람은 참 색시같이 했던 사람이고.

- 그러나저러나 해방직후의 이 박사 한테 파견되는 그 당번이 됬던게 아주 그 사람 운명을 좌우했구만. 그 때 아마 경조장 경비나 또 딴 분 경비를 맡은 분들은 안그랬을거고.

- 그게 아마 그럴거예요. 김장흥씨가 치한 국장을 했을적에 말이지. 그 때 당시에 경위였던 사람이 경감 되가지고 있던 사람은 아마 숱해 있을 겁니다.

- 아마 지금 그 때 동기생 중에서 아마 경감 정도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 지금도 있을지도 모르죠.

- 어쨌든 그 때만 하더래도 뭐 정치 테러가 막 횡횡하고 그럴 때니까 그 경비 한 사람에 대한 농거 행상이 또 있을 수도 있겠죠.

- 그렇죠. 네.

- 그 정치 테러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요 다음에는 그 해방직후의 혼란한 사회생활 배경으로 해서 일어났던 여러가지 암살 사건, 테러 이런것 좀 얘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 네. 좋습니다.

제8회 마포장 제10회 정치 테러


(입력일 : 2007.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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